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3-09-08 09:00
  • 승인 2003.09.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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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9일 "중국 모택동 사망 "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조기로 게양됐다.중국공산당주석 모택동이 82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을 알리는 조기였다. 모택동의 시신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중국공산당간부들과 일반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모택동은 28살때인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대회에서 호남성 지부의 서기로 공산당에 참가했다. 모택동은 집권기간 동안 미개발상태인 중국에 공업화의 토대를 마련하고 농민에게 농토를 분배하는 등 중국 민중의 신망을 얻었다.

1972년 9월 13일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서울 조선호텔에서 개막된 제 2차 남북적십자회담은 평양에서 제 1차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린지 만 14일만에 서울에서 열린 회담이었다. 이범석 한국적십자사 수석대표는 개회연설을 통해 적십자 정신과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회의진행을 강조했다. 김영우 한국적십자사 총재와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 그리고 고려대 교수인 김준엽 한국적십자사 자문위원 등의 축하연설이 이어졌다. 양측 대표들이 이견 접근을 위해 노력했지만 평양에서의 3차 회담과 또 다시 서울에서 개최될 4차회담의 일정 등을 담을 합의문서만 교환하고 2차회담을 마무리했다. 또한 3차회담부터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절차를 빼고 바로 의제토의에 들어가자고 합의했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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