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폭탄주 그 ‘오욕’의 역사
정치인과 폭탄주 그 ‘오욕’의 역사
  • 홍준철 
  • 입력 2006-03-08 09:00
  • 승인 2006.03.08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최연희 전사무총장이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결국 의원직을 사퇴할 전망이다. 검사 출신에 3선 의원 그리고 당 3역중의 한 인사가 폭탄주를 이기지 못하고 술집 여종업원과 여기자를 구별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술과 몰매에는 장사 없다는 옛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에게 제조된 폭탄주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노무현 대통령도 정치 초년병 시절에는 젊은 386과 더불어 폭탄주를 마시고 흥에 겨워 상에 올라가 ‘님을 향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것은 정가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일반적으로 정치인은 소주와 맥주, 맥주와 양주, 심지어 소주와 맥주를 섞어가며 서둘러 취하는 술버릇이 있다. 때문에 폭탄주로 인한 폭언, 폭행, 심지어 난투극까지 벌어진 사례도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폭탄주로 인해 부침을 겪었던 정치인들의 행적을 되돌아봤다.

‘난투극’부른 국방위회식사건

전두환 정권 시절 ‘폭탄주의 대중화 시대’를 연 사건은 20년전에 벌어졌던 이른바 ‘국방위 회식 사건’이다.사건은 1986년 3월21일 임시국회를 마친 국회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 10여명과 육군 수뇌부 8명이 중구 회현동의 요정 ‘회림’에 모여 질펀하게 양주 파티를 벌이면서부터다.육군쪽 참석자는 5공초기 현역으로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냈던 정동호 참모차장, 정통TK로서 하나회의 핵심멤버였던 이대희 인사참모부장, 12·12사태때 전방 노태우 장권의 9사단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왔던 구창회 총장비서실장 등 전두환의 최측근 부하들이었다.

국방위에서는 공군 소장 출신의 천영성 위원장을 비롯해 김동영 신민당 원내총무, 이세기 민정당 원내총무, 김용채 국민당 원내총무, 남재희 의원 등 국방위 의원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저녁 7시30분이 조금 넘어 김동영 신민당 총무가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들어오며 “허 힘 있는 거물은 안 오고 똥별들만 먼저 모였구먼…”이라고 일갈했다.순간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변했다. 양주 10여잔을 마신 김 총무는 “여당 총무는 안오기로 했나. 이세기를 불러와!”라고 소리쳤고 이후 한 시간쯤 뒤에 이 총무가 나타났다. 그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총무를 향해 정동호 중장이 “이새끼(이세기) 총무 뭐 이렇게 늦게 오고 그래, 그러니까 야당쪽에서 우릴 보고 똥별이라고 하지 않냐”고 말했다. 이어 정 중장 등 장성들이 폭탄주를 이 총무에게 권했다. 이 총무가 폭탄주 한 잔을 비우자 정 중장은 그를 억지로 끌고 김동영 총무 옆으로 다가갔다. “자 여당 총무 왔는데 정치 좀 잘해야지. 둘이서 손잡고 잘할 수 있잖아. 정치를 잘해야 바깥에서도 안 떠들거 아닌가”라고 훈계하듯 말했다.

이 광경을 보다 못한 남재희 의원이 벽에 유리컵 두개를 연거푸 날렸고 이 유리컵 파편에 이대희 소장의 왼쪽 눈두덩이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피를 본 이 소장은 냅다 남 의원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이 소장의 발길질에 맞은 남 의원은 혼절했다. 술좌석은 순식간에 난투장으로 돌변했고 정치인 대 군인들의 한판싸움이 벌어졌다. 이후 국방위에서 이기백 국방장관과 박희도 참모총장이 사과하고 정동호 차장은 예편, 이대희 소장은 좌천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국방위 회식 사건’이 남긴 사회적 파장은 컸다. 무엇보다 값비싼 양주를 맥주에 섞어 마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폭탄주가 일반에게 알려졌다. 이때부터 일반 대중들도 군, 검찰, 정치인들만의 은밀한 행사였던 폭탄주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조폐공사 ‘폭탄주’ 발언파문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은 1999년 6월 진형구 전대검공안부장이 오찬에서 폭탄주를 마신 뒤 기자들에게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검찰)가 유도했다”고 한 발언이 발단이 됐다.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반발에 쐐기를 박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 검찰이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이라는 진 전부장의 취중 발언은 당시 정부의 도덕성 시비와 함께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 발언은 대전 법조비리와 옷로비 사건, 항명 파동 등으로 흔들리던 검찰 조직에 결정타가 돼 결국 김태정 당시 법무부장관이 임명 8일 만에 경질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또한 1999년 9월 ‘한국조폐공사 노동조합 파업 유도 및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등의 임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최초로 특검제가 도입되기도 했다.당시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국회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의 ‘왜 폭탄주를 마시는가’라는 질문에 ‘양주가 너무 독해서’라는 답변을 해 좌중을 실소케 만들기도 했다.

