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목 인기는 한국·일본만의 독특한 문화
두 종목 인기는 한국·일본만의 독특한 문화
  • 남장현 
  • 입력 2007-07-19 15:37
  • 승인 2007.07.19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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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차이

묘한 일이다. 결코 공존할 수 없을 듯한 최고 스포츠 두 종목이 나란히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 바로 야구와 축구 얘기다.
두 종목이 모두 인기를 누리는 것은 한국과 일본만이 지닌 특징이다. 특정 종목에 치우친 미국이나 유럽의 입장에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양분화된 스포츠 팬들은 서로의 종목이 더 우수하며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승자는 없다. 딱히 누가 앞선다 말하기도 어렵다. 서로의 특색이 워낙 다른 이유에서다.
국내 프로 스포츠 최고봉을 놓고 벌어지는 끝없는 전쟁. 야구와 축구를 비교해봤다.



두 종목의 독특한 문화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고, 이유도 비슷했다. 80년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전대통령의 5공화국은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우민화 정책의 일환인 ‘3S(Sports, Screen, Sex)’를 실시, 이에 따라 82년과 83년 각각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시작됐다.

그러나 두 종목의 배경과 토양은 전혀 달랐다. 프로야구는 처음부터 철저한 지역 연고제를 정착시킨 반면, 대표팀의 아성에 밀린 프로축구는 그렇지 못했다.

경제 개발에 전념하느라 오락거리가 거의 전무했던 70년대, 각 지역을 대표하는 학교들이 경쟁하는 고교 야구는 최고 스포츠 이벤트였다. 이러한 지역 감정은 고스란히 프로야구로 전이되며 어렵지 않게 성공 기반을 마련했다. 5공도 여기에 한몫했다. 정치인들은 두 종목을 동시에 프로화할 경우, 민심이 나뉠 것을 우려해 야구에 보다 큰 힘을 실어줬다.

축구는 외로웠다. 야구는 정치권의 전폭적 지원속에 프로화가 순조롭게 전개됐으나 축구는 조명시설 구축 등 자본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정부의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협회 차원의 노력이 더 컸다. 축구계는 프로팀 유공, 할렐루야 이외에 실업팀 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을 끌어들여 세미프로 형식으로 리그
를 출범시켜 현 K리그의 모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연고 정착에는 실패했다. 축구도 연고제를 도입했으나 기업의 색채가 너무 컸다. 야구는 아마 시절부터 지역 팬들에게 ‘나의 팀’이란 인식을 심어줬지만 축구는 모기업이 위치한 곳에 자리를 잡아 ‘기업 선전용’이란 느낌이 강했다. 이는 광주일고, 군산상고, 부산고 등 야구 명문고 상당수가 지역 명칭을 사용한 사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지방 모 축구단의 프런트는 “우리 연고지에는 지역명을 딴 고교팀이 거의 없다. 또 이곳 선수들의 목표는 우리 팀이 아닌 수도권 팀에 입단하는 것이다”라고 직면한 현실을 설명했다.

당연히 프로축구에서 프렌차이즈 스타 배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 고교 야구팀 선수들은 대다수가 해당 연고팀에 입단하는 게 꿈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해외에 나갔다가 국내로 컴백한 뒤 자신의 연고팀으로 복귀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지역 연고제냐, 기업 일변도냐…. 부정할 수 없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분명한 차이다.


문화·역사 등 영향

지역 연고제의 차이와 함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비교함에 있어 국제 대회와 우리의 문화 및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축구의 인기가 야구에 비해 꼭 뒤진다고 할 수 없지만 그동안 국내 축구는 지나치게 대표팀에 편중돼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19세기 말 영국 해군에 의해 도입된 축구는 주로 국제 경기 위주로 펼쳐져 국민적 관심을 끌어왔다. 경평축구와 같은 지역 라이벌전도 있었으나 전국적 관심을 사기에는 부족했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시절, 민족의 한을 달래준 것은 경평전이 아닌 한국 대학팀과 일본 대학팀이 벌인 준 국제 경기였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 탓일까. 광복후에도 국제 대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축구를 언급하면 곧바로 대표팀이 연상될 정도로 ‘축구=대표팀’이란 공식이 주류를 이뤘다.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 태국 킹스컵, 박스컵, 아시안컵처럼 아시아권 대회는 물론 월드컵 등 끊임없이 열리는 굵직한 국제 대회에 축구팬들은 열광했다. 국내 축구의 활성화를 위해 출범한 프로축구가 국제 무대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붉은악마’로 대변되는 대표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단순히 98 프랑스 월드컵과 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고 보기 어려운 셈이다.

그러나 야구는 축구와 상황이 달랐다. 일제 강점기에 축구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면 야구는 광복과 6·25사변 이후 전방위로 유입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었다. 미국 문물이 퍼지는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즐겼던 스포츠 종목인 야구도 널리 보급된 것.

더구나 야구에는 축구처럼 마땅히 떠오르는 국제 대회도 적을 뿐더러 설령, 있다해도 주로 아마추어에 머무는 경우가 잦았다. 작년 한국 야구계를 들뜨게 한 WBC 대회도 갓 출범한 초대 대회였으니 더 이상의 부연이 필요없다.

프로야구가 축구처럼 부침을 겪지 않고 무난히 위상을 확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장현  yo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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