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양정모, 레슬링서 올림픽 금메달
1976년 양정모, 레슬링서 올림픽 금메달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3-07-31 09:00
  • 승인 2003.07.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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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7월 29일 "민의원.참의원 선거 "
제 5대 민의원과 초대 참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실시됐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처음 실시된 7·29총선은 내각책임제의 제2공화국 의회는 민의원 233명과 참의원 58명으로 구성됐다. 과도내각 수반인 허 정 총리도 투표에 참가했다. 전국 7,079개 투표소에서 치러진 총선 투표율은 82.6%. 개표결과 민주당이 민의원에서 175석, 참의원에서 31석을 차지하는 등 선거 전 관심을 끌었던 혁신계 정당은 민의원에서 5석, 참의원에서 2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나머지 민의원 53석과 참의원 25석은 무소속과 군소 정당이 차지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양원제로 구성된 제2공화국 국회는 1년 후 5·16 쿠데타로 해산됐다.

1976년 8월 1일 "양정모, 올림픽 금메달"
제 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광복후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양정모 선수는 레슬링 자유형 패더급에서 영광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이래 사상 두번째이다. 예선전에서 캐나다 등 4개국 선수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 리그에 진출한 양정모 선수. 미국의 데이비드를 이기고 몽고의 강적 오이도프를 꺾으면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양정모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힘입어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종합 19위를 차지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
이라크가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100만명의 병력을 보유한 이라크군은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워 침공 첫날 쿠웨이트 점령에 성공했다. 쿠웨이트가 10년에 걸쳐 원유를 훔쳤다고 주장한 이라크 ! 이라크가 요구한 24억달러의 배상을 쿠웨이트가 거절하자 바로 무력침공을 감행했다. 쿠웨이트를 점령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열아홉번째 주로 병합했다. 후세인은 이번 쿠웨이트 침공에 외부세력의 개입이 있을 경우 쿠웨이트를 무덤으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즉시 이를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던 유엔안보리는 침공 후 23일이 지난 8월 25일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무력사용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소련도 사상 처음으로 유엔의 무력사용 결의에 동의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유엔의 무력동원 결의 직후 걸프에 미군을 파견했다. 다국적군이 유엔군의 깃발아래 전쟁에 동원된 것은 한국전쟁이후 처음이다. 이라크가 유엔이 제시한 철수시한을 넘기자 1991년 1월 17일 걸프전쟁이 시작됐다. 결국 이라크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에 패해 쿠웨이트에서 철수했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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