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미국,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
1945년 미국,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4-07-21 09:00
  • 승인 2004.07.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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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7월 13일 "제주도, 도로승격"

46년 7월 13일 제주도가 도(道)로 승격됐다. 이전까지 제주도는 행정구역상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다. 현재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이며, 2시 2군 7읍 5개면으로 되어 있다. 제주도는 넓이 1,800 ㎢에 동서 길이 73 km, 남북 길이41 km 크기이다.

1976년 7월 15일 "잠수교 개통"

잠수교는 강북의 서빙고동과 강남의 반포동 사이를 연결하는 한강교량으로서 1976년 7월 15일 개통됐다.잠수교는 홍수 때에는 수면 아래에 잠기도록 낮게 가설한 교량이다. 따라서 홍수 때는 교통이 차단되며, 수위가 낮아지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1982년 잠수교 위에 반포대교가 준공, 국내 최초의 2층 교량이 됐다. 1층은 잠수교, 2층은 반포대교로서 단일구조의 2중 교량인 셈이다.잠수교의 교각사이의 거리는 다른 한강상의 다리와 달리 폭이 좁은데 이는 유사시 다리가 파괴되었을 때, 거리가 짧은 점을 이용, 신속하게 건너가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또한, 잠수교는 한강에서 선박을 이용하지 않고, 한강의 중심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교량이기도 하다.

1994년 7월 15일 "김일성 사망, 조문외교 논란"

민주당 이부영 의원이 지난 94년 7월 15일 ‘김일성 주석 조문’발언을 했다. 이 의원의 발언으로 조문외교 논란에 휩싸였다. 이부영 의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에서 정부가 화해와 신뢰구축의 한 방편으로서 김일성 주석 조문단을 파견할 의향이 없는지 질의했다. 이에 여당인 민자당과 보수인사들이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공격, 파문이 커졌다.이부영 의원은 미·일·러·중 등이 김정일 체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두보를 만들려고 열중하는 데 반해 남한만 대북 영향력 확보에 뒤지면 안된다는 의미에서 조문외교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수세력 등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발끈했고, 정부도 민간조문단의 방북을 불허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

1945년 7월 16일 미국이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미국은 이날 뉴멕시코주 남부 앨러머고도 근처 사막 트리니티의 시험 폭파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로써 인류의 재앙으로 불리는 원자폭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위력은 제 2차세계 대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그해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 235 폭탄, 9일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239 폭탄이 투하됐다.이 폭탄의 투하로 히로시마에서는 34만 3,000명의 인구 중에서 약 7만 명이 사망, 13만 명이 부상, 완전히 연소·파괴된 가옥 6만 2,000호, 반소 또는 반파가옥 1만 호, 이재민 10만 명을 냈고, 나가사키에서는 사망 2만 명, 부상 5만 명, 완전연소 또는 파괴가옥 2만 호, 반소 또는 반파가옥 2만 5,000호, 이재민 10만 명을 냈다. 또한 이 폭탄으로 일본의 항복이 촉진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앞당겨 끝내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인명피해도 컸다.1949년에는 소련, 1952년에는 영국, 1960년에는 프랑스가 각각 원폭 실험에 성공, 원폭 보유를 세상에 알렸다. 그 뒤를 이어 중국·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원자폭탄을 보유하게 되었다.

1965년 7월 19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세"

1965년 7월 19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사망했다.황해도 평산출생인 이승만은 독립협회 활동중 정부 전복혐의로 감옥에 갇혔다가 7년만에 풀려나는 등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그리고 미국 망명기간 동안에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3·1운동후 한성 임시정부와 상하이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1945년 해방뒤 귀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하지만 장기독재로 인해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했다.그리고 이날 사망했다. 장례는 고국에서 가족장으로 조촐히 집행되었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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