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년 전인 지난 2004년 이맘 때, 아마추어 야구계는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떠들썩했다.
선수 스카우트 및 해외 진출(MLB)과 관련, 당시 신일고 야구부를 지도하고 있던 장호연 감독(47·전 OB)의 비리 파문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모 스포츠 신문의 단독 보도와 함께 일파만파 번져나간 이 파문으로 장 전감독은 대한야구협회(회장 이내흔)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 복권되지 못한 상태로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칩거 중에 있다. 지난 5월 1일 오후, 한 작은 카페에서 만난 장 전감독은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다”면서 야구계에 용서를 구하는 한편, “꼭 한번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는 자신의 마지막 바람을 드러냈다.
본지는 장 전감독 파문의 간략한 내막과 함께 현재 자신의 심경 및 근황, 이와 관련한 야구인 각계각층의 반응을 살펴봤다.
“3년은 차라리 지옥이었다”
“후회해도 늦었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런데 기회가 주어질까요?”
120km/h의 저속 투구로 완봉승을 거두고, 삼진을 하나도 잡지 못했음에도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세운 ‘왕년의 스타’는 더 이상 없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오며 지어보이던 특유의 미소도 잃은 지 오래다. ‘너구리’로 불리며 야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장호연 전 신일고 감독의 얼굴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의 지옥같은 시간도 참아냈다고 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불미스런 일로 야구판을 떠난 지 어느덧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아무도 장 전감독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가 처음 외부와 접촉하는 것이라 했다. 그만큼 심적 부담이 컸다.
“입이 열 개라도 야구인들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사죄하고, 또 사죄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무릎이라도 꿇고 (피해자들에게)빌고 싶습니다.”
사건은 200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일고 야구부의 장 전감독이 같은 해 4월28일 선린 인터넷고와 연습경기를 통해 보스턴, 애틀랜타, 뉴욕 메츠, 플로리다 등 미국 메이저리그 6개 구단의 스카우터들을 초청해 유망주 서동환(투수)에 대한 테스트를 실시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사태가 촉발됐다. 유망주들의 대거 이탈로 고사 직전에 놓였던 아마추어 야구계는 현역 감독이 MLB 구단과 직접 접촉해 ‘트라이아웃’을 실시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의혹은 또 있었다. 야구협회의 진상조사 결과 장 전감독이 소속팀 선수(김현우, 두산) 부친과 공증서(03년 9월)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같은 해 5월2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내용이 놀라웠다. 김현우가 해외에 진출할 경우 사이닝 보너스의 25%와 매년 연봉의 5%를, 만일 국내 프로에 입단할 경우, 계약금의 30%를 장 전감독에게 지급한다는 것.
결론을 얘기하자면 장 전감독이 ‘학교 지원금’ 확보를 위해 착복했다는 돈은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공증서도 원본이 아닌 사본이었다.
그러나 학교가 아닌, 개인 명의로 계좌를 만든 게 화근이 됐다. 더구나 국내 입단 시 해당 구단이 선수의 출신 학교에 후원금 명목으로 계약금 12%를 내놓게 돼 있어 문건의 내용에 대한 의혹도 컸다.
모든 정황이 뚜렷했다. 여기서 (돈의)착복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이 점에 대해 장 전감독은 변명할 수 없었다. 그저 참회하는 심정으로 매순간을 지낸다고 했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다.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른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마음을 비운 상태입니다. 마무리가 깔끔해야 하는데, 그저 꿈이지만 꼭 한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지막 남은 모든 정열을 야구에만 쏟아보고 싶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장 전감독이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동안 그의 ‘복귀’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금기 아닌 금기였다.
파장이 워낙 컸다. 정말로 복귀는 불가능한 일일까.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엇갈린 야구계 반응
장호연 전감독의 복귀에 대해 야구계 반응은 거의 반반으로 엇갈리고 있다. 최근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선수권이 치러진 동대문구장에서 만난 야구협회 관계 인사들과 각 프로팀 스카우터, 현장의 일선 지도자들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뉘고 있다.
복귀에 찬성하는 쪽은 ‘야구 발전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용서하자’, ‘반성의 시간이 3년이면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세웠고, 반대하는 쪽은 ‘아직 시기상조다’, ‘용서받기에는 죄질이 심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전자에 속하는 한 관계자는 “사안이 워낙 민감해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징계 기간이 3년이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뒤 “선수든, 지도자로든 분명 장 전감독이 야구 발전에 큰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조심스레 의사를 개진했다.
또 다른 인사는 “비리 문제는 어느 특정인 잘못이 아니다”라며 “오랜 관행을 타파할 생각은 안하고, 특정인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을 펼치는 후자측도 일리가 있다. 모 구단 스카우터는 “영구제명도 아닌, 무기한 자격정지로 끝났을 뿐”이라며 “오히려 처벌이 약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다른 지도자는 “용서를 구하기에는 죄가 매우 크다”면서 “좀 더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떠나있는 바람에 자신을 둘러싼 야구계의 분위기와 주장들을 지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있는 장 전감독도 양측 의사를 모두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제 생각을 해준다는 점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반대하는 것도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 전감독에게는 휘문고에서 대(代)를 이어 운동하는 아들(장영빈, 17)이 있다. 복귀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다.
양손으로 모두 공을 뿌릴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아들에게 떳떳하게 지도할 수도 없었다. 뒤늦게 아버지 사건을 접한 아들은 우울증에 걸려 운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
“학부형이 된 지금에야 양측을 아우르는 균형감을 찾았습니다. 아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차라리 야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했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텐데, 할 말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호소도 해본다. 장 전감독 복귀에 찬성하는 측근들은 아버지 잘못이 아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그의 복귀에 반대하는 인사들도 이 점에는 동의한다.
장호연 전감독에게 과연 어떤 결말이 찾아올까. 끝났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음지에서 비밀리 진행되는 어려운 문제에 야구계는 여전히 곤혹스럽다.
남장현 yo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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