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가 착공 1년 반만에 개통됐다. 총공사비 29억여원. 공사연인원 225만명에 연 25만대의 공사장비가 투입된 영동동해고속도로. 새로 뚫린 길을 따라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 도착한 박정희 대통령은 동해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해 공사관계자들을 격력했다. 새로 개통된 영동고속도로는 동해안 지역의 균형있는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 실시"
군사정부의 민정이양 방침에 따라 제 5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45일전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민정당 윤보선 전대통령의 대결로 압축된 제 5대 대통령 선거.선거결과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승리로 나타났다. 5·16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지 29개월만에 박정희 장군은 5대 대통령으로 탄생했다.
1979년 10월 18일 "부산 비상계엄령 선포"
이날 새벽 0시를 기해 부산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불법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한달 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이후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된 부산시. 이틀전 부산대생들과 동아대생들이 유신타도와 독재타도를 외치다 경찰과 충돌이 빚어졌다. 시위는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대대적인 반독재 시위로 발전했다. 부산시에 계엄이 선포된지 이틀 뒤인 10월 20일 마산시에 위수령이 발동됐다.
1995년 10월 19일 "노태우씨 비자금 폭로 "
정기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 나선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 노태우 대통령이 4,000여억원의 비자금을 은닉했다고 폭로했다. 박의원은 100억원이 예치된 신한은행 입금조회표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박의원의 발언 다음날 정부가 비자금 수사 방침을 밝혔지만 노태우 전대통령측은 박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하겠다면서 비자금 조성사실을 부인했다. 사흘 뒤 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이 검찰에 자진출두하고 은행관계자들이 소환되면서 비자금의 실체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박의원의 폭로 9일만에 노태우씨는 마침내 국민에 대한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재임 중 5,000여억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고, 남은 돈은 1,700여억원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비자금 조성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박의원 폭로 10일 뒤 노씨는 결국 검찰에 소환되고 비자금을 둘러싼 노씨와 재계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지자 삼성, 현대,대우,한보를 비롯한 34개 재벌총수들에 대한 검찰소환이 이뤄졌다. 비자금 수사결과 재벌기업 총수들은 기업에 대한 특혜 대가 등으로 30억원에서 250억원까지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노태우씨의 동서 금진호의원과 6공의 경제정책을 주도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보강수사도 이어졌다. 1995년 11월 16일 두번째로 검찰에 소환돼 비자금 4,600억원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헌정사상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기록했다. 검찰은 구속 만기일인 12월 9일 대통령 재임중에 36개 재벌총수로부터 모두 2,800여억원을 뇌물로 받은 노씨를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기소하고 노씨에게 돈을 준 재벌총수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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