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국가 이익뿐이다.” 영국사람 파머스톤이 갈파한 이 명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영원한 진실로 살아남을 것이다. 이보다 더 명쾌하게 국제관계의 본질을 설파한 명언은 없을 것이다. 강대국가, 약소국가, 강소 국가를 가릴 것 없이 국내적으로는 번영과 발전을 도모하고, 국제적으로는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두 하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가들의 엄연한 생존 전략과 논리를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에 더 감동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외교 안보의 가장 큰 결함과 문제점은 국제관계에 대한 국민의 기본적 인식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제문제는 항상 국내정치 논리에 밀리고, 외교문제는 국내문제 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밀려왔다. 17대 국회 초선의원들의 경우 국제화 경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나타날 수 있다. 국민들의 극도로 감성적인 상황인식 논리도 외교안보에 대한 기본 틀을 흔들어 놓지 않을까 우려되는 바도 있다. 그 현실적인 예로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북핵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외교는, 북한에 더 동조하고 미국으로부터 독자적인 길을 갈 용의가 있는 의원들이 지배하는 한국 국회로 인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미국정부는 한국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들 사이에 ‘반미친북’ 경향이 강하다는 점 때문에 북핵문제와 관련해 한·미 간의 거리가 멀어질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방한 목적중의 하나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 언론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138명의 초선의원들에게는 대외정책과 관련해서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미국보다 중국을 중시하는 성향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초선의원들이 국정운영에 적응하고 대외관계에 눈을 뜨려면 한 1년간은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겪게 된다. 그래서 대외관계의 난맥상이 심각하게 우려된다.체니 부통령이 중국을 다녀온 후 북한의 김정일이 중국 베이징을 전격 방문하고 있다. 무엇인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긴박하게 논의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미국은 북핵문제에 관한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무엇인가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했을 것이다. 최근 모스크바에서는 ‘북한 김정일 시대의 몰락’이라는 책이 출간돼 출판계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의 한반도 전문가인 저자들이 ‘최초의 북한체제에 대한 본격 연구서’라고 밝힌 이 책은 김일성의 정권 출범과 김정일의 권력승계과정에 얽힌 비화를 담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김정일 정권은 하루 빨리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라는 것이다. 가장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는 김정일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북한 핵은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는 시한폭탄이다.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무엇인가 매듭을 짓고자 하는 체니의 심중을 정확히 헤아려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을 안고 갈 미국이 아니라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 시간이 한반도 주변에 도사려 움직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이라크 추가파병문제가 또다시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것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국가 간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정글의 검은 민족사회에서도 약속은 지키는 것이다. 외교 안보와 관련된 현안들을 국내 정치 논리와 인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후진국가 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파키스탄의 칸박사가 확인한 것처럼 5년 전 북한은 이미 3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는 심각하지가 않은 것이다. 한·미 관계의 호흡조절과 적응이 어느 때보다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시기에 와 있음을 절감케 한다. 봄은 왔으나 봄다운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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