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메이저리거들의 침체가 전성기의 일시적 부진이 아니라 이미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서 계속되고 있어 이대로 현역에서 물러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맏형격인 박찬호는 마이너리그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있으며, ‘핵잠수함’ 김병현은 소속팀으로부터 방출대기를 당한 상태다. 서재응이나 김선우도 30살을 넘겼지만 언제 다시 메이저리그에 복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90년대말 박찬호를 시작으로 국내의 많은 유망주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다시금 ‘코리안 메이저리거’ 전성기가 돌아올 수 있을지 많은 야구팬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맏형’ 박찬호(34·휴스턴)는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신화’같은 존재였다. 지난 96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많은 활약을 펼쳤고 IMF 위기를 맞던 97년~98년에는 박세리와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올린 승수는 통산 113승.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다는 메이저리그에서 113승은 말처럼 쉬운 성적이 아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몇 해 전부터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던 박찬호는 급기야는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대부분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빅리그 몇 경기에서 ‘땜빵’선발로 나서기는 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최근 마이너리그에서는 등판하는 경기마다 뭇매를 맞고 있다.
부진을 거듭해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박찬호는 최근 모 스포츠지와의 인터뷰에서 “전설의 주인공이 계속 전설을 이어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끝이 있기 때문에 전설이 되는 것이다. 나의 전설은 이제 지났다”며 하락세를 인정했다.
이제 야구팬들은 박찬호가 어떻게 재기할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어떤 식으로 현역생활을 마무리할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듯하다.
내년시즌도 쉽지않아
메이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서재응(30·템파베이)의 상황도 좋지 못하다. 최근 컨디션을 되찾고 몇 경기에서 호투하고 있으나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기가 녹록치 않다.
마이너리그에서 서재응의 성적은 7승3패에 평균자책점이 3.21이다. 75.2이닝 동안 69안타를 맞고 28실점(27자책점)했고 볼넷은 12개만 내주고 삼진은 52개를 잡았다. 구위는 갈수록 좋아져 전반기에 3.94이던 평균자책점을 후반기에는 2.68까지 더 낮췄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메이저리그의 상황은 서재응에게 호의적이지 못하다. 템파베이는 서재응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오는 9월 로스터가 40명으로 확장돼도 한명의 마이너리거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서재응은 어떤 면에서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수 있겠으나 이마저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쳐야 한다.
국내복귀설이 나돌았던 김선우는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 프레스노의 김선우는 지난주 퍼시픽코스트리그 ‘이주일의 투수’로 선정됐다. 김선우는 지난주 2경기에 선발로 나서 2승에 방어율 1.84, 탈삼진 10개로 활약했다. 특히 지난 19일 솔트레이크전에서는 완봉승을 올렸다.
그러나 김선우의 호투가 메이저리그 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유망주 투수가 많은 샌프란시스코 팜의 특성상 나이어린 유망주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올해 시즌 시작 전, 막판까지 김선우의 빅리그 합류 여부를 고심했지만 이 역시 불펜의 한 자리를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우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빅리그 진입을 노려할 판이다.
류제국, 추신수 9월 승격 가능성
그나마 류제국(24·탬파베이)과 추신수(25·클리블랜드)의 상황은 나은 편. 이들은 여전히 구단에서 유망주 취급을 받고 있으며 9월 로스터 확장과 함께 빅리그에 복귀할 것이 유력하다. 내년에도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들은 주전이라기보다는 백업요원으로 뛸 확률이 높아 간간히 출장하는 자리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시 밀려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유망주들이 최소 25세 이전에는 입지를 굳히거나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난 결과를 남기지 못한다면 다시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 눈에 들기가 힘들다는 점은 이들의 어깨를 한층 더 짓누른다.
부상으로 캠프에서 재활중인 백차승(26·시애틀)도 한창 활약해야 할 시점에서 불의의 부상으로 재기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나 내년 시즌 시애틀 매리너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대만은 톱클래스 맹활약
지난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야말로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전성시대였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투수 반열에 오르며 한국인의 자긍심을 한창 높여줬고, 김병현은 우여곡절 끝에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2번이나 손에 끼웠다. 서재응이나 최희섭도 명문팀의 최고 유망주로 한창 주가를 높였었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도 어느덧 ‘한여름밤의 꿈’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단 한 명의 메이저리그도 없이 일본과 대만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부러워할 따름이다. 현재 일본은 이치로 스즈키(시애틀)가 대만은 왕첸밍(뉴욕 양키스) 등이 소속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과연 누가 다시 당당히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의 톱을 장식하며 한국인의 기상을 드높일지 온 국민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이수혁 sports@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