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사절단의 청와대 초청은 외교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중의 하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 27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리셉션에서 63일간 이어진 탄핵국면을 빗대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구경거리도 있었다며 “부활은 예수님만 하시는 건데 한국 대통령도 죽었다 살아나는 부활의 모습을 보여줬다” 고 말했다는 것이다. 탄핵국면을 구경거리로 비하시키는 그 인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승리를 예수 부할 과 비유하고 있는데는 당혹스러움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예수부활은 삶과 죽음이라는 생의 한계를 무너뜨린 사건이다. 부활은 예수의 죽음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한다면 우선 십자가의 예수에게로 다가서야 한다. 우리의 고난이 그의 고난이 되고 우리의 절망이 그의 절망이 되며, 우리의 죽음이 그의 죽음이 되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진리를 안다면 감히 예수 부활을 빗대어 자신을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외교관들이 본국에 무어라고 보고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계를 움직인 지도자 중에서도 자신을 예수와 비교하여 말한 사람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없다. 그것도 가장 격식과 의전에 예민한 외교관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말이다. 대부분 기독교 문화권의 국가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기에 그의 말과 인격과 지도력과 대한민국이 함께 추락하고 있음을 느낀다.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또 느닷없이 말하기를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고 해서 ‘미국에 굴종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이라크나 아랍세계에 적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주권국가의 대통령은 통상 외교에서 ‘굴종’이니 ‘적대’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다. 국위를 선양해야 할 사람이 국위를 추락시키고 있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만이 아니다. 대만 천수이변 총통 취임식에 여당의원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써 중국과 외교적 마찰이 생긴 것이다. 1992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대만과 국교를 단절한 것이다. 야당의원도 아닌 여당의원들이 외교적 분쟁이 있는 나라의 국가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일이다. 중국외교관들로부터 항의와 협박을 받은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모든 주변국가와 선린우호관계를 지켜야 할 우리 정부에 대해서 중국정부는 신뢰성에 의심을 둘 것이다. 지금 대만과 중국 간에는 군비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대만은 중국본토의 미사일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미국으로부터 패트리어트 미사일 338기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 잠수함 등 최첨단무기 22조원어치를 구입하기로 예산까지 통과시킨 상태다. 세계 무기구매사상 최대 규모다. 중국도 러시아제 수호이 전투기 구매등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며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 한 복판에 한국의 정치인들이 끼여드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일이며 나라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일이다. 시민단체가 여야의원 22명과 함께 이라크 ‘파병추진 중단 및 원점재검토 권고 결의안’ 을 제출키로 했다고 한다.어느 나라에서도 국가의 외교안보 문제에 시민단체나 초선의원들이 겁없이 끼여드는 일이 없다. 이것은 철저히 정부의 몫이다. 수십 년간 훈련된 전문가 집단이 다루어도 약소국의 한계라는 제약 때문에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기 때문이다. 권진호 청와대 안보보좌관도 ‘주한미군의 아시아 기동군화’문제를 가지고 북경과 워싱턴을 오가며 세련미 없는 말로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구상에 당당하게 ‘동의 못해’라고 말하기 전에 미국의 수사학적 언어 선택과 함축된 의미, 그리고 미중관계와 한반도의 국제정치를 더욱 철저히 공부했어야 한다. 안보외교는 말이 아니고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나라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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