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4호> 1937년12월23일 일제, 각급학교에 천황사진 배포 경배 강요
<제504호> 1937년12월23일 일제, 각급학교에 천황사진 배포 경배 강요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3-12-31 09:00
  • 승인 2003.12.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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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12월23일 일제, 각급학교에 천황사진 배포 경배 강요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는 한일합방 직후부터이다. 1912년 일본천황의 사진에 경례하라고 하더니 1920년부터 일본의 신사를 각지에 세워놓고 전국민에게 참배를 강요했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사의 의례가 아니고 국민이 국가에 대한 충성의 표시라고 주장하면서 신사참배를 강요했다.신사참배를 강요한 의도는 일본의 신들 앞에 경배케 함으로써 한민족 정신을 말살하려는데 있었고, 둘째로는 일본의 식민지 정치의 기본적인 정책인 일본황도사상통일실현을 성취하기 위함이며, 셋째 신사참배로 소위 일본황국신민으로 만들려는데 있었고, 넷째 한국교회의 신앙생명을 송두리째 말살해 버리려는데 있었다.결국 일제는 1937년 12월 23일 일황의 사진을 각급 학교에 배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경배케 하기에 이른다.

1991년 12월24일 김정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질적인 북한의 최고지도자.특히 트레이드 마크인 인민복과 선글라스는 한때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김 위원장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1942년 러시아 브야츠크에서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한국전쟁이 일어난 8살때 만주로 피난가서 혁명학원을 다녔으며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평양에 돌아와 60년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또 64년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당에 들어가 10여년 동안 지도자준비 과정을 철저하게 거쳤다.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74년부터이며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이전까지 20년간 후계자 학습을 받아왔다.80년 6차 당대회이후 당내 2인자로 떠올랐으며 특히 91년 12월 24일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돼 지도자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장악했다.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자기의 확고한 카리스마를 정립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1898년 12월26일 퀴리 부인, 라듐 발견
학위 논문의 주제를 찾고 있던 마리 퀴리는 H. 베크렐이 발견한(1896) 새로운 현상(그녀는 후에 이 현상을 ‘ 방사능’이라고 불렀음)에 접하고 우라늄에서 발견되는 성질이 다른 물질에서도 발견되는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G. C. 슈미트와 같은 시기에 토륨의 경우에도 같은 성질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광물질을 조사하면서 역청 우라늄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역청 우라늄광은 순수한 우라늄보다 방사능이 큰 광물질로 방사능이 매우 큰 소량의 알려지지 않은 물질의 광석에 존재한다는 것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으며 새로운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으로 이어진 연구에 피에르 퀴리가 참여했다.피에르 퀴리가 주로 새로운 복사를 물리적으로 연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동안 마리 퀴리는 금속상태에서 순수 라듐을 얻기 위해 애썼는데 피에르 퀴리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화학자 A. 데비에른의 도움으로 이를 얻을 수 있었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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