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6·3 백지화 가능성 높아”여권 초긴장

방송미디어관계법 표결과정 적법성을 놓고 여야가 헌법재판소에서 대격돌을 벌였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국회부의장 등을 상대로 낸 미디어관계법 등 효력정지 및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지난 10일 진행됐다. 헌재가 야당의 손을 들어줄 경우 정치적 위기에 몰릴 수도 있어 여당은 필사적으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정은 야당이 유리한 상황이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방송미디어법 투표가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다. 한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에 다시 다룰 수 없지만 방송법은 재투표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야당측의 이 같은 입장에 동조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헌법재판소 내에서도 미디어법이 무효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만약 미디어법이 백지화되면 현 정부가 입는 타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거 참여정부시절 핵심 사안이었던 행정수도 이전이 백지화 됐을 때 충격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헌재가 어떻게 결론을 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대심판정에는 한나라당 황우여, 박민식 의원과 민주당 천정배, 추미애, 조배숙, 전병헌, 박주선 의원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쟁점은 크게 ▲질의·토론 절차를 생략한 것이 국회의원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재적 과반수의 투표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투표를 종료한 뒤 재투표를 한 것이 일사부재의에 위배되는지 ▲대리 투표가 있었을 때 법률안의 효력이 있는지 등 세 가지다.
공방이 시작되자 야당 측 법률대리인으로 나선 박재승 변호사는 “국민이 반대하는 법안을 다수당임을 믿고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국회의장 측은 투표 참가인원이 과반이 되지 않았다며 표결 불성립을 주장하지만 이는 현행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다.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 요건 중 하나라도 못 채우면 부결된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방송법 존폐 정치판세 바꿔
또 박 변호사는 “이번 투표는 사사오입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라며 “사사오입은 과반수 출석, 과반수 표결의 뒷부분을 조작한 것이지만 이번사안은 앞부분을 무력화 시킨 것”이라고 비난했다. 사사오입은 1954년 헌법 개정을 추진하던 자유당이 수학의 반올림 원칙을 동원해 당시 136석이던 개헌 의결정족수를 135석으로 줄이려고 시도한 사건을 말한다.
여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국회의장 측 변론을 맡은 강훈 변호사는 “다수자인 여당과 소수자인 야당은 대화로 합의를 도출해야 하지만 끝내 안 되면 다수결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여당은 수정안을 내며 마지막까지 노력한 뒤 본회의를 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어 강 변호사는 “부결은 과반수가 출석해 표결했는데도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한 것만을 말하므로 과반수가 출석하지 못했다면 의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라며 방송법 처리 당시 재투표가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또 여당측의 김치중 변호사는 대리투표에 대해 “청구인들은 추측만 할 뿐 입증을 못하고 있다. 청구인들이 대리투표라고 주장하는 정황은 그 당시 야당 의원들이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전자투표기기에 손을 댄 것이 남아 있는 것일 뿐”이라고 야당측이 제기한 투표조작 의혹을 반박했다.
이 처럼 양측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안에 대한 법조계의 견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헌법관련 법률전문가들이 방송법 폐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은 주목을 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헌재가 방송법 무효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재판관들이 6:3 또는 7:2로 방송법을 폐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한술 더 떠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이 방송법 폐지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방송법 헌재 판결 시선집중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치명적인 상처를 안을 수 밖에 없다.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미디어법 개정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 레임덕 현상까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거 참여정부 때도 헌재의 행정수도이전 위헌 판결이 정국을 뒤흔든 전례가 있어 현 여당에 큰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얼마 전 헌재 재판관들 사이에서 폐지론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적 있다”며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한 인사가 헌재 재판관들을 만나고 다니며 의견을 물었더니 6:3이 가장 유력하고 최악의 경우 7:2로 방송법 무효화를 주장하는 야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헌재 재판관들을 면담했다는 변호사와 전화통화를 시도해 봤다. 이 인사는 “나는 헌재 재판관들을 만나고 다닌 적 없다. 그런 소문은 사실 무근”이라며 “다만 내가 개인적으로 6:3 정도의 결과로 무효화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는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오는 10월 초 2차 공개변론을 거쳐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헌재는 이달 22일 송두환 재판관 주재로 헌재 회의실에서 국회 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폐쇄회로(CCTV)와 각 방송사로부터 확보한 촬영 자료 등을 살펴보는 검증기일을 열기로 했다.
이번 헌재 소송은 민주당 국회의원 등 야당 의원 93명이 지난 7월 23일 “국회의장의 위법한 표결 처리 때문에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것에서 비롯됐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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