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벤처붐을 다시 한번 일으키겠다고 나섰다. 중소기업투자 모태조합을 만들어 2008년까지 1조원을 지원하겠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이 3년간 10조원의 보증을 서도록 하겠다. 실패한 벤처인도 신용보증을 하겠다. 기술력과 성장성이 있으면 코스닥시장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겠다. 한마디로 “…지원하겠다.” 따위의 세제-금융방안을 수두룩하게 내놓았다. 김대중 정권이 추진했던 벤처육성책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도 생생하다. 희망의 새 천년이 열린다더니 일진광풍이 일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부자 탄생을 알리는 소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벤처기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고 코스닥은 화폐제조기라고 언론은 들떠 있었다. 테헤란로는 벤처기업들이 몰려 빌딩 임대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하룻밤 술값에 천만원을 날린다. 술집여급이 귀동냥해서 벤처주식을 샀더니 팔자를 고쳤다. 이런 따위의 꿈 같은 소리가 끝도 밑도 없이 나돌았다. 김대중 정권도 흥분해서 법석을 떨었다. 벤처기업은 21세기 한국경제의 산실이다. 새 천년의 운명은 벤처기업에 달렸다. 벤처기업 몇만개를 만들어 육성하겠다. 한국경제도 신경제에 편입됐다느니 하면서 정책자금을 마구 퍼부었다. 그러자 너도나도 벤처기업인이라고 자처하고 나섰다. 기술도 자본도 신용도 없이 뜻도 모를 영문간판을 달고 말이다. 김 정권은 벤처사업이 연출하는 환상에 젖어 온갖 수사를 쓰며 연일 ‘벤처만세’를 연창했다. 그러더니 ‘게이트’라는 권력형 비리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졌다. 진승현-정현준-이용호-윤태식 게이트가 말이다. 아무리 벤처기업이라지만 은행창구에서 믿고 돈을 내줄 건더기가 없었다. 그러자 세도가를 찾아 대출을 청탁하고 언론한테는 홍보성 기사를 부탁했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모여 어깨동무하고 공돈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금광촌의 혼돈과 광기를 닮은 그들만의 축제는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주고 막을 내리고 말았다. 먼저 벤처기업이란 개념부터 정리해야 한다. 원래 벤처기업이란 말이 없다. 기술개발의 산실은 대학이나 연구소이다. 기술개발이 완료되어도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투자이득이 큰 만큼 투자위험도 크다. 그 때문에 모험자본(venture capital)이 투입된다. 여기서부터 기업활동(start-up)이 개시된다. 그런데 기술확보도 없이 벤처기업이라는 간판을 달면 자금지원을 해줬으니 서로 공돈 먹기에 바빴던 것이다. 고급두뇌도 없이 그 돈을 가지고 기술개발을 하는 척 떠들다 손을 터는 것이다.지금 정보기술이 세계를 하나로 엮으면서 인류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거대한 혁명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생명의 신비를 풀어서 무병과 풍요를 약속하는 생명기술은 인류에게 희망의 내일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세기의 변화가 아니고 천년의 변화이다. 아마 인류역사가 13세기 칭기즈칸의 대정벌을 겪은 이후 최대의 변화일 것 같다. 무한한 가치와 미래가 손짓하는 그곳은 기회가 열린 땅이다. 그곳이 미개척지이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승차자격이 있다. 그것은 기술개발이다.인류미래의 영역인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생명기술(BT) 분야에서 기술개발은 그 성공확률이 백만분의 단위라고 한다. 그러니 돈만 퍼붓는다고 하루아침에 기술개발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흔히 기술은 국가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공계 기피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너나없이 연구소를 싫다고 대학강단이나 해외로 눈을 돌린다. 대학재학생들도 의대나 약대로 편입학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니면 사법고시·행정고시에 매달리고 있다. 먼저 인재양성에 나서야 한다.대학과 연구소가 기술개발에 전념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수한 인재가 미래를 맡기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다음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상업화를 위해 아낌없이 밀어줘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순서가 뒤바뀌었다. 지난 정권이 저지른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벤처를 공돈 먹는 노다지로 아니까 사기꾼과 돈놀이꾼이 날뛰었고 정치건달까지 끼여들어 난장판을 만들었던 것이다. 기술개발은 야바위꾼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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