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 왠지 싸구려 조폭영화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이 문장이 정확히 어울리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인터뷰장.
정치, 경제, 사회 가릴 것 없이 특정 사안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흥미로운 주제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취재원을 괴롭히고, 기자들이 지겨운 취재원들은 인터뷰를 피해 도망가기 바쁘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 기자들은 선수들의 코멘트 한마디라도 따기 위해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독 말하기를 좋아해 매스컴을 활용하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기자만 보면 무조건 질색하고 외부로 튀는(?) 경우도 있다. 천태만상이다.
요지경속 스포츠 스타들의 인터뷰 세태를 정리해봤다.
인터뷰 응하는 자세
다른 프로-아마추어 선수들
선수들의 인터뷰 기피. 스포츠 기자들에게는 최악의 순간이다. 뭔가 한마디라도 들어야 기사거리가 나오는데 만약 선수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당최 방법이 없다.
여기서 선수들의 성격과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다. 소극적이고 소심한 선수들일수록 자신이 기사화되는 것을 꺼린다. 반대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선수들은 인터뷰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기자들도 사람인지라 이런 선수들에게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좋은 기사를 쓰려 노력한다. 반면 늘 기자들의 눈치만 보고, 매사 은근슬쩍 빠져나가려는 선수들에겐 좋은 기사가 나가기 어렵다. 선수들의 기분이 좋을리 만무한 일. 악순환의 연속이다.
축구나 야구 등 소위 메이저 종목들에 이같은 기피 현상이 특히 심하다. 몸값이 수십억에 달하는 일부 스타급 선수들은 굳이 자신을 홍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인지, 기자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프로축구 K리그의 경우만 봐도 현 세태와 분위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90분 경기시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 기자들은 감독 및 선수들의 인터뷰를 위해 필드에 마련되는 인터뷰장으로 내려간다. 월드컵 등 규모가 큰 국제대회의 경우, 공식 인터뷰룸과 믹스트존 인터뷰가 허용되지만 프로축구는 현실상 그렇게 방만하게 운영하기 어렵다.
일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허겁지겁 락커룸으로 줄행랑친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한마디 해달라’고 간청하고 애걸해도 소용이 없다. 기분이 내키면 인터뷰에 응하고, 그렇지 않으면 응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선수들의 자유다.
그렇다면 모든 게 선수들의 마음대로 움직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프로축구연맹 규약에는 ‘선수들이 별다른 사유없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경우, 소정의 벌금을 부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허나 벌금 액수가 40만원 가량으로 워낙 적어 프로 선수들에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결국 선수들의 자율성과 의식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다.
또 아마추어 종목도 비교적 인터뷰 서비스에 철저한 편이다. 노출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연맹이나 협회 차원에서 인터뷰를 직접 주도한다.
양궁협회 모 관계자는 “심하면 징계처분도 내린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빅 이벤트가 아니면 기자들을 볼 일이 거의 없으니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자는 무조건 피하자’
국내 스포츠에 종사하는 선수들 대부분이 학원 체육과 엘리트 위주의 토양에서 성장해온 경우가 많아 학부모 학교 은사 등 주변 지인들의 입김이 센 편이다.
이들은 돈 관계가 직접 걸린 탓인지 에이전트를 직접 맡는 경우도 있고, 때론 매니저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진학과 졸업이 겹치는 매해 연초와 연말, 마치 연례행사처럼 학원 스포츠 비리 문제가 끊임없이 거론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터뷰 문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일부 학부모들은 운동을 하는 자기 자식들이나 친지에게 인터뷰에 응할지 여부를 직접 결정하기도 한다. 실제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성인이 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부모나 친지들의 입장에선 선수들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영원한 ‘아기’일 뿐이다.
프로축구 수도권 모 구단의 P모 선수는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기로 유명해 기자들로부터 ‘기피대상 1호’로 꼽힌다. 벌금도 수없이 냈다고 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인터뷰 거절’이 P모 선수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부모들의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P모 선수는 “자신이 축구를 좋아하고, 뛰는 게 좋아서 할 뿐이지 팬들이나 기사거리를 위해 필드를 누비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하게 항변한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심지어 스포츠 무대를 누비는 상당수 선수가 기자들을 자신을 방해하는 적으로 간주한다는 후문도 있다.
구단에 따라, 선수단 전통에 따라 많이 분위기가 달라지는 편이다. 지방 모 프로팀은 고참 선수들이 후배 선수들을 불러모은 뒤 기자들과 절대로 친분을 쌓지 말도록 지시하고, 관련 교육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때 기자로 활동하다 구단에서 근무하게 된 프런트들의 애환도 크다. 스포츠 일간지에서 현역 취재기자로 활동했던 지방 모 구단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은 언론 자체를 불신한다. 제각기 마음속에 서운함을 감추고 있다. 기자 시절에는 선수단에서 이토록 불신이 크리라 생각지 못했다. 많은 것을 느꼈다. 인터뷰 요령을 담은 매뉴얼을 교육해도 소용없다. 구단과 기자 사이에서 너무 어렵다.”
남장현 yp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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