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서울을 떠날 때
미국이 서울을 떠날 때
  •  
  • 입력 2004-02-12 09:00
  • 승인 2004.02.12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교·안보 문제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좌파, 우파의 대립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강대하고 안정되고 번영된 문명국가들에게 있어서 외교·안보문제에는 언제나 일치된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에서 성숙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유럽을 보라. 군사적 안정과 평화, 경제적 발전과 번영을 누리기 위해 유럽의 지도자들과 유럽 국가들은 밤낮없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전후 유럽경제의 회생과 민주주의 틀을 만들어낸 유럽경제공동체가 오늘날에는 유럽 25개국가를 하나로 묶는 『유럽연합국가』로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주권국가의 주권과 독립권의 일부를 양보해가면서라도 안정되고 번영된 유럽 국가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밤낮 없는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성장과 발전을 해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보라. 소련이 붕괴된 오늘날에도 미국이 중심이 된 군사동맹인 NATO가 현실적으로 엄존하고 있고 심지어는 과거의 불구대천의 적대 국가였던 러시아까지 회원국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냉철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군사적으로 볼때 동맹, 비동맹, 중립의 3가지 형식 밖에는 없다. 냉전시대 동서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영세중립을 생존전략으로 선택했던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의 경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오늘날에는 유럽연합으로 흡수되지 않고서는 번영과 안정적 평화를 누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강소 국가들의 생존전략은 실로 놀라운 적응력과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운영과 외교안보에 대한 성숙한 국민적 합의가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이다.군사동맹이란 정치·군사적 선택이며 그 도구일 뿐이다. 동맹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이 아니라 해도 주변국가와의 우호적 협력과 교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한·미동맹은 50년 동안 한반도의 전쟁재발을 억제해온 평화와 번영의 기본 틀이었다.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계획은 이 기본 틀을 완전히 바꾸는 변혁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세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은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대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대국에 대한 한·미간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온 것이다. 한국은 북한을 햇볕정책으로 포용하고 대화를 통해서 북핵문제를 풀어갈 평화적 공존의 대상이지 적대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동의 적이 없는 상황에서 군사동맹은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돈 오버도퍼 교수의 말처럼 한·미동맹도 끝장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한반도의 안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미군이 없는 서울을 북한은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 북방의 미2사단과 더불어 용산의 사령부마저 한강 이남으로 이전한다면 한국에서의 미국의 군사전략은 더 이상 억지전략이 아니게 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군사전략의 일대 변혁을 의미하게 된다. 원래 한·미동맹은 문서상으로 보장된 자동개입의 조약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동맹의 하나가 되었던 것은 한국의 최전방과 서울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한미군은 인계철선이었으며, 북한의 공격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이었다.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전략이 억지전략에서 선제공격전략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정권도 더 이상 억지의 대상이 아니고 제거의 대상, 교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 전쟁억지전략하에서는 북한이 전쟁과 평화의 선택권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제부터 미국은 한반도에서 오히려 전략적 유연성을 갖게 되고, 전략적 주도권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과거보다도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나 지도자 교체(Leadership Change)에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유연성을 갖게 된 것이다. 무섭고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서울의 미군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입장에서 하나의 안전장치이고 보증수표였다. 이 장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친북 좌파적 민족주의가 불러오는 외교·안보·경제적 대가가 결과적으로는 안보와 경제번영, 그리고 평화를 심각하게 흔드는 무서운 대가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난을 자초하는 정치적 표류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오직 국민에게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