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 대회 ‘역사 속으로’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 대회 ‘역사 속으로’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3-10-06 09:00
  • 승인 2003.10.0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46년 9월 30일 "뉘렌베르크 전범재판 종료"
나치전범 처리를 위한 뉘렌베르크 재판이 1945년 10월초 시작됐다. 재판은 216차례의 공판 끝에 1946년 막을 내렸다. 나치전범 19명에 대한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나치당 총비서였던 보오만을 포함한 12명은 교수형, 부총통을 지낸 루돌프에스 3명은 종신형, 나머지 4명은 10년에서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나치의 주역들은 역사적인 현장 뉘렌베르크에서 인류와 역사의 준염한 심판을 받았다.

1956년 10월 1일 "제1회 국군의 날 기념식 "
제1회 국군의 날 기념식이 육·해·공군 합동으로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에 앞서 지난 달 열린 국무회의는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결정했다. 기념식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군관계자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시범전투와 사열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F86 전투기 등의 편대 비행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1869년 10월 2일 "인도 마하트마 간디 출생 "
인도의 위대한 민족지도자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 서벵골의 항구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람찬드 간디와 어머니 푸틀리바이 사이에서 3남1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난 간디. 당시 인도의 경제는 영국 지배하에 있었고 사회는 카스트제도에 의해 하층계급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었다. 간디는 영국과 아프리카 생활을 하면서 인종문제와 인간 존엄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인도 독립운동에 필요한 철학적 기반을 다졌다.

1955년 10월 3일 "단기 4288주년 개천절 기념식"
단군 성조가 처음으로 나라의 터전을 마련한 지 4288주년이 되는 1955년 이날 개천절 기념식이 중앙청 강당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개천절은 1909년 나철의 대종교에 의해 나라의 경축일로 정해져 겨레의 긍지를 지키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발전했다.

1955년 10월 4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
서울 태릉에 자리잡고 있는 육군사관학교는 이날 4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육사 11기 151명이 졸업식을 가졌다.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정규과정으로 바뀐 뒤 열리는 첫 졸업식이다. 대통령 각하, 밴플리트 주한미8군 사령관, 국방부장관 등이 굳은 악수로써 졸업생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1945년 군사영어학교로 시작한 육군사관학교는 초급장교 교육을 위한 경비사관학교를 거쳐 1948년 육군사관학교로 발전을 거듭했다. 군경력자들이 입교해 단기교육을 받던 초기의 제도는 1954년 4년제 정규과정으로 바뀌었다.

1986년 10월 5일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폐막"
아시아인의 전진을 다진 제 10회 아시아경기대회가 마침내 16일간에 걸친 열전의 막을 내렸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33개 경기장에서 펼쳐졌던 아시아경기대회의 폐막식은 잠실 메인스타디움에서 거행됐다.경기 기간동안 친숙해진 각국 선수들이 8만 관중의 환호속에 잠실 메인스타디움에 입장했다. 스물다섯개 전종목에 639명으로 가장 많은 선수가 출전한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서 중국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당초 65개의 금메달을 목표했던 우리나라 선수단. 하지만 93개의 금메달을 따내 9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에 금메달 한 개 차이로 2등을 했다. 폐막식에 참석한 각국 선수단은 4년 뒤 베이징에서 열릴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