이 파업유도 사건을 조사한 강원일 특별검사는 최종 수사결과에서 강희복 전조폐공사 사장이 조폐창 통폐합으로 경영권을 강화하고 구조조정을 앞당겨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기 위해 파업을 유도한 ‘1인극’이었다고 발표했다.특검팀은 분규 당시 검찰 노동부 등 정부기관의 조직적인 개입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려 민노총 등 노동계와 시민들은 ‘특검팀의 축소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진 전부장의 폭탄주 먹고 한 이 발언은 법무부장관이 경질되는 등 폭탄급 발언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추미애 전의원 “이XX…”

최근 들어 여당과 야당이 폭탄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것을 보면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여권은 특정언론사를 겨냥해 폭언을 해대는 반면 야당은 폭행, 폭언으로 유형이 크게 분류되고 있다.언론에 대한 불만을 폭탄주에 기대 쏟아낸 첫 번째 인사는 바로 민주당 추미애 전의원이다.때는 2001년 1월5일 장소는 광화문 한정식집. 김중권 당시 대표와 식사를 마친 바른정치모임 소속 추의원 등 의원 3명은 ‘술 한잔 하자’며 기자들과 어울렸다.폭탄주가 몇 순배 돌자 취기가 오른 추 의원은 이문열과의 ‘지식인 곡학아세 논쟁’이 화제가 되자 ‘이문열 같은 가당찮은 놈이 ×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라고 험한 말을 했다.

급기야는 동아일보 기자와 말다툼이 벌어졌고, ‘이놈’, ‘이××’, ‘한심한 기자’ 등 막말을 했다. 그동안 얌전하다는 추 전의원의 건 입담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2004년 10월 18일 주인공은 이해찬 국무총리, 장소는 독일의 베를린이다. 이 총리 역시 기자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해 파문이 일었다.이 총리는 동행기자들과 가진 술좌석에서 “조선·동아일보는 정권을 농락하지 마라”,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나 거기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 “조선·동아는 까불지 마라”,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은 용서해도 조선·동아의 역사의 반역죄는 용서 못한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추미애, 이해찬의 뒤를 이은 인사는 천정배 법무부장관. 2006년 1월12일 천 장관도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헌법학의 기본도 모르는 ××들이 헌법 전문가임을 자임하면서 이 신문 저 신문 돌아다니면서 대통령을 조롱하는 칼럼을 쓰고 있다”고 비난해 곤욕을 치렀다.

건어물, 맥주병 투척하기도

여당 의원과는 달리 야당 의원들의 술좌석 파문은 폭행과 폭언으로 이어져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2004년 9월 12일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경북 구미을)은 경기도 아시아나컨트리 클럽에서 골프를 친 뒤 클럽하우스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 도중 언제 끝날지 알아보기 위해 들여다보던 60대의 경비원과 눈이 마주친 김 의원은 그에게 욕설을 했다. 술자리가 파한 이후 강모 경비원은 재차 방을 찾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김 의원과 마주쳤다. 김 의원은 이에 욕설과 함께 비닐 포장된 건어물로 강씨의 얼굴을 때렸다. 이후에도 분을 이기지 못한 김 의원은 방을 정리하던 강모씨의 얼굴과 배를 걷어찼다.

김 의원은 처음에는 ‘남자입장에서 폭행으로 볼수 없다’고 변명을 했다가 추후에 논란이 커지자 ‘손님이 방안에 있는데 경비원이 왔다갔다해 기분이 상해 순간적으로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같은 당 곽성문 의원은(대구중·남구) 2005년 6월 초 ‘골프장 맥주병 투척사건’으로 국회의원들의 폭탄주 문화에 자성의 목소리를 나오게 만들기도 했다.‘맥주병 투척사건’의 발단은 곽 의원이 지역 상공인들과 가진 골프 모임 뒤 가진 회식자리에서 폭탄주가 몇 순배 돈 뒤 발생했다. 당시 곽 의원은 “한나라당이 대구지역 국회의원 12석을 다 갖고 있는데 상공인들이 열린 우리당에만 후원금을 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경제인들은 “40년 동안 한나라당 도와줬는데 한나라당이 대구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반박했다.

