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이 베어벡 사활 결정
아시안컵이 베어벡 사활 결정
  • 상암/대전=남장현 
  • 입력 2007-06-14 11:54
  • 승인 2007.06.14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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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베어벡호 고개드는 위기론
“베어벡 감독?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한국대표팀 감독은 그에게 최고의 자리입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친선 A매치 취재를 위해 방한한 네덜란드 기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또다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6월2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에서 한국은 0-2로 무릎을 꿇었다. 부상중인 영국 프리미어리거들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한판이었다. 더 한심한 것은 핌 베어벡 감독이 자신의 전술적 패착을 인정하기보다 K리그 일정과 특정 선수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모습이었다. 반면 자국 대표팀과 함께 방한한 네덜란드 기자들은 “베어벡 감독이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 올라갈 수 없다”고 꼬집었다. 41년만의 아시안컵 재탈환을 노리는 한국 축구에 미래는 과연 있는 것일까.



◆ 포커스 1
프리미어리거 공백


부상으로 오는 7월 중순 동남아 4개국에서 개최될 아시안컵 출전이 사실상 어려워진 영국 프리미어리거 3인방의 공백은 베어벡 감독에게 너무도 컸다.

대표팀은 박지성(맨체스터Utd), 이영표(토튼햄 핫스퍼), 설기현(레딩FC)의 빈자리를 끝내 메우지 못하고 네덜란드에 무너졌다. 승리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워낙 무기력했다.

대안이라고 내놓은 선수들의 플레이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골 결정력 부족-수비 뒷공간 허용’이라는 해묵은 과제만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네덜란드전은 아무런 특징이나 색깔이 없었다. 공이 오면 내지르기 바쁜 ‘뻥’축구에 측면에 의존한 단조로운 공격 루트는 상대에 훤히 읽혔다. 같은 4-3-3 포메이션이었지만 차원이 달랐다.

본래 수비형인 김정우를 미드필드 중앙에 배치, 사실상 수비를 7명이나 투입했어도 침투 패스 한방에 뒷공간을 내주는 불안한 모습은 여전했다.

김정우는 투지있는 공격 가담으로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박지성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로는 확실히 부족했다. 설기현을 대체한 염기훈도 부실했다. 한국의 모든 공격은 이천수가 위치했던 오른쪽에 한정될 뿐이었다.

특히 수비가 위험했다. 이영표 부상으로 확실한 왼쪽 측면 자원을 잃은 베어벡 감독은 김동진을 투입, 오른쪽의 송종국, 센터백 강민수-김진규와 밸런스를 이루도록 주문했지만 상대의 3각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차례 실점 모두 2선에서 연결된 배후 패스에 위험 지역을 내준 수비 실책에서 비롯됐다.

상대 공격수들이 워낙 빨라 측면 오버래핑은 꿈도 못꿨고, 가끔 전방으로 진출해도 과감히 볼을 처리하지 못했다. 그나마 몇차례 이어진 문전 크로스도 대부분 미드필드 플레이에서 이뤄졌다. 공격-미드필드-수비까지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아시안컵까지 프리미어리거 3인방이 회복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날 출전한 선수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답답했던 경기였다.


◆ 포커스 2
패인이 김두현-프로연맹탓?


네덜란드전 직후 공식 인터뷰룸을 찾은 국내외 취재진들은 깜짝 놀라 귀를 의심해야 했다. 베어벡 감독이 김두현의 플레이와 K리그 일정을 네덜란드전 패인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침통한 표정으로 물을 연신 들이켜던 베어벡 감독은 후반 30분 김정우를 대신해 필드에 들어선 김두현의 플레이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김두현을)출전시킨 것을 심각히 후회하고 있다. 오늘 모습은 최악이었다. 앞으로 이런 식이면 절대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정 선수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나올 때 감싸야 할 사령탑이 도리어 실명을 거론하며 힐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02 한일월드컵 개막을 앞둔 거스 히딩
크 전감독이 갑자기 불거진 ‘최용수 항명설’을 작성한 기자에게 망신을 준 적은 있어도 선수를 탓한 적은 없었기에 협회 관계자들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감독의 공개 비난을 받은 김두현은 믹스트존에서 “인정한다. 내가 못했다”고 했으나 서운함이 가득했다. 김두현의 소속팀 성남일화 김학범 감독은 “선수를 감싸긴커녕, 어떻게 내버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베어벡 감독의 ‘망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로축구 K리그의 타이트한 일정에 대해서도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개월간 K리그는 팀당 22경기를 소화했다. 어리석다. 특히 성남과 수원 등 대표 선수를 대거 보유한 팀일수록 더 힘든 일정을 치렀다. 이번 경기도 사흘전에야 대표팀을 소집해 손발을 맞춰봤다.”

