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4호> 1988년 3당 총재, 광주민주항쟁 진상규명 촉구 합의
<제474호> 1988년 3당 총재, 광주민주항쟁 진상규명 촉구 합의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3-05-28 09:00
  • 승인 2003.05.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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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27일
제 8차 남북적십자회담

제 8차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 회담의 주요 안건은 천만 이산가족의 재회 추진이었다. 실무팀 대표는 대한 적십자사 이영덕 수석 대표와 북한 적십자사 이동률 단장이다. 두 차례의 본회의와 실무접촉 끝에 양측은 광복 40주년기념으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회담을 끝낸 북측 대표들은 용인 민속촌에서 관광나온 시민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우리 대표단과 동동주를 주고 받으며 고유민속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이밖에 텔레비전방송국을 방문해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 녹화 테이프를 보기도 했다. 유창순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이영덕 수석대표 등이 개최한 세 차례의 만찬에서 양측 대표들은 앞으로의 회담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북한 대표단은 평양에서 9차 남북 적십자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1988년 5월 28일
노 대통령, 5공비리 등 논의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야권 3당의 총재들과 회담했다.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참석했다. 통일문제와 지역감정 해소,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비리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노태우 대통령이 야당총재들과 만난 것은 한달 전에 실시된 13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민자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야당총재들은 13대 총선에서 5공비리를 파헤쳐 단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다.여소야대 정국형성으로 야권의 목소리가 한층 드높아졌다. 야당 총재 3명은 국회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5공비리와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1972년 5월 29일
직지심경 발견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경이 파리에서 발견됐다. 유네스코팀에 의해 발견된 이 활자본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독일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75년 앞선 것이다. 직지심경의 또 하나의 목판 인쇄본은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1995년 5월 30일
86우성호 납북

백령도 서북쪽 40마일 지점에서 저인망어선 86우성호가 북한에 나포됐다. 북한경비정은 나포과정에서 86우성호에 총격을 가해 선원 8명 가운데 이일용씨 등 3명이 숨지고 5명은 북한에 억류됐다. 86우성호는 피랍 사흘전 같은 회사 소속 85우성호와 함께 불법 어로혐의로 중국측에 나포됐다가 풀려나 인천항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86우성호가 납북된 것은 해군경비정이 우성호의 예정통로에 있던 다른 상선을 우성호로 알고 잘못 유도했기 때문이였다. 북한은 우성호 피랍 두달 뒤 북경에서 열린 남북 2차 쌀회담에서 우성호 사건조사가 끝나는대로 가급적 빨리 우성호를 송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피랍 넉달 뒤 중앙통신을 통해 우성호를 북한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라면서 강경 입장으로 돌아섰다. 북한은 우성호 납북 7개월 뒤인 12월 26일 판문점을 통해 우성호 선원 5명과 유해 3구를 돌려보내 우성호 문제는 일단락됐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영해를 침범한 우성호 선원들은 북한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선원 모두가 범행을 인정해 북한 당국이 이들을 돌려보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조치는 당시 진행되던 경수로 협상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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