1998년 20살의 청년 고종수는 프랑스월드컵에서 날카로운 패스와 슈팅의 정교함으로 세계축구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그해 K리그 MVP를 차지했고 2002년까지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또한 ‘앙팡테리블, 프리킥의 달인, 축구천재’ 등으로 불리며 축구계의 대표신동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2002년 부상여파로 월드컵에 탈락한 후 2003년, 일본 교토퍼플상가에 입단, 재기를 노렸으나 처참한 실패만 맛보았다. 그 후 그는 잇따른 구설수에 오르며 ‘게으른 천재’로 낙인찍힌 채 세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왔다. 20살 때의 화려했던 명성을 벗어던진 채 돌아온 30살의 그를 만나봤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세계 언론은 동양의 작은 선수를 주목했다. 고종수가 그 중인공. 그는 당시 약관 20살의 나이에도 불구,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경기를 조율하는 천부적 자질과 환상의 왼발 프리킥으로 그는 세계 언론으로부터 “한국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제 플레이를 펼친 선수”로 평가 받았다.
1996년 수원삼성에 입단,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8년에는 MVP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99년에는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2001년에는 AFC선정 이 달의 선수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너무 일찍 핀 꽃이었을까. 그는 2002년 부상의 여파와 히딩크 대표팀 감독과 축구스타일이 맞지 않는 등의 문제로 결국 대표팀 차출에 실패했다. 당시에도 팬들과 언론은 고종수의 대표선발을 원했고 실제로 잠시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아무리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정확한 프리킥과 천부적인 경기운영능력을 인정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대표팀 탈락 후 그는 연예인과의 쌍방 폭행설 등 운동 외적인 불미스런 뉴스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고종수는 이렇듯 항상 언론의 중심에 서있었고 세인의 관심을 끄는 우리나라 대표축구선수였다. 2003년 교토퍼플상가 입단과 방출의 시련을 맞은 고종수는 2004년, 친정팀 수원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04년 입단 후 고종수는 체력 문제와 체중조절 실패 등의 이유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결국 고종수는 2005년 김남일과 2:1트레이드를 통해 전남 드레곤스로 이적했다.
그해 전남 드레곤스에서 16경기에 출전, 2골을 넣으며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2006년 부상 등의 이유로 한 해를 쉬게 되었다. 당시에도 고종수에게는 ‘부상은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게임중독이 되었다’는 등 끊임없이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또한 모 언론에서는 ‘지인들과 청담동에 음식점을 차렸다’며 그의 재기를 부정했다. 이에 고종수는 “친구들한테 전화로 들었다. 인터넷에 뜬 걸 보고 나 말고 주위 사람이 기자와 통화를 했는데 본인도 어디서 듣고 기사를 쓴 거라고 하더라. 솔직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심정을 말했다.
고종수는 또 “나름대로 팀도 구하려고 하고 운동하면서 식사 조절도 하고 열심히 하던 시기였다”며 언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운동을 쉬었던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이러면서까지(여러 소문들에 지쳐서) 운동을 다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작년 여름쯤에야 확실하게 마음을(운동을 시작할) 먹었다”며 당시의 심란했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K리그 복귀, 비하인드 스토리
운동을 결심하고 복귀했던 과정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 8일 ‘앙팡테리블’ 고종수가 전소속구단이었던 전남 드레곤스와의 극적 타협으로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게 되었다.
고종수의 대전입단이 결정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것은 지난 5일. “에이전트사와 대전 측의 일방적인 계획이었다. 고종수의 입단에는 반드시 전남과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 전남 측 관계자는 당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허정무 전남 드레곤스 감독 등 여러 축구인들의 진심어린 도움으로 지난 8일 극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전남 측 관계자는 “대승적 차원에서 고종수의 이적을 적극 도와주기로 했다. 이적료 등의 문제는 애초부터 없었다. 다만 절차적 문제(원 소속구단은 전남이었지만 에이전트와 독자적인 접촉으로 대전으로 이적)가 있었던 것 뿐이었다. 고종수는 한국축구의 소중한 자원이고 재기에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그의 이적에 걸림돌이 없음을 확인했다.
전남에서는 회의를 통해 고종수를 아무런 조건없이 대전에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고종수는 지난 8일 오후 4시 대전 구단 사무실에서 공식 입단식을 갖게 되었다.
