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탱크들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포격을 가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건물들은 무너지고 거리는 온통 총성과 공포로 가득 찼다. 열흘전인 1956년 10월 23일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헝가리 반소 민주화 봉기. 시위가 헝가리 전역으로 번지자 소련은 천여대의 탱크를 앞세워 무력진압을 단행했다. 헝가리 국민들의 시위도 격렬했지만 소련군의 무력진압으로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소련군의 공격으로 만여명에 달하는 헝가리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3만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반소 민주화봉기가 진압된 뒤 헝가리에는 소련의 지지를 받는 카다르 정권이 들어섰다.
1936년 11월 5일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부룬디"
종족간 대량학살의 어두운 그림자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보름전에 발생한 반정부 군사 쿠데타는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 쿠데타로 은다다예 대통령이 쿠데타군에 의해 처형됐고 5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인구의 5분의 1인 백만명이 이웃나라로 탈출했다. 부룬디는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후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다섯달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후투족 출신의 은다다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후투족의 승리는 투치족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마침내 투치족의 공수부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후투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정정불안에 시달리며 부룬디 국민들은 대량학살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1917년 11월 7일 "러시아 혁명 발발"
20세기 세계사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 러시아 혁명. 1905년부터 시작된 러시아혁명의 불길이 1917년 이날 절정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조직인 볼셰비키의 지도를 받은 러시아의 노동자와 병사들은 평화·토지·빵을 요구하며 페테르부르크의 궁전을 공격했다. 볼셰비키는 몇 달전 차르 체제가 붕괴된 뒤 들어선 커렌스키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장악에 성공했다. 볼셰비키의 지도자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레닌은 뛰어난 조직력과 지도력으로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혁명임시정부인 소비예트 인민위원회의 의장으로 취임한 레닌은 밖으로는 제 1차 세계대전의 교전국이었던 독일에 대해 휴전을 선포하고 안으로는 대대적인 사회주의 개혁정책을 폈다.레닌의 볼셰비키 정권은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과 내전을 치르는 등 혁명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제국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식민지의 민족해방운동을 부추기기도 했던 러시아 혁명. 결국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20세기 공산권과 자본주의권의 대립이라는 세계의 큰 틀을 민들어 냈다.
1965년 11월 8일 "베트남 총리 방한 "
베트남의 구엔 카오 키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키 총리는 정일권 국무총리의 영접을 받았다. 나흘동안의 일정으로 방한한 키총리는 방한 다음날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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