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감기관 자료 거부 백태 1위 ‘비밀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10월 재보선을 두고 ‘맞짱’을 붙는다. 1차전은 총리 및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다. ‘제2의 천성관’을 만들겠다는 야권과 이를 방어하는 여당 의원들간 혈전이 예고된다. 2차전은 재보선 직전까지 벌이는 국정감사 장이다. 국정 전반에 대한 감사가 이뤄지는 만큼 야권은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하지만 피감기관인 정부측 반응은 냉담하다. 여당은 ‘같은 편끼리…’, 야당은 ‘야당이니까’ 등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요청 자료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년 365일중 20일간 짧게 진행되는 국정감사에다 정부측의 부실한 자료 제공으로 국회에서는 ‘상시국감 도입’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집권 여당 사무총장도 안준다”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실의 한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내달 5일부터 치러지는 국정감사를 대비해 정부부처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예 답변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다른 정무위 의원실의 여당 보좌관은 “자료를 요청하면 제일 많이 듣는 변명이 ‘비밀이다’, ‘기밀이다’이라는 말이다”며 “보좌관이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아예 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여당 의원실의 경우 피감 기관측에서 노골적으로 “같은 편끼리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면서 자료 협조를 하지 않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사실 집권 여당이 정부 부처를 집중적으로 감사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노무현 정부나 DJ 정부 등 역대 집권 여당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교통상위 권영세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자료 협조가 너무 안돼서 차라리 국회의장의 서명을 받아하는 서면질의를 하고 있다”면서 자체적으로 해법 찾기에 나선 방마저 나왔다.
정보위나 국방위의 경우에는 국가 기밀을 다루는 피감기관으로 일반적인 자료를 제외한 자료 요청에 대해 일체 주지 않고 있다. 대신 국회에 들어와 구두보고를 하고 그 자리에서 자료를 볼 수 있을 뿐 복사를 할 수도 없다.
집권여당에 “같은 편끼리 너무 하는 것 아니냐”거부
국방부나 국정원 등에서는 한때 국가 기밀이라도 국회 의원실이 요구할 경우 ‘국가기밀’이라고 직인을 찍어 자료를 줬지만 몇 몇 보좌진들이 언론에 흘려 공개가 된 이후 자료 공개를 더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국방위소속 한 보좌관은 “국방부 납품이나 60만 군인들의 먹거리 관련 이런저런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며 “군인들의 건강에 대한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로 체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인사는 “하지만 국방위 국감장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할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며 “자칫 재보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야당 공격의 빌미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우려했다.
이번 국정감사는 10월5일부터 20일간으로 24일까지 실시된다. 10월 29일 재보선 선거일 사흘 전까지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부처나 산하기관의 대형 ‘부실’이나 ‘비리’가 터질 경우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비롯해 자유선진당이나 무소속,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실에 근무하는 보좌진들의 경우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민주당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한 인사는 “지난 7월달에 자료 요청을 했는 데 아직까지 주지 않고 있다”며 “왜 안주는 지 설명도 없다”고 한탄했다. 야당 보좌진들의 경우 피감기관이 자료 요청시 가장 흔한 변명은 ‘무응답’이다. 아예 한 피감기관은 ‘자료가 없다’고 하는 부처도 부지기수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자료 요청을 하고 일주일이나 2주가 지나서 보낸 자료를 보면 A4 용지 반장 분량의 부실한 답변으로 보내주기도 일쑤”라며 “준비중이라며 시간 끄는 피감 기관도 많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국토위 김성순 의원실의 경우에는 황당한 경험까지 토로했다. 김 의원실에서 건교위 산하 A 공사로부터 자료를 받았다. 문제는 다음에 터졌다. 자료를 준 실무 과장이 의원실에 찾아와 “주관부처에서 자료를 준 인사를 색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곤혹스럽다”고 하소연을 한 것이다. 주무부처가 산하 기관이라는 점을 활용해 자료를 준 인사에게 ‘책임’을 묻는 식이다.
민주당, “MB 정권 국정감사 보도지침 내렸나” 격앙
민주당 정무위 소속 한 보좌관은 또 다른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이 보좌관은 4대강 살리기관련 자료를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에서는 자료 거부는 물론이고 해당 의원실 관계자에 면박까지 준 것이다. 분노한 의원실에서는 국감장에서 “모 과장을 증인으로 선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감에 몰두하는 배경에는 ‘언론 보도’도 한몫하고 있다. 300여명에 육박하는 국회의원들이 평상시에 언론에 노출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언론이나 방송은 대통령이나 대선주자급 인사, 핵심 당직자, 장관, 광역단체장 등 뉴스메이커의 ‘입’과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국감장에서는 누구나 해당 피감기관에 대한 ‘부실’, ‘비리’를 폭로를 통해 언론을 탈 수 있다. 또한 연말에 발행하는 의정보고서 작성에 언론보도 자료는 좋은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홍보용’으로 일석이조다. 국정 감사 때마다 공격해야 하는 국회의원과 방어해야 하는 피감기관의 자료 공방으로 인해 부실감사라는 지적은 매번 지적됐다. 이에 여야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상시국감 도입’을 재차 주장하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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