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외풍 막아줄 경영인 필요”
“대전, 외풍 막아줄 경영인 필요”
  • 대전=남장현 
  • 입력 2007-07-26 11:09
  • 승인 2007.07.26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필드로 복귀한 ‘야인’김호 감독

일평생 축구 외길인생을 걸어온 노(老)장 김호 감독(63)이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7월16일 대전 시티즌의 4대 감독으로 공식 부임한 것. 지난 03년 12월 9년간 몸담았던 수원 삼성을 떠난 지 3년8개월만의 현장 복귀다.
용병 파문과 고위 프런트의 홍보비 유용, 최윤겸 전감독과 이영익 코치간의 주먹다짐 등 내우외환을 겪은 대전 구단은 새 판을 짤 인물로 ‘야인’ 김호 감독을 주저없이 선택했다.
반면 수원을 떠난 뒤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명예회장을 맡아 축구협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김 감독의 재등장에 축구계는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본지는 7월17일 오후 대전 월드컵구장서 열린 브라질 명문클럽 인터나시오날과의 친선전(0-2, 대전 패)을 앞둔 김호 감독을 만나 한시간 가량 인터뷰를 가졌다.


◆ “모든 걸 건다”


“지도자만 꼭 32년 했습니다. 현장이 늘 그리웠어요.”

이보다 명쾌한 설명이 있을까. K리그 지도자로 통산 13차례나 크고 작은 우승컵을 품에 안았고, 프로 최다승인 188승을 올린 명장 김호 감독은 그라운드 복귀 이유를 ‘그리웠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44개월만의 컴백.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고민도 많았고 부담도 컸다. 기회를 뺏긴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그러나 열정을 속일 수 없었다. 작년 모 언론사의 해설위원으로 독일월드컵 현장을 누비며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익힌 게 가슴에 불을 지폈다.

이런 김 감독에게 불과 1년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최윤겸 감독의 사퇴로 사령탑이 공석이 된 대전이 차기 감독 후보를 공모한 것. 개인 에이전트(곽희대 A.I스포츠 대표)를 통해 낸 이력서가 통과, 현장에 복귀했다.

김 감독의 계약 조건은 09년까지 2년이며, 옵션제한 순수 연봉만 대략 2억원선에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시절보다 절반 이상 감해진 액수. 섭섭하진 않을까.

“돈은 중요치 않아요. 60넘은 노인네가 무슨 욕심이 있다고. 그냥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어 왔어요. 기업이 아닌 시민의 힘으로 이뤄진 팀이란 점에 매력을 느꼈고요.”

김 감독은 구단이 다른 후보들을 대신해 자신을 택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먼저 침체된 분위기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각종 악재가 겹쳐 선수단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선수들 의욕은 수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아요. 우환이 많았죠. 열심히 하는데 성과는 없고…. 잘 달래서 바꿔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무작정 ‘팀에 대한 충심(忠心)’만을 요구할 수는 없는 법. 김 감독은 구단 인프라 개선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환경이 너무 열악해요. 숙소와 연습구장 재구축이 시급합니다. 제 계약서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구단과 적절한 협의를 통해 꾸준히 개선하겠습니다.”


◆ ‘축구 브랜드’ 창출하는 지도자 포부

김호 감독은 팀 정상화의 최소 기한으로 1년6개월을 꼽았다. 남은 올 시즌은 팀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원하는 색채를 입히기 위해 1년을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전이 워낙 축구 열기가 강해 보다 빨리 자신의 비전을 완성시킬 수도 있다는 부연도 덧붙였다.

“프런트와 선수단, 팬들이 옳은 뜻을 가졌다면 수년내로 대전을 K리그를 선도하는 팀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당장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물론 김 감독이 언급하는 ‘비전’이란 으레 프로팀들이 꿈꾸는 우승이 아니다. 전력차가 뚜렷한 이상, 시민 구단은 기존 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 목표는 우승이 아닙니다. 토너먼트 방식의 FA컵이라면 모를까, 리그 우승은 어렵습니다. 유럽만 봐도 2~3개 팀이 우승을 다툴 뿐 나머지는 흑자에 초점을 맞추잖아요. 대전도 그렇게 접근해야죠.”

흑자 경영.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인천 유나이티드 안종복 단장의 마인드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 김 감독은 인천을 대전의 경영 모델로 꼽았다. 이를 이루기 위해 전문 경영인의 육성과 유망주 발굴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그간 대전에는 중심적인 전문 경영인이 없었습니다. 뜬소문에도 크게 흔들린 이유입니다. 외풍을 막아줄 경영인이 필요합니다. 전 행정가는 아니지만 흑자를 위해 유망주를 발굴하는 방법으로 팀을 돕겠습니다.”

결국 수원에서 김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선수 육성’을 대전에서도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좋은 선수를 잘 키워 타 팀에 넘겨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 당연한 전략이다. 축구를 상품화해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비전도 갖고 있다.


◆ “축구계, 쓴소리가 지겹다고?”

“아시아는 유럽, 남미에 이어 3류권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수나 클럽 모두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죠. 생존을 위한 마케팅 전략이 필수입니다. 세계 정상권이 아
닌 이상, K리그는 홍보가 아닌 국민적 여가와 삶의 안식처로 남아야 합니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호 감독이 왜 ‘야인’으로 기억되는지…. 수원을 떠난 뒤 김 감독은 축구계 야당격인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회장을 맡아 줄곧 입바른 소리를 해왔다.

특히 협회와 프로연맹이 그의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기획부터 규정, 각종 위원회 행정까지 김 감독의 입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다.

현직을 떠난 힘없는 한 늙은이의 잔소리가 아니라 수십년간 현장 지도자로 활동하며 느낀 진솔한 경험과 문제점이었기에 축구계는 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이날 인터뷰서도 김 감독은 다양한 부분에서 가감없이 한국축구를 성토했다. 먼저 아시안컵 탈락 위기를 맞은 대표팀과 K리그가 도마에 올랐다.

“한국축구 발전은 대표팀의 성장과 비례하는 게 아닙니다. 풀뿌리 축구부터 프로팀까지 모든 부분이 잘 연계돼 흘러가야죠. 하나 K리그는 투자가 적습니다.
팬들의 눈은 높아졌는데 언제나 제자리죠. 아시안컵 위기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올 것이 빨리 온 것뿐입니다.”

협회와 연맹의 행정과 제도도 당연히 김 감독의 ‘쓴소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와 함께 마땅한 인물이 적당한 위치에 올라야 행정이 순탄할 수 있다는 지론도 함께 펼쳤다.

“축구인들이 반목하는 것은 우습지만 분명한 건 좋은 규정과 제도와 기획, 각급 위원회의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불행히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업무를 수행할만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적합한 인물을 쓰지 못하는 데 큰 문제가 있는거죠.”

김 감독은 대전을 이끄는 한편 지도자협의회 업무는 계속할 계획이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고선 발전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저만 편하면 될까요. 축구는 계속되는데? 누군가 총대를 짊어져야 합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개정하는 곳에는 항상 있을 겁니다. 그게 ‘마이 웨이’니까….”

대전=남장현  ypshike3@dailysu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