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시설보호 파견 경비병 “사실상 전투병과 다를 바 없어”

정부는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요원 확대와 이를 경비할 보호병력 파견을 골자로 하는 아프간 추가지원안을 발표했다. 지원안이 발표되자 야권과 반전평화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의 이같은 결정에 강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아프간 파견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1990년대 후반과 2001년 경 아프간에 머문 적 있다는 전직 대사관 직원 A씨의 충격적인 경험담이 간담을 서늘케 한다. A씨는 9.11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하기 전에 한 차례 아프간을 방문한 적 있다. 이어 아프간 전쟁이 본격화되자 현지에서 한국 외교관들의 일을 도왔다. A씨는 당시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맡았는지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현지조사 업무를 도왔다고만 했다. A씨와 더불어 아프간의 실상을 증언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아프간에서 교전현장을 직접 경험했다는 김모(34)씨다. 김씨가 전하는 아프간의 실상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다. 민간인들의 삶도 처참하지만 군인들의 삶도 끔찍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연 아프간에 무엇을 보았을까.
외교통상부 윤태영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 실사단을 현지에 파견, 실사한 내용을 토대로 규모나 구성이 정해질 것”이라며 “다른 나라의 지방재건팀과 마찬가지로 민간인력과 시설보호를 위한 적정수의 경비 병력이 파견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경비병력의 역할이다. 정부가 경비병력 파병방침을 발표하자 일각에선 이를 두고 사실상 전투병 파병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아프간 현지 상황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탈레반 무장반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해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뢰와 부비트랩(건드리면 폭발하도록 만든 임시장치)으로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다 해도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경비병력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다.
현재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지를 오가며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A씨는 과거 아프간에 머물던 때를 회상하며 “그곳에서 단 일분일초도 편하게 잠을 자본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
A씨는 아프간에 경비 병력을 파견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A씨는 “아프간은 과거 소련이 그랬듯이 미국도 두 손 두 발 다 든 곳”이라며 “미국은 지금 미국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철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동맹국에 아프간 증파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동맹국에 역할분담을 제안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아프간의 상황은 최악을 넘어 절망이다. 척박한 땅과 절대 빈곤 외엔 아무것도 없다. 수도인 카불에도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도 무기거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카불의 재래시장에서 미화 40달러면 암거래상을 통해 손쉽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불량품도 많지만 대부분 조금만 손보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카불은 밤만 되면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무법천지다. 특히 외국인들은 밤에 거리로 나갔다가는 옷은 물론이고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목숨을 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이 손에 총을 쥐고 있기 때문에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선 기꺼이 방아쇠를 당긴다. 심지어 10살이 채 안된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총을 겨누기도 한다고 A씨는 말한다.
A씨는 “미군도 밤에는 경비지역에서 철수해 자신들이 주둔하는 캠프만 방어한다”며 “내가 숙소를 알아보러 다닐 때 유난히 싼 집이 있어 이유를 물었더니 그 집 주변에서 수류탄 테러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A씨의 설명을 들어보면 한국의 경비병력은 무장한 아프간인과 언제 어디서 교전을 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항상 기습공격에 긴장하며 때때로 교전을 벌이는 전투병력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정복되지 않는 땅
정부도 경비병력이 전투를 벌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일부 시인한 상태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 요원의 보호를 위해 파병될 경우 “(보호병력은) 한국의 PRT를 보호하고 경우에 따라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불가피한 교전이 있을 수 있고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혀 파장을 일으켰다.
한발 더 나아가 김 장관은 “(아프간 파병시) 정부 기관의 임무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희생이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면서 “우리에 대한 공격을 해오는 데 대한 방어를 할 것”이라고 말해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만큼 현지 상황은 심각하다.
2001~2002년에 아프간에 머문 적 있다는 K씨. 그는 “아직도 그때 본 것들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모두 잊고 싶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K씨는 어떤 경로로 아프간에 가게 됐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지인의 권유로 아프간에 가서 보급품 수송 차량 경호임무를 수행했다고만 말했다. K씨는 아프간을 떠올리며 “그저 살기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 같았다”고 말했다. 아프간 사람들에게 있어 당장 목숨을 부지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다.
