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 부산에서 강속구 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동희 선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서른아홉의 짧은 일기로 사망한 박동희 선수는 고교시절부터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앞세워 ‘제 2의 선동렬’이란 찬사를 받았다.
특히 고교 3학년 때인 1985년 봉황대기 고교야구에서는 사상 초유의 방어율 제로를 달성해 화제를 모았다. 고려대학 시절에도 확고한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를 지켰다. 1990년 프로진출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토론토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롯데자이언츠에 입단한 박동희 선수는 프로 마운드에 데뷔하던 해 155Km의 강속구를 던졌다. 이는 선동렬(당시 해태)이 가지고 있던 최고 구속과 같은 기록이며 2003년에서야 SK 엄정욱 선수(156Km)에 의해 깨졌다.
박동희 선수는 데뷔 첫 해 10승 (7패) 7세이브의 무난한 성적을 기록한 후 1991년 14승 (9패) 3세이브를 거두며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박동희 선수는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빙그레의 이정훈-이강돈-장종훈-강정길 등으로 이어지는 활화산 같은 타선에 맞서 2승 1세이브를 거두며 MVP에 오르며 야구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운다.
그러나 무리한 투구 탓이었을까.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며 이후 하향곡선을 그려 1996년 4승(5패) 1세이브에 머물렀고, 1997년 시즌 도중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수모를 겪었다. 1997년에서 2002년 은퇴할 때까지 삼성에 머물던 5년 동안 거둔 승수는 7승에 불과했다.
은퇴 후 박동희 선수는 2004년 건축회사 사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부산 해운대에서 일식집을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은퇴식 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영원한 야구인으로 살고 싶다’던 꿈을 결국 펼치지 못한 채 너무 이른 시점에‘생의 이닝’을 마무리 하게 됐다.
배수호 4477b@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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