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축구 첫 시민구단 대전시티즌의 요즘 분위기는 말이 아니다. ‘외우내환’, 팀 안팎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 07시즌. 한밭벌에는 찬바람만 불고 있다. 정규리그 6경기에서 대전이 기록한 성적은 3무3패, 컵 대회에서도 부진한 성적으로 조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전이 정말 안되는 집안이란 결정적 사실은 또 있다. 5년째 팀을 이끌어 온 최윤겸 감독(45)이 지난 3월24일 이영익 수석코치(41)를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대전 구단은 당초 발표한 동반 사퇴대신, 최 감독과 이 코치에게 각각 ‘6개월 감봉’과 주의조치라는 가벼운 처벌을 내려 일단 상처는 아무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은 끝난 게 아니라는 흉흉한 소문이 축구계에 나돌고 있다. 과연 이번 사건 이면에는 어떤 내막이 있는 것일까.
쟁점 1
코칭스태프에게 무슨 일 있었나?
그라운드의 신사로 잘 알려진 최 감독. 조심스런 행동과 조용한 어투로 뭇사람들을 편안하게 했던 그가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지난 3월 24일 최 감독은 술자리에서 이 코치를 맥주잔으로 폭행, 주변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이날 이 코치의 집에서 술자리를 갖던 중 의견충돌을 일으켜 최 감독이 순간적으로 흥분해 맥주잔을 던진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일으켰다. 이 코치는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 코치는 자택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미간 오른쪽 눈썹주변이 찢어져 무려 20바늘을 꿰매야 했고, 별도 성형이 필요할 정도로 짙은 흉터가 남았다.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관행은 스포츠계에서 흔한 일이기 때문에 큰 사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당시 자리에 이 코치의 부인과 돌이 갓 지난 어린 딸이 함께 있었다는 데 있다. 가족 앞에서 맞은 이 코치의 입장으로선 겉으로 드러난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훨씬 클 수밖에 없는 상황.
만약 법적 대응까지 고려됐다면, 가해자 최 감독은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고, 또 구단 징계 외에 ‘명예훼손’과 관련해 프로연맹의 별도 징계까지 내려질 수도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나흘 뒤인 3월28일, 구단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한 최 감독은 다음날 한 지역지의 보도로 상세한 내막이 드러나면서 수년간 어렵게 쌓아올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절친한 22년지기로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던 최 감독과 이 코치였기에 축구계 인사들도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모 원로 축구인은 “(최)윤겸이나 (이)영익이 모두 예절바르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라며 혀를 찼다.
지난 4월2일 대전 월드컵경기장내 구단 사장실에서 열린 자체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기자 회견을 가진 최 감독은 “성적도 좋지 않고, 팀 운영이 워낙 어렵다보니 주변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고 그걸 마음속에 쌓아두다가 그만 오해 끝에 사고가 일어났다. 귀가 얇아 경솔히 행동했다”고 해명했다.
나흘간 모처에서 휴식을 취하다 이날 구단을 찾은 이 코치는 “제대로 감독을 보좌하지 못했다. 팀이 어려울수록 더 뭉치고,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했어야 했는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엎질러진 물. 코칭스태프의 도덕성 문제와 사건을 감추려 했단 이유로 맹비난을 받는 대전은 그저 파장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만을 바랄 뿐, 뾰족한 도리없이 발만 구르고 있다.
쟁점 2
폭행 야기한 소문의 진상
최 감독과 이 코치가 동반 사퇴하는 선으로 마무리될 듯하던 사건은 ‘사퇴 사유는 성적이 아닌 폭행’이란 대전의 한 지역지의 단독 보도로 일파만파 번졌다. 상처 치료를 위해 시내 모 병원을 찾은 이 코치의 모습을 해당 언론 사건팀 기자가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황이 밝혀진 현시점에서의 최대 포커스는 최 감독이 폭행을 가할 정도로 영향을 준 사안이 무엇이냐에 있다.
최근 대전 구단 내부는 최 감독이 그간 매끄럽지 못했던 ▲선수 방출 및 기용 ▲용병 수급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사퇴한다는 이상한 루머가 나돌며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 감독의 후임으로 이 코치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얘기가 함께 나왔고, 심지어 그 뒤를 받쳐주는 실체모를 세력이 존재한다는 근거없는 소문도 나돌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두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공식 임기가 07시즌 말까지로, 아직 9개월 이상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최 감독과 졸지에 사령탑을 노리고 있는 불순한 세력의 중심에 서게 된 이 코치는 이로써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고 말았다.
물론 오해를 풀려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이윤원 대전 사장과 권도순 이사는 최 감독과 이 코치를 불러내 화해시키려 했다. 그러나 결론은 이 코치 자택에서의 폭행.