이 와중에 곽 의원은 갑자기 맥주병 4~5개를 계속해서 반대편 벽쪽을 향해 던졌고 파편이 한 상공인의 팔뚝에 긁혀 피가 났다. 이 상공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곽 의원의 멱살을 잡았고 주변 의원들과 참석자들이 뜯어말리면서 술자리는 난장판이 됐다. 곽 의원은 이후 사죄의 글을 발표하고 당 홍보위원장직과 대구시당 수석부의장직을 사퇴했다.주성영 의원(대구 동갑)의 지난해 9월 ‘대구 술자리 폭언’도 폭탄주와 관계된 사건이었다. 주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과 대구고·지검 관계자들과 국정감사가 끝난 뒤 가진 술자리에서 술집 여주인에게 여성의 성기를 빗댄 ‘폭언’을 했다고 한 인터넷 매체에서 주장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하지만 검찰수사 결과 폭언을 한 사람은 주 의원이 아닌 대구지검 정선태 차장으로 밝혀져 ‘음모론’이 제기되는 등 주 의원과 인터넷 매체간의 진실공방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 여의도 야설 ‘믿거나 말거나’N의원 폭음후 여자와 ‘호텔로 직행’ 했다


여의도 정가를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도 많이 존재한다. 특히 입소문을 타면서 그 얘기는 더욱더 구체화되고 사실적으로 변한다는 데 신빙성이 더해 간다. 급기야는 해당 정치인이 해명까지 하게 되는 사례도 발생한다.지난해 8월 여당의 N의원이 찌라시(정보지)에 올라 구설수에 올랐다. 상황은 이렇다. 가끔 일이 있을 경우 여의도 근처 호텔에서 숙박을 하는 N의원은 술에 취해 그날도 호텔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는데 승용차(체어맨)가 모 스님의 차량이랑 바뀌어진 사실을 알게 됐다. 호텔 종업원이 차키를 바꿔서 건네 준 단순한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N의원이 술집에서 스님과 폭탄주를 마시고 만취했고 둘이 묘령의 여인을 데리고 호텔에 투숙했다고 부풀려져 소문이 번졌다. 둘이 같이 투숙해 스님과 차키가 바뀌게 된 배경이 덧붙여졌다. 여기에 호텔 내 비디오 카메라에 여인과 함께 있는 장면도 담겨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급기야 N 의원 실명이 거론되고 루머가 확산되자 N 의원이 직접 나서서 해명해야만 했다. N 의원은 자신은 가끔 호텔에서 잠을 자며 스님과는 술을 먹지도 않았고 다른 “지인들과 마시고 프런트에 차키를 맡긴 게 다”라는 것이었다. 이후 종업원의 실수로 차가 바뀌었다고 해명했다.묘령의 여인과 관련해서도 N 의원은 자신과는 무관하며 스님과 동행한 여인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교롭게도 스님과 N 의원의 체크아웃 시간이 엇비슷했다는 점이 비디오 카메라에 잡혀 불필요한 오해를 낳았던 셈이다.

“경찰간부가 확인했다” 일파만파

P시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과 관련된 2차설은 다소 지나간 얘기이지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여의도에서 궁금증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이 사건은 P시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이 시내의 유명한 한 고급 룸살롱에 출입이 잦아 일반인에게 알려지면서 시작됐다.사건의 발단은 모 의원이 지역구 유지들을 룸살롱에 데리고 가면서부터이다. 폭탄주를 돌리며 여자들과 질펀하게 놀던 그들은 일부는 2차로 향했고 문제의 의원도 함께 갔다는 것이다.

은밀한 술자리가 외부로 알려진 계기는 당시 P시의 한 경찰간부 역시 그날 바로 옆방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연히 종업원이 ‘옆방에 국회의원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다음날 다시 그 술집을 찾았다.그 경찰 간부는 당시 동석했던 여종업원을 찾아내 ‘2차를 갔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면서 정가에 퍼진 사건이다.당시에 ‘경찰, 모 의원 죽이기’라는 음모론부터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설마 2차를 갔겠느냐’는 등 말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홍준철  mariocap@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