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북유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지만 인간의 생명과 기본적 권리를 지키고 보호하여 주는데는 세계 최대 강국이다. 국민 전체인구의 10분의 1 이 되는 약 100만 명이 생활의 피난처요, 정치적 망명처로 이 나라를 선택하였고 그럴 때마다 스웨덴은 관대히 그들을 받아 들여왔다. 지금 중국이 북한 탈북자들에게 취하고 있는 태도는 위대한 중국 건설을 꿈꾸며 더 나아가서 세계적 패권을 꿈꾸고 있는 책임 있는 아시아의 지도국가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중국정부가 어떠한 변명을 한다 해도 이번 7명의 탈북자를 북송시킨 것은 중대한 국가적 실수이며, 중국은 이 문제를 책임지고 마무리지어야 할 국제법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짊어지게 되며, 한중 외교사에 인도주의와 인본주의 정신이 심각하게 타격받은 가장 불행한 사건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을 중국은 각오해야 한다.이들은 한국으로 오기 위해 두만강을 건넌 후 그 넓은 중국 대륙을 종단해 지난 2월 중국 국경을 넘어오려다 남부 난닝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고, 안산 수용소에 이감되자 단식투쟁과 북송반대 집단행동을 했다. 그 뒤 길림성 도문 탈북자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강제 북송되어, 지금은 함경북도 온성군 국가보위부 구류장에 수감되었다가 중형을 받고 정치범 수용소로 갈 것이 뻔하다. 중국 측이 이들이 한국행을 요구하면서 단식했던 사실들을 북한에 상세하게 알려주었을 것으로 본다면 그들의 목숨은 이제 구할 길이 없게 되었다.그리고 이들 7명의 북송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자국민 보호외교에 원칙도 철학도 능력도 없으며, 눈물도 흘릴 줄 모르는 냉혈적 복지부동의 인간들이 모여있는 부끄러운 곳임을 세계에 선포한 셈이다. 7명의 끈질긴 생명력이 다시 죽음의 땅으로 내던져진 이번 사건은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자유를 찾아 수만리 길을 쫓기며 도망치고,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를 친구삼아 숨죽여 살아온 하나의 희망인 자유와 생명이 죽음으로 끝맺는 6개월여의 한과 아픔이 우리 모두의 한과 아픔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삶의 주변에 왜 그렇게 감시와 제약이 많은가. 4,000여명의 탈북자들 중에는 지식인 과학자들도 많다. 그런데 그들은 보호라는 미명으로 가장 기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 여행의 자유를 유린당하고 있다. 사생활의 자유도 없다. 평양보다 서울이 더 감시가 많고 인권침해가 많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아이러니다. 미국 의회 북한행사에 참여하려던 어떤 탈북자는 두번씩이나 출국이 비행장에서 제지되었다. 북한에 독극물 생체실험이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인데 정부는 도와주기는 커녕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그뿐만이 아니다. 북한에 긴급구호 의사로 18개월 봉사하다 약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굶주리다 죽어가는 북한 어린이와 동포들을 돕기 위해 세계를 무대로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 박사는 지난 7개월 동안 세번이나 한국 땅에서 집단폭행과 심각한 구타를 당하고 뼈가 부러지는, 문명현대국가 어느 나라에서도 겪지 못할 수모를 격고 있다. 모두가 김정일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김정일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는 자유 대한민국 땅에서 수모를 겪고 집단 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의사인 그가 죽어간 북한 어리아이들과 북한의 선한 백성들을 사랑한 죄밖에는 없을 것이다. 가족과 따뜻한 가정과 고향을 떠나 북한 어린이들만을 사랑하는 죄 하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