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북한은 남한측에 그들을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정부는 그들의 남한 표류사실을 공개하지도 않은채 서둘러 다음 날 몰래 북한으로 돌려 보내주었다. 관계기관은 그들이 처음부터 북한으로 돌아갈 것을 완강히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송된 22명은 전원 총살되었다는 말이 나도는가 하면, 동토를 탈출한 탈북민이었다는 추측도 있다. 남자 8명, 여자 14명(15∼17세 학생 3명)이며 부부·부자·형제·자매·숙질 사이의 가족으로 구성되었다. 관계기관은 그들이 설날 조개잡이를 위해 나섰다가 목선이 기관고장을 일으켜 고무보트를 타고 귀향하려던 중 조류에 밀려 남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22명이 탈북자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북한에선 탈북을 막기 위해 가족단위 승선을 엄격히 금지하며 아이들의 동승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3일 연휴기간인 설 다음날 새벽부터 조개잡이에 나섰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22명을 즉각 북송해 놓고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도 의문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22명의 북송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김정일에게 종북(從北) 성의를 보이려는 친북좌파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짓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북송 22명은 21년전 북한의 김만철씨 1일 가족 11명이 해상으로 탈출해 일본을 거쳐, 서울에 안착한 경우를 떠올려 더욱 안타깝게 한다.
김만철씨는 1987년 1월 15일 새벽 1시 장모·부인·5남매·처제·처남 등을 배에 태우고 청진항을 빠져나와 일본으로 표류했다. 거기서 그들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인도요청으로 2월 8일 서울에 도착했다.
김씨는 탈북 동기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로 구성된 고무보트의 22명도 김만철씨 가족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도망쳤던 게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물론 정부의 주장대로 표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정부 발표를 믿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그동안 친북좌파 정권이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민들의 한국행 요구와 도움을 냉혹히 거부했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주민들이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정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면 김정일이 화낼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의 절박한 호소를 묵살하거나 아예 쫓아내기도 했다.
2005년 9월 탈북 9명의 처절한 운명이 그것을 입증했다. 탈북 9명은 중국의 텐진 주재 한국국제학교에 입학상담을 하러 온 것처럼 꾸며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탈북자이니 한국행을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한국학교측은 그들을 내쫓았다.
탈북 9명은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통해 ‘자유와 삶을 찾아 한국으로 가려 합니다. 한국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구원의 손길을 바랍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친북좌파 정권의 김정일 비위맞추기에 희생돼 사지로 내몰려야 했다.
서해 바다로 내려온 22명도 그렇게 친북좌파정권에 의해 희생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명박 정부는 무엇보다도 사지에서 헤매는 탈북민들을 구해내는 일을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함을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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