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 뒷담화
2008 베이징 올림픽 뒷담화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9-05 09:19
  • 승인 2008.09.05 09:19
  • 호수 7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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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 물리친 ‘영웅 찬가’ 빛났다
최민호를 비롯한 한국마사회 유도팀 선수들이 베이징올림픽 출전 전 방송인 백지연씨로부터 인터뷰 실습을 받았다. (위) 지난 8월 20일 베이징대 체육관에서 열린 올림픽 탁구 여자단식 3회전에서 한국 당예서가 싱가포르 펑톈웨이를 맞아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당예서는 펑톈웨이에게 0-4로 패해 16강행이 좌절됐다.

뜨거운 여름, 대한민국을 환희와 감동으로 몰아넣은 2008 베이징 올림픽은 유난히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영웅들을 많이 배출해 남다른 의미를 뽐냈다. 미국 여자육상선수 롤로 존스(26)는 어린 시절 집 대신 교회 지하실이 8명 가족의 거처였다. 찢어지게 가난해 집세조차 낼 형편이 못됐기 때문이다. 올림픽 출전을 앞둔 존스는 “교회 지하실에 짐을 풀던 첫 날 ‘엄마! 우리 여기 캠핑 온 거지?’라고 물어 엄마를 울려버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시련을 딛고 국가대표가 된 존스의 주 종목은 100m 허들. 결승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로 7위에 머물긴 했지만 그의 도전은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동안 가장 빛나는 전설로 기록됐다. 겹친 불운을 뚫고 메달까지 거머쥔 올림픽 영웅들은 대한민국에도 있다. 올림픽 폐막 뒤 숨겨진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남자 역도 77kg에 출전해 무려 16년 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선사한 사재혁(23·강원도청)은 4번의 대수술을 이겨낸 작은 거인이다. 하루에 그가 든 바벨 무게만 자그마치 5만kg. 중학교 1학년 때 역도를 시작한 이후 작은 산 하나를 들어 옮긴 것과 맞먹는 무게다.


4번의 수술, 헤라클레스 사재혁

역도를 시작한지 꼭 1년 만인 1998년 소년체전에서 180kg을 들어올리며 1위를 차지한 사재혁. 그는 무릎수술을 받는 와중에도 바벨 무게를 늘리며 역도선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체육 명문인 한국체대에 입학할 때만해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러나 시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03년 훈련 중 당한 심각한 어깨 부상으로 두 번이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것. 1년이 넘는 재활 기간이 마음에 걸려 운동을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어렵사리 2005년 부산 세계주니어역도선수권 남자 69kg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쏜 사재혁. 그러나 또 한 번의 부상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무릎과 어깨에 이어 이번엔 손목이 말썽이었다. 고스란히 1년을 치료에만 매달리다보니 대회 참가는 꿈도 못 꾸는 상황에도 그는 버텼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가 올린 성적은 용상 3위, 종합순위 5위를 기록한 사재혁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부상 공백을 채워갔다.

최성용 대한역도연맹 부회장은 “유연성과 순발력을 타고나 역도를 하기에 제격인 선수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지난해 이미 세계정상급에 섰을 실력”이라고 평했다.

“내가 기구요, 기구가 나이로다. 기구와 내가 하나가 될 때 210kg 이상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믿느냐? 나도 널 믿는다!”

스물셋 청년의 포부는 그가 개인홈페이지에 남긴 한마디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4번의 대수술을 딛고 일어선 그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헤라클레스’다.


최민호 ‘좌절이 만든 기적’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 정말 힘들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하루하루 눈물로 보냈다. 그 눈물이 나에겐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후회 없이 운동했다. 세상이 놀랄 일이 일어날 것이다.”

베이징으로 떠나긴 전 최민호(28·한국마사회)가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적은 다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지난달 9일 올림픽 첫 금메달을 조국에 안긴 그는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쏟아 보는 이를 숙연하게 했다. 그 눈물은 좌절이 만든 기적의 신호탄이었다.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석권한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실력자였다. 그러나 과다한 체중감량 후유증으로 동메달에 그친 최민호는 오랫동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금메달을 거머쥔 후배 이원희가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은 것과 달리 유도 대표팀의 ‘들러리’로 전락했던 것.

운동할 곳도 마땅찮아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선발전은 물론 단체전까지 5년 동안 내리 3등만 고수하며 ‘만년 동메달’이라는 오명에 폭식증까지 앓았다.

“하루에 아이스크림을 50개 넘게 먹고 배가 터질 만큼 부르지 않으면 잠도 못 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선부터 매 경기를 한판으로 매친 최민호는 이런 트라우마를 모두 이겨낸 듯 보였다. 그를 일어서게 한 또 다른 원동력은 가난이라는 시련과 가족의 사랑이다. 12년 전 아이스크림 대리점을 하던 아버지의 부도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사람 좋은 최민호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서준 탓이었다. 사글세를 전전하는 어려운 형편에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금메달 포상금이 나오자마자 곧장 부모님을 편히 모실 집부터 마련한 것은 최민호의 마음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내기 위한 작은 몸짓이었다.


