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2호> 이주의 역사
<제482호> 이주의 역사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3-07-24 09:00
  • 승인 2003.07.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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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7월22일 경제 재건 5개년 계획 발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오늘 경제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5·16 쿠데타가 성공한지 두달만이다. 이 계획은 제 2공화국 민주당 정권이 작성했던 계획안을 참고해, 수정보완을 거친 후 다음해인 1962년 1월에 경제기획원이 완성했다. 이름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바뀌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서울 세종로에 경제개발 5개년 모형전시장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5년 예정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그러나 이 계획은 연평균 GNP성장률을 후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7.1%로 잡는 등 발표 당시부터 졸속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기획원은 이러한 지적에 따라 1963년 8월, 5개년 계획을 전면 재수정했다.1차 5개년계획의 실패가 교훈이 돼 이어 입안된 2,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게 됐다.

1994년 7월23일 "일본 무라야마 총리 방한 "
일본의 무라야마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세번째, 일본에 무라야마 사회당 정부가 들어선지 첫번째 회담이다. 두 나라 정상은 청와대에서 90분 동안 진행된 회담을 통해 한반도 정세와 과거사 문제, 경제·통상분야 등에 걸쳐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무라야마 일본 총리는 북한과 교섭을 할때 우리나라와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약속하고 종군위안부 문제도 빠른시간안에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무라야마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한일 두 나라의 신뢰회복과 협력기반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1971년 7월26일 "8대 국회 개원"
제 8대 국회가 개원했다.8대 국회의 구성원은 두달전인 5월 25일 실시된 총선에서 뽑힌 국회의원 204명.정당별 의석은 총 204석 가운데 여당인 공화당이 전국구를 포함해 113석, 야당인 신민당 89석 그리고 무소속이 2석을 차지했다. 8대 국회는 개원식에 앞서 국회의장단 구성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결과 국회의장에는 공화당의 백두진 의원이 선출됐고 부의장에는 공화당의 장형순 의원과 신민당 정해영 의원이 뽑혔다. 의원들의 선서로 8대 국회 개원식은 끝났다. 개원식이 끝난 뒤 8대 국회의원들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조인 "
6·25전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이 시작된 지 2년인 지난 1953년.UN측 수석대표 해리슨 중장과 공산측 대표 남일 북한인민군 총참모장이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한국군의 백선엽 소장도 휴전협상에 참가했지만 이미 대전협정을 통해 한국군의 지휘권이 UN군 측에 넘어갔기 때문에 옵서버 자격일 뿐이었다. 선 휴전, 후 협상을 주장하는 UN측과 선 협상, 후 휴전을 고집하는 공산측!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양측의 치열한 전투도 계속됐다. 양측은 2년 동안 군사분계선 설정과 휴전감시 기관 설정 문제 등으로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다가 2년만에 협정서에 서명했다. 전쟁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입장과 스탈린의 죽음이 맞물려 휴전협정은 성사됐다. 휴전협정 조인으로 6·25전쟁은 막을 내렸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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