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北核 그랜드 바겐 추진”둘러싼 외교복마전
MB“北核 그랜드 바겐 추진”둘러싼 외교복마전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9-09-29 09:46
  • 승인 2009.09.29 09:46
  • 호수 805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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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폐기-체제보장·국제지원 동시에’ 조건 비현실적

북핵 해법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을 제안하면서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CFR)·코리아소사이어티(KS)·아시아소사이어티(AS) 공동주최 오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확실한 안전보장과 국제 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 타결 즉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큰 틀에서 주고받기)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 나온 결과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그랜드 바겐’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라며 한 발짝 물러서는 태도를 보여 한반도 주변국 외교가에 혼선이 일고 있다.

유엔 총회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이날 뉴욕시내 미국 외교협회 본부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 등 3개 기관이 공동 주최한 오찬간담회에 참석해 “6자회담 틀 안에서 (북한을 제외한) 5자 간의 논의 속에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통합된 접근법이 나와야 한다"며 그랜드 바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설명에 따르면 그랜드 바겐은 북핵문제가 그동안의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만 소모한 것이란 판단에 따라 실질적 핵 폐기 조치와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을 동시에 이행하는 일괄 타결 방식이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는 진전과 후퇴, 지연을 반복해 왔는데 이런 과거 패턴을 탈피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핵 동결에 타협하면 이를 위해 보상하고, 북한이 다시 이를 어겨 원점으로 회귀하는 지난 20년간의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북핵 해법에 관한한 더 이상 양보하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바겐은 이 대통령이 북한에 양자선택의 시간이 왔음을 통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이제 남한과 공존하거나 적이 되거나 둘 중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얘기다.

‘그랜드 바겐' 정책의 성패가 전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달린 만큼 앞으로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해 “북한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6자회담 참가국들이 긴밀히 공조해야 하고 특히 중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북한의 핵 포기 의지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이 위기가 아닌 기회"라며 “북한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방노선 걷는 한국

그랜드 바겐을 놓고 한미 간 엇박자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랜드 바겐을 “소모적으로 끌어온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크게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은 “그랜드 바겐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랜드 바겐이 나오게 된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간에 그랜드 바겐 구상이 사전에 제대로 조율되지 않았고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과 충분한 상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나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간의 공조에 차질이 우려된다.

일단 정부는 “그랜드 바겐은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사항이며 지금의 혼란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의 반응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 측의 반응이 내포한 뜻은 매우 분명하다. 때문에 미국의 의도를 단순 오해로 보기는 힘들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뉴욕에서 한미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이 대통령이 밝힌 북핵 그랜드 바겐에 대해 (6자회담 참가국으로 구성된)5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뿐 아니라 이미 5자에도 우리 정부가 이 구상을 설명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은 바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회담 직후 “그랜드 바겐을 논의하지 않았다”며 그 내용에 대해서도 “솔직히 모르겠다”고 밝혔다.

엇갈리는 한·미 양국의 반응은 이뿐 아니다.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다음날인 22일 정례브리핑에서 그랜드 바겐 방식과 관련, “(한미가 공유해온) 대북 접근법엔 변화가 없다”며 선을 그었고, 뉴욕 타임즈는 미 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을 인용, “북한 핵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다는 것은 무리한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랜드 바겐은 그동안 미국이 추진해 왔던 점진적 해결방식과 거리가 있다는 분위기다. 외교가에선 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그랜드 바겐을 불쑥 꺼내들었다 보고 있다. 이 같은 사안은 통상 장관 회담 등에서 거론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을 언급하기 직전 같은 날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랜드 바겐 거리 둔 미국 왜?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23일 뉴욕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 입장차를 보이는 것에 대해 해명했다.

김 수석은 “지난 6월 한미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이 개념이 처음 나왔고, 당시에는 (대북) 제재국면이어서 공개적으로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라며 “비공개적으로 협의해 오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양국간에 다소 껄끄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김 수석은 “그랜드 바겐은 북핵 해결을 위해 6자회담 참가국 중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지금까지 논의가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 ive Package)' 개념을 제시했으며 이를 한 단계 구체화한 것이라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외교가 일각에서는 그랜드 바겐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계속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핵문제를 끌고 있는 북한에 부담을 줘 오히려 타협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협상의 시작단계부터 최종 목표에 해당하는 ‘비가역적 핵폐기'를 주문하고 있어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이 ‘핵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할 경우'라고 규정한 대목은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물론이고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 등 무기화에 필수적인 핵물질을 완전히 폐기조치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핵 폐기의 대가로 지급되는 ‘패키지’가 북한에 통할지도 미지수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 중 안전보장 부분은 이미 9.19 공동성명에 포함된 내용이다. 여기에 미국이 그랜드 바겐에 아직 완전 동의하지 않은 입장이어서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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