이날 입단식에서 고종수는 “다시 그라운드에 선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재기의 의지를 불태웠다. 고종수는 입단식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전 시티즌의 구단 관계자, 서포터들이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노력하겠다”며 앞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란 굳은 의지를 피력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종수는 ‘마지막, 노력’이란 말을 많이 했다. 그만큼 그의 마음만큼은 절실해보였다. 그러나 그의 재기에 대한 희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대전 시티즌의 최윤겸 감독은 “동계 전지훈련기간 동안 고종수가 최선을 다하고 3개월 정도 경기 감각을 키우는 훈련을 한다면, 전성기 때의 기량을 발휘할 수는 없어도 올 후반기 정도에는 후반조커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현실의 벽 간극
한준희 KBS해설위원은 “본인이 몸을 만들기에 따라 재기여부는 달라질 것이다. 팬들의 기대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량이 출중한 선수이기에 성실하게 훈련만 한다면 충분한 가능성은 있다. 현재 세리에A에서 최상의 활약을 펼치는 피오렌티나의 ‘아드리안 무투’ 역시 파티를 즐기고 경기 외적으로 불미스런 일들이 있어 첼시에서 쫓겨난 후 지난 시즌 유벤투스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올 시즌에는 완전한 페이스를 되찾았다”며 고종수 선수의 재기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 위원은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종수 선수가 얼마나 성실하게 이번 동계훈련을 마치느냐에 따라 재기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며 신중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서영욱 MBC해설위원 역시 고종수의 재기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1년 계약이기에 올해가 중요하다. 동계훈련을 통해서 몸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성실한 훈련이 곧 재기의 길이 될 것” 이라며 재기여부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전구단홈페이지에서는 고종수선수의 입단을 환영한다는 팬들의 성원이 잇따랐다. ‘시티즌 팬들은 고종수 선수를 환영합니다.’, ‘이 응원 남기려고 가입(대전 시티즌 홈페이지)했어요. 고종수 선수 힘내세요. 꼭 재기할 수 있을거예요.’, ‘다들 지켜보세요. 대전이 종수형 때문에 다음 리그 1등 할겁니다.’ 등 고종수 선수의 부활을 믿는 팬들의 바람들로 가득했다.
고종수 선수는 “속된 말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빨리 몸을 만들어서 자신감을 되찾고 운동장에 서서, 무엇보다 대전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운동장에서 직접 나를 지켜본 사람들이 나의 진심을 느낄 수 있고, 응원하면서 힘이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때 무서운 아이라는 ‘앙팡 테리블’로 불리며 한국축구의 희망으로 떠받들어졌던 고종수. 이제는 서른의 나이로 돌아온 그. 과연 어린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고종수는 과거의 명성이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싫다. 지금 이 상태에서 동료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잘하는 선수, 묵묵히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고종수 인터뷰 “제로에서 다시 시작할 터”
- 대전에 공식 입단했다. 앞으로의 각오를 밝힌다면.
▲몇 년 사이에 많은 각오만 했던 것 같다. 늘 말로 끝나고 말았지 결과가 없었다. 누구를 탓하기보다 스스로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전 시티즌의 구단 관계자, 서포터들이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몸 상태는 어떤가.
▲2005년 전남 입단 시보다 상당히 좋다. 당시에는 87kg까지 나갔지만 지금은 80kg초반이다. 아침에 운동을 마친 후 땀복을 입은 채로 쟀는데 81kg이 나오더라. 시즌 초반부터 제 실력을 보여주기 힘들겠지만 전반기 후반부터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존에 얻었던 유명세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게 됐는데.
▲왕년에 잘 나가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나.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프로에 입단했던 당시의 마음가짐이다.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몸도 마음도 0%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 개인 훈련을 한다고 했지만 축구가 단체 운동인 만큼 그라운드에 대한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을 텐데.
▲혼자 훈련을 한다고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임감각이라든가 몸의 감각, 팀 플레이 모두 부족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나의 특징이라면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독님도 많은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고 대전 서포터들도 많은 응원을 보내준다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귀를 결심한 후 최윤겸 감독 밑에서 운동하기를 희망했다고 하던데.
▲선수 생활을 하면서부터 무척 좋아했던 분이다. 특히 SK시절의 윤정환 선수가 항상 선수들에게 무엇을 강요하기보다는 대화로 풀고 따뜻하게 다스리는 지도자라는 얘기를 했다. 최윤겸 감독님 밑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배수호 4477b@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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