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게임’으로 커지는 집안싸움‘전모’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제대로 붙었다. 세종시 논란을 두고 칼끝 대치상황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이후 뜨겁게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싸움을 건 쪽은 박 전 대표다. 지난 10.28재보선 직전 ‘세종시 원안+알파’ 발언으로 정부측 ‘수정안’에 제동을 걸었다. 선거 전문가들은 박 전 대표의 작심 발언으로 친한나라당 유권자들의 투표소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2:3으로 성적을 받았지만 중원에서 참패한 청와대와 여당은 면이 서질 않게 됐다. 재보선 이후 벌어진 여론조사에서도 원안 통과가 수정안보다 찬성률이 높게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정면 승부를 택했다. 친박 진영 역시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원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 일각에선 친이 친박이 헤어지는 ‘분당설’이 나오고 있다. 빠르면 내년초 세종시 논란으로 한나라당발 정계개편이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이 재차 내홍에 휩싸였다. 고질적인 친이 친박간 갈등이 단초가 됐다. 쟁점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세종시)’를 두고 첨예한 대결 중이다. 이명박 정권은 충청권 출신 정운찬 총리를 내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반면 당 대표 시절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박근혜 전 대표는 ‘원안+알파’를 고수하고 있다. 양대 계파 수장의 입장이 배치되면서 친이 친박간 세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친이 안상수 원내대표는 ‘세종시 논쟁 중단’을 공성진 최고위원은 ‘국민투표’를 주장하며 몰아 세웠다. 친박 진영에서는 ‘원안 통과’를 주장하며 박 전 대표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일단 청와대와 정부측 입장은 기존의 세종시 원안을 변경해 ‘녹색·교육·과학기업 복합도시’로 바꾸자는 입장이다. 기존 정부부처 9부2처2청 이전에서 몇 개의 관련부처만 옮기는 대신 서울대 공대 제2캠퍼스 조성, 이화여대 분교, 서울대 병원 및 연구소, KAIST 대학원, LG 생명공학 본사 및 공장 유치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교육·과학비즈니스 도시’와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박, ‘제 2의 탄핵 후폭풍 불 수 있다’ MB 맞짱
이를 위해 정 총리는 정부 부처장관과 민간 명망가가 참여하는 총 25명의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해 11~12월 여론수렴과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 1월 공청회를 거쳐 이 대통령의 결단을 통해 최종 수정안을 마련, 빠르면 내년 2월 늦어도 3월안에 세종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원안+알파’로 맞서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최측근들을 통해 “한나라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소홀히 하는 당이 된다면 또다시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노 전 대통령 탄해 후폭풍처럼 국민에게 외면 받을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 마디로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정부 질문에 나선 친박 조원진 의원실 역시 마찬가지다. 조 의원실에서는 “원안을 보면 정부부처 13개 기관을 옮기고 나서 주변에 문화, 국제교류, 의료·복지, 대학·연구 시설들을 순차적으로 배치하려는 계획이었다”며 “현재 MB 정권이 내세우는 자족도시 기능이 다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 시절 행복도시 건설을 담당했던 구여권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 지적을 내놓았다. 그는 “이미 한나라당과 논의할 당시 현재 지적되는 ‘유령도시’, ‘자족도시’ 기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민간 기업이나 연구소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어 정부부처만 옮기는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나 박 전 대표 둘 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말 장난을 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경우에는 ‘노무현 포비아(강박 증세)’가 강해 노 정권 시절 추진한 사업에 대해 무조건 반대할려는 경향이 높다”고 질타했다.
MB ‘수정론’ 고수, 노무현 포비아 발로
세종시 관련 여론 흐름도 변하고 있다. 재보선 전 이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민심이 박 전 대표의 ‘원안+알파’ 발언과 재보선 패배이후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가 지난 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 찬성 의견이 47.9%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 29.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서치 플러스의 10월31일 조사에서도 ‘원안대로 9개부처 이전 추진(35.3%),’ ‘아예 15개 부처 전부 이전(13.4%)’ 등 ‘원안+알파’에 대한 지지가 48.7%로 수정안 지지 39.4%(사업 대폭 축소 21.5%+전면 백지화 17.9%)보다 높았다.
박 전 대표의 ‘원안+알파’ 발언이 이 대통령의 ‘수정안’ 보다 국민들로부터 높게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다. 당장 이 대통령과 친이 진영은 내년 수정안이 발표되고 국회 표대결로 갈 경우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우려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공법’을 선택했음에도 친박의 반대로 무산될 경우 정국 주도권은 급격히 박 전 대표와 민주당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높다.
당내 40여명이 되는 친박 의원과 민주당 86석, 자유선진당(17)과 친박연대(8석) 소속 국회의원들까지 힘을 합세할 경우 수정안 법안이 통과가 쉽지 않다. 이럴 경우 이 대통령과 친이 진영은 ‘분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감을 표출하고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에서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열린우리당에 주문했지만 야당과 협상결렬에 내부 이견으로 무산된 바 있다.
이처럼 세종시를 두고 벌어질 당 내분은 자칫 한나라당발 정계개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방선거는 2012년 대선과 직결되는 선거다. 어느 당 누가 어느 지역을 석권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권 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종시’ 논란이 치킨 게임식으로 흘러 친박과 친이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널 경우 둘 중의 한 진영은 당을 뛰쳐나갈 공산이 높다. 박 전 대표나 이 대통령 모두 정치적 생명을 건 도박인셈이다. 정계개편 고리는 세종시 원안 찬반이 될 공산이 높고 촉매는 수도권 및 충청권을 둘러싼 중원 쟁탈전이 될 공산이 높다. 이 파고에는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등 보수성향의 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정계 개편 회오리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원내교섭단체에서 밀려난 자유선진당의 경우 ‘세종시 원안통과’를 매개로 친박연대와 연대설은 이미 정가에 폭넓게 퍼진 상황이다. 단지 지방선거전이냐 후이냐의 시기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박근혜 당’, ‘이명박 당’으로 갈라설 경우 자유선진당 의원 중 일부는 박근혜 당으로 열린우리당 출신의 박상돈, 이상민, 김창수 의원 등은 민주당으로 말을 옮겨 탈 공산이 높다는 지적이다.
지방선거전 집권여당발 정계개편 오나
여권발 정계개편 파고는 민주당 또한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이미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을 중심으로 친노 신당인 ‘국민참여당’이 들어섰고 이해찬 중심의 시민사회그룹, 유시민 중심의 친노 부산파 인맥에 무소속 정동영 의원 그룹이 외곽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으로서는 10.28 재보선에서 승리로 인해 정세균 체제가 공고화됐지만 집권 여당발 정계개편 파고에 무관하게 있기에는 정 대표의 기반이 약한 게 사실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중간 심판’ 성격으로 치러지는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공방이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1차 가상 시나리오가 ‘세종시 수정안’으로 승부수를 던진 이 대통령으로 인해 지방선거전에 제 정파간 이합집산될 공산이 한층 높아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