외로움과 싸운 당예서

지난달 17일 천적 일본을 꺾고 감격적인 동메달의 주인공이 된 여자탁구 단체전. 그 가운데 가장 빛난 것은 당예서(27·대한항공)라는 이름이다. 그는 올림픽 무대에 서기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국적까지 바꾼 귀화 한국인이다. 8년 전 탁구라켓 하나만 쥐고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자신을 ‘배신자’라고 깎아내리는 중국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태극기를 휘날렸다.

‘한국의 에이스’ 당예서는 이날 경기에서 2단식 주자로 나섰다. 호쿠하라 아이와 정면승부를 벌인 끝에 3:1 완승을 거둔 그는 특유의 뒷심으로 에이스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의 동메달 획득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당예서는 경기를 마친 뒤 “8년 동안 너무 고생하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얻은 매달이라 너무 기쁘다. 이제 뜻을 이뤘다”는 소감을 밝혔다. 발음이 어눌하긴 해도 또박또박한 우리말이었다.
무작정 중국을 떠나온 당예서에게 낯선 한국은 고난의 땅이었다. 국적취득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는 묵묵히 귀화시험을 준비하며 대한항공 팀의 훈련파트너로 7년을 버텼다. 국제대회는 물론 변변한 국내대회조차 출전할 수 없었지만 그는 올림픽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당예서는 마침내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8 세계선수권을 위한 대표선발전을 10전 전승으로 승승장구하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당예서에게 중국인 남편과의 ‘별거(?)’는 꿈을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

중국 언론은 국적을 바꾸고 올림픽에 출전한 당예서를 ‘배신자’로 깎아내리기 바빴다. 심지어 ‘탕나(당예서의 중국식 이름)사건’이란 제목의 인터넷 게시판까지 열어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릴 정도였다. 그러나 “과연 경기장에서 동포들의 야유를 견딜 수 있을까”란 중국의 기우는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당예서는 이미 한국 탁구의 희망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대표선수’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댓글 올림픽’

올림픽은 끝났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여전히 ‘댓글 올림픽’이 한창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각 종목과 선수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 듯한 촌철살인의 4구체 찬가들이다. 댓글올림픽에 불을 지른 것은 새로운 국민 남동생으로 떠오른 이용대(20·삼성전기)를 찬양한 ‘용대찬가(讚歌)’다. ‘용대찬가’는 삼성직원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대찬가’가 등장하자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국민 남동생’ 박태환(19·단국대)이 이용대의 인기를 질투해 수영을 포기하고 배드민턴을 하겠다는 내용의 ‘태환비가(悲歌)’까지 등장했다.

‘용대찬가’에 이은 ‘태환비가’는 박태환이 ‘누나’들의 급격한 변심을 지켜보며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용대찬가

내가 알던 배드민턴 동네아짐 살빼기용/
몹쓸편견 싹버림세 용대보고 개안했네.
스무살에 꽃띠청년 백팔십에 이승기삘 /
겉모습만 훈훈한가 실력까지 천하지존.
스매싱한 셔틀콕이 누나가슴 파고들고 /
점프마다 복근노출 쌍코피에 빈혈난다.
용대보고 떨린가슴 코치보니 또흐뭇해 /
배드민턴 선수들은 인물보고 뽑았나벼.
효정선수 부럽구나 금도따고 용대안고 /
솔직하게 메달보다 그포옹이 더탐나오.
삼십칠분 열띤경기 금메달의 한을풀고 /
드러누운 그대곁에 나도맘은 같이있네.
샤방샤방 미소뒤에 윙크까지 날려주니 /
터질세라 이내가슴 심장약좀 먹여주오.
시상식때 중국선수 용대에게 눈을못떼 /
나도안다 니마음을 나였어도 그랬겠지.
계열사를 순회하며 사인회좀 열어주렴 /
훈남용대 온다하면 버선발로 뛰어가리.


▶태환비가

마린보이 수영골드 국민동생 난리더니 /
몇일만에 내이름은 어디서도 볼수없네.
흔들리는 여자마음 갈대인줄 알았지만 /
용대형의 스매슁에 떡실신한 누나들맘.
그런복근 나도있소 빤스입고 보여줬소 /
슬쩍슬쩍 보이는게 더자극적 난몰랐네.
다음부턴 온몸덮고 일등한후 옷찢겠네 /
물들어가 눈따가워 윙크안해 삐진건가.
이런젠장 오라질것 광고주들 어딜가나 /
내광고껀 관리하는 우리아빠 만든회사
아들이고 나발이고 용대영입 추진하네 /
안그래도 혼자심심 복장터져 디지겠네.
용대형은 사인하고 태환이는 사망켔네 /
에라몰라 수영안해 내일부터 배드민턴.
펠프스고 나발이고 복근운동 배드민턴 /
다주거쓰 지둘려라 물속에서 배드민턴.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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