대전은 쉬쉬하며 이들 둘을 성적 부진을 들어 ‘자진사퇴’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결국 내막이 드러나 결정을 번복, 관계자 모두가 얼굴을 붉혀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대전 선수단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예전의 중흥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최 감독과 이 코치의 소식
은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코칭스태프 서로가 불신하는 모습을 지켜본 선수들은 갈팡질팡했고, 내부에선 모종의 ‘편가르기’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원 사장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이 코치가 선수단에 재합류하기로 최종 결정,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썩은 고름은 완전히 뽑아내지 못했다. 결국 루머의 진원지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이상,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는 게 사
실이다.
쟁점 3
무능력 프런트와 월권 행위 서포터스
“이번 일로 참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프런트의 개혁에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경남FC와 K리그 홈경기가 치러진 지난 4월1일과 징계위원회가 열린 4월2일, 이틀에 걸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윤원 사장은 코칭스태프뿐 아니라 프런트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혁을 약속했다.
사건은 최 감독과 이 코치의 갈등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데에는 원인모를 악소문이 퍼지는 상황을 보고도 수수방관한 프런트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게 구단 수뇌부의 생각. 그저 쉬쉬하는데 바빴고, 내부 기강을 다잡기보다 주위의 시선을 더 무서워했다.
최 감독을 밀어내고, 이 코치가 사령탑에 오른다는 팀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민감한 루머가 번질 때에도 대전 사무국에서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주변의 잡음을 막아주고 외풍을 차단해야 할 프런트들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넋놓고 기다렸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번 회견에서 이윤원 사장은 “(감독 경질)소문이 있는지도 몰랐다. 때문에 처음 얘기가 나왔을 때 무척 당황했다”며 보고가 늦은 것에 대한 서운함을 표출했다.
그러나 이같은 소문은 올 시즌 들어, 더 멀게는 작년부터 심심찮게 흘러나오던 얘기였기 때문에 구단 고위층에서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아무래도 의문스럽다. 설령 사장이 정말 몰랐다해도 대전 프런트들의 매끄럽지 못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은 면피받기 어렵다.
외풍에 대책없이 흔들리고, 기본 의사소통도 이뤄지지 않은 프런트의 잘못된 행동은 또 있었다. 서포터스들이 거리낌없이 이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할 정도로 개방적(?)이라는 것. 4월1일 경남전을 앞두고, 흥분한 서포터스 일부가 제집 드나들 듯 구단 사무실로 찾아와 사건 관련 상세한 내막
을 밝히라며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팀의 근간인 팬들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묵살하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규정된 과정을 거치지 않은 행동은 프런트가 사전에 차단했어야 했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고 욕설까지 퍼부으며 구단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일부 서포터스의 몰지각한 행동은 정치 세력처럼 비쳐질 뿐, 순
수하게 축구를 즐기는 팬으로 보기에 어려웠다.
심지어 이들은 최 감독 폭행과 관련된 보도가 나오자 사건 배후 세력으로 일부 언론과 프런트 일부를 지목하는 등의 내용이 적힌 항의성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다.
4월1일 경남전서 내걸린 ‘대전 시장 물러나라!’ ‘무능력한 프런트, 개념 관광 보냈냐!’ 등의 플래카드는 차라리 장난이었다. 사건 관련, 프런트 개입의 진위여부를 떠나 팬들이 구단 운영까지 침해하는 월권행위를 한 셈이다.
현재 대전 서포터스는 이해관계에 따라 기존 퍼플크루와 UFST, 두 부류로 갈려진 상태로 응원 문제 등을 놓고 심심찮게 갈등을 빚어 대전 구단의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대전의 시즌 성적이 나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불편한 동거’ 최윤겸-이영익 위기 극복하나?
불미스런 폭력 사건에 휘말린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수석코치. 일단 공식석상에서 화해는 했다.
그러나 정말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두 손을 맞잡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건이 깨끗하게 해결된 게 아니라 더 비화되기 전에 서둘러 덮어버리려 했단 인상이 짙어 씁쓸함을 더한다.
또 사건 발발부터 일주일간, ‘동반 사퇴→팀 잔류’로 상황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많았다.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폭력과 이를 야기한 각종 음해와 루머, 구단이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 등에 축구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윤원 대전 사장의 말대로 “대승적 차원”의 결정으로 사퇴대신 남은 임기를 이어가게 된 최 감독과 이 코치지만 아무래도 불편한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각에선 ‘적과의 동침’이라고 정의할 정도.
게다가 ‘감독 사퇴’를 둘러싼 소문의 진원지가 어딘지 확실히 추적하지 않고, 서둘러 봉합해 언제고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토종 기업들의 투자가 운영 필수여건인 대전은 이미지가 나빠져 스폰서를 구하는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추이에 따라 팀 존폐가 걸렸다는 이윤원 사장의 한숨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풍성한 볼거리로 팬들을 사로잡는 K리그 전체 판도와는 달리,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대전시티즌.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옛말처럼 대전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할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을지 축구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전=남장현 yo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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