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가 길을 잃으면 그는 이미 목자가 아니다. 목자가 양떼를 잃으면 그는 이미 목자가 아니다. 목자는 양떼를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 길 잃은 목자가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사모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일이 목자의 길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지난 6월 4일 주한외교사절단 청와대초청 리셉션에서 “부활은 예수님만 하시는 건데 한국 대통령도 죽었다 살아나는 부활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자신의 탄핵 과정을 예수의 부활에 비유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6월 9일 청와대 오찬행사에서 함세웅 신부는 “대통령을 우리의 예수로 모셔야겠다”고 했다. 그의 말은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건배사를 통해서 “노 대통령이 지난번 외교사절단 모임에서 부활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주님으로, 우리의 예수님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대통령에 대한 찬사와 수사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가히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그는 말을 이어가기를 “대통령이 왕정시대에는 최고의 사제였다”면서 “대통령께서는 일하실 때 남북한 7,000만을 위한 대사제로서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는 되돌아보기 바란다” 고 말했다.노무현 대통령을 예수님으로 모시고자하는 사람들이 ‘노무현교회’라는 신흥종파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아직은 듣지 못했지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희극중의 희극이다. 셰익스피어나 버나드쇼가 무릎을 칠 희극중의 희극이다. 그의 좌충우돌씩 행보는 점입가경이다.국가의 원로로 나라문제를 걱정하고 반미친북문제에 대한 말을 한 김수환 추기경을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이라는 거침없는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금년 3월 21일 광주의 한 성당에서 탄핵문제로 국론이 분열되면 안 된다.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 보자고 말한 김 추기경을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의 독설은 이어진다. 김 추기경을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공격했다. 거의 이성을 잃은 공격이고 비난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큰사랑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서슴없는 애정고백을 하고 있다. 그의 사상과 이념에 사랑과 기대를 갖고 있다는 고백일 것이다.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김 추기경은 ‘시대착오적’이고 노대통령은 ‘사랑과 기대의 대상’이라니, 그는 혼자만의 ‘착란과 착각’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국가보안법문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인간을 체제의 노예로 만들고” 그 발상 또한 “시대착오적”이고, “신학적, 성서적으로도 악법”이라며 국보법폐지를 반대하는 김 추기경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성서적, 신학적 깊이와 높이가 김 추기경에게 감히 근접할법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김 추기경은 명동성당 ‘하상신앙대학’특강에서도 “북한의 적화통일 사상 체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국보법 철폐를 명쾌하게 반대하며, 정부여당은 이 현실을 인정하고 민의를 수렴해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의 ‘사랑과 기대의 대상’인 노대통령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이번에는 개신교단 기도집회를 공격하고 나섰다.10월 9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개신교회의 서울광장 집회는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미숙한 것이고 무지에서 나온 행위”라고 비판했다. “성서에 대한 문자적 맹종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구체적인 사례”라면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이 법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건강하고 성숙한 국민으로 살 수 있다”고 잘라 말한 뒤 “국가보안법은 인간을 법체계에 예속시키는 현대판 우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한 번도 북한의 민주화, 북한 동포들의 인권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다. 그는 분명히 ‘길 잃은 목자”다. 양떼 잃은 목자다. 양떼 잃은 목자는 초원을 떠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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