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야구대회가 벌어질 때마다 팬들은 ‘괴물’ 투수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한다. 현재 진행중인 제37회 봉황대기 야구선수권대회도 예외는 아니다.
08시즌 두산의 신인 1차 지명을 받은 성남고 좌완 진야곱(18)이 개성고와의 1회전에서 151km를 찍어 올해 고교야구 최고 구속을 기록한 것. 언론은 서둘러 진야곱에게 ‘괴물’이란 호칭을 부여했다. 그러나 무조건 볼이 빠르다고 해서 ‘괴물’이란 표현이 맞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구단마다, 또 스카우터마다 다른 판단기준이 있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김병현이나 박찬호도 국내에선 그리 위협적인 투수가 아니라고 평한다.
왜 이처럼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올까.
우수 투수 판단기준 ‘시각차’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우수한 투수를 가늠할 때 컨트롤에 점수를 높이 줘야 하는지, 아니면 볼의 속도에 우선권을 줘야 하는지 통 기준을 잡기 힘들다.
선수를 직접 살펴야하는 스카우터들은 일단 “딱히 정해놓은 기준은 없다”면서 “구위 구속 구질 모든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은 선수를 고를 때 각자의 기준을 만들어 두고, 적격자를 가려내는 게 사실이다. 팀별로 선수 선발기준이 다름은 당연하다.
진야곱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이다. 상당수 스카우트들은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글쎄(?)’란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다.
두산 스카우터팀 이복근 차장은 “또래중 상위 클래스임은 틀림없지만 B+수준일 뿐, A급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140km대를 던져도 제구력이 있는 선수와 150km를 넘겨도 제구력이 없는 투수중 한명을 고르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피드는 연습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으나 컨트롤이 안되는 선수는 기본이 없어 발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구단 스카우터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한 스카우터는 “(진야곱이)고교 3학년인데다 좌완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하다”면서도 “어느 한쪽만 갖추고선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은 국내 야구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으로 ‘회전력과 정교한 컨트롤’을 꼽았다. 통상 ‘폼이 예쁘고 섬세한 투수’가 구단의 최우선 지명을 받는다. 회전력만 갖추면 스피드는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차장은 “140km후반대의 구속과 다양한 구질을 가진 김병현도 대학까진 평범한 선수였다”면서 “만약 국내에 남았다면 지금처럼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구위’ 강조하는 MLB
또다른 의문 하나. 국내 야구가 ‘정교한 컨트롤’을 강조하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해답은 ‘타자들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각 구단 스카우터들과 코칭스태프 등 전문가들은 우스갯소리로 “참을성 많은 한국 타자들이 투수 선발기준을 만들었다”고 한다.
뛰어난 선구안을 지닌 타자들이 국내에 많아 스피드만을 무기로 삼아선 결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때문에 폼과 회전이 뛰어나고 섬세한 제구력을 갖추면 스피드가 좋지 않더라도 한국에선 어느 정도 통할 것이라 여긴다.
반면 미국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회전력이 좋지 않아도 구속이 빠르고, 다양한 구질을 갖췄다면 MLB에서도 절반은 성공하고 시작할 수 있다고 여긴다. 국내에 비해 적극적으로 볼을 공략하는 타자들이 많은 까닭이다.
이복근 차장은 “미국은 투수를 고를 때, 컨트롤이 좋지 않더라도 움직임이 많고, 여러 가지 구질을 갖춘 선수를 선호한다”며 “MLB에선 구속 구위가 좋으면 컨트롤은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통산 100승을 넘긴 박찬호나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병현이 MLB 성공신화를 달성했어도 국내에 컴백했을 경우, 성공하기 어렵다는 예측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또다른 예로 원하는 볼이 오길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최희섭이 KIA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한편 일본은 어떨까. 일단 수준을 떠나 전체적 특색과 흐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대세다. 하지만 정교함만큼은 비교할 수 없다.
이광권 SBS스포츠 일본야구 해설위원은 “투수들의 정교함이나 섬세함에 있어선 한국이 따라갈 수 없다”면서 “컨트롤이 좋지 않은 투수는 정말로 일본에서 생존하기 어렵다”고 했다.
올 시즌초 잠깐 부침을 겪다 다시 살아난 이승엽과 이병규의 “제구력이 한국에 비해 훨씬 정교해 적응하기 어려웠다”는 반응이 새삼 이해된다.
남장현 yp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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