K씨는 “미군들이 이라크에서 많이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프간에서 희생된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확히 알아보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누가 죽었다거나 당했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프간은 지형이 매우 험준하기 때문에 아무리 첨단무기가 동원돼도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산속에 틀어박힌 게릴라 몇 명을 잡기 위해 첨단추적 장치와 부대장비들을 일일이 동원할 수도 없다. 이렇게 고가의 장비를 동원했다가는 게릴라들의 로켓포 한방에 모두 고철로 변해버린다.
K씨는 “아프간 게릴라들은 한 겨울에도 맨발로 다닌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에서도 얇은 옷 한 겹으로 버틴다. 이들은 고산지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미군들이 무거운 장비를 지고 이들을 추적하다간 고산병과 체력고갈로 자멸하게 돼 있다. 그래서 미군들은 아프간을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저주받은 땅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또 K씨는 “미군에 비해 한국군은 게릴라들과의 전투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게릴라전에 대한 매뉴얼자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게릴라는 월남전 때와는 또 다르다. 아마 경비병력이 불가피하게 전투임무나 수색·정탐임무를 수행하게 되면 반드시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최근 미국 뉴욕타임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상황은 탈레반과의 자살폭탄테러나 교전이 아니라 통상적인 순찰 중 일어나는 즉석폭발장치(IED)에 의한 공격이다. IED는 부비트랩과는 약간 다르다. IED는 도로 주변의 경계석이나 쓰레기통, 가로등과 같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물 등에 심어놓은 폭탄으로, 공격 목표가 나타날 경우 원격 조정해 터트리는 폭탄이다. 지난달 27일 아프간 남부에서 미군 8명 이 몰살한 것도 IED 공격에 의한 것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아프간에서의 IED 공격 건수는 2007년 이후 350% 증가했다. IED를 분석해 온 민간회사 HMS는 이라크에서의 IED 공격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아프간이나 그 외 지역에서의 공격 횟수는 늘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515건이었던 아프간의 IED 공격은 지난해 955건으로 급증했다.
#‘아프칸 전쟁’확전 초읽기
강력한 화력으로 ‘대태러전’ 종식 시키겠다
‘아프칸 전쟁’ 확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완승을 거둔 오바마측 수뇌부는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대외정책의 초점을 아프카니스탄에 맞추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분쟁지역 해결사로 민주당 최고의 외교관으로 정평이 난 리처드 홀부르크를 아프카니스탄의 특사로 임명하고 취임 이후 2만1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투입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도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하고 ‘명분 없는 전쟁’이란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마바 정부는 대테러전의 본질을 명확하게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집단이 기반을 확대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친미 안정화를 대테러전의 기본 지침으로 삼은 것.
수많은 희생자를 낸 명분 없는 싸움터였던 이라크보다는 아프카니스탄으로 대테러 전쟁의 명분을 다시 찾겠다는 의도이다.
오마바 정부는 대의명분과 실리 두 가지를 챙기기 위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압박해서 통치권에 대한 기반을 재확보를 노리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에 친미 정부를 출범시켜 인접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이라크에서 잃어버렸던 명예와 경제적 피해 등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그 다음에 한층 강화된 화력(국제사회의 협력)으로 탈레반 잔당을 색출하면서 대 테러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2004년 9월 아프카니스탄 역사상 최초의 국민투표로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선출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지난 8월 대선에서 부정선거 시비에 휩쓸리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진 것. 결국 카르자이 대통령은 국민 여론을 받아들여 11월 7일 재선거를 약속했다.
재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의 아프칸 대테러전의 방향이 결정될 전망이다. 재선거를 통해 카르자이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 미국의 행보가 한층 빨라질 수밖에 없다. 화력을 총 집중해서 탈레반을 들추어내어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을 색출한다는 계획이다.
‘아프칸 전쟁’은 올 연말 국제사회에 초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 승리할 것인가. 아니면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이 미국과 서방에 대항, 테러를 강행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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