선수 소집과 훈련에 항상 애를 먹는 베어벡 감독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빡빡한 리그 일정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이번 발언은 파문을 더한다. 유럽의 경우, 훨씬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주력들에게 줄부상을 입힌 프리미어리그는 제외하고 K리그에 대해서만 지적하는 모양새도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연맹 고위 관계자는 “자꾸 히딩크 시절을 생각하는데, K리그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베어벡 감독의 언행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포커스 3
“베어벡 성공하고 싶으면 한국서 뭔가 이뤄야”


아시아 투어중인 자국 대표팀과 함께 방한한 네덜란드 취재진은 약 30여명. 이처럼 많은 외신 기자들이 단일 경기에 몰린 것은 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평가전 이후 처음이라는 게 협회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네덜란드 기자들은 한결같이 “한국대표팀은 베어벡 감독에게 최고의 자리(Job)”라고 답했다. 이들은 “베어벡 감독이 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만큼 여기서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힘들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현지의 저명 축구 전문지 「부트발 인터내셔널」의 타코 반 덴 벨데 기자는 베어벡 감독에 대한 유럽내 평판을 묻는 질문에 “로테르담, 페예노르트, 시타르트 등 네덜란드 리그에서 활약할 때 남긴 인상적인 기록이 없다”고 단정한 뒤 “아직 2류(The second level)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벨데 기자는 “코치로서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 휘하에서는 좋았을지 몰라도 사령탑으로서의 능력은 확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는 베어벡 감독이 남을 보좌하는 참모형 지도자에 더 어울린다는 국내 언론들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유명 축구잡지 「월드사커」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클라스 얀 드라파트도 “베어벡이 유럽에서 발을 붙이기 위해 더 강한 임팩트를 줘야 한다”며 “아시안컵이 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선수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르코 판 바스텐 감독만이 예의상 “베어벡 감독은 좋은 지도자”라고 했을 뿐, 경기에 직접 나선 선수 대부분이 “베어벡이 네덜란드인이라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됐다”며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약스의 명 공격수 클라스 얀 훈텔라르와 리버풀의 디르크 카윗은 “유럽에서도 꽤 알려진 한국이 현재 베어벡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고 솔직한 답변을 했다.

한국에서 지위 상승을 모색하는 베어벡 감독으로선 썩 달갑지 않은 얘기일 수도 있으나 사실 이번 평가전은 그에 대한 유럽내 객관적인 평가와 위치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다. 부진을 만회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 했던 베어벡 감독. 혹을 떼려다 오히려 혹을 붙인 게 아닌지, 여하튼 상황이 묘하다.


#베어벡, 아시안컵 4강 못들면 사퇴?

위기에 직면한 베어벡 감독이 처음으로 자신의 사퇴를 언급해 관심이 증폭된 가운데, 이상한 단서를 달아 의문을 남겼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 6월6일 UAE와 08 북경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3-1 승)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아시안컵 4강에 오르지 못하면 사퇴 용의가 있다”면서도 “내 실수가 많다면 사퇴하겠지만 외적 요인들의 영향이 있다면 다른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물론 베어벡 감독은 외적 요인의 예로 ‘편파 판정’ 등을 꼽았으나 또다시 패인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음을 은연중 밝힌 셈이다. 네덜란드와의 A매치 이후 선수와 K리그 일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베어벡 감독이다. 어딘지 꺼림칙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상암/대전=남장현  yo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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