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17세기에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에서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며 그 모양까지 제시해 놓은 데서 출발한다. 그는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의 의견을 내놓았는데, 고종이 이를 묵살, 임금을 뜻하는 붉은 바탕에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백성을 뜻하는 흰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게 되었다.청나라의 마건충이 일본 국기를 닮았다고 비난하자 “바탕을 흰색으로 하고 붉은 용 그림으로 나타내되 발톱을 네 개로 하여 중국기의 다섯 용 발톱과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김홍집은 “그리기에 번잡하니 반홍반청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될 것”이라 하여 이로부터 4개월 뒤인 1883년 1월 27일 태극기가 국기로 제정되었다. 흔히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 가는 배 안에서 급히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잘못.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 " 공중 폭발"
1986년 1월 28일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73초만에 공중에서 폭발, 7명이 사망했다.이 로켓은 길이 37m, 너비 29m, 무게 85톤이며, 지상 185~1,110 km까지의 우주 궤도에 쏘아올려질 수 있다.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TV를 지켜보다 충격을 받았을 어린이들에게 “챌린저호 승무원들은 우리보다 앞서 미래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라 위로했고 각 TV 방송국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침울한 날’이라고 표현했다. 챌린저호의 제작비용은 약 10억 2,000만달러였다.
1992년 1월 29일 미야자와 " 일본총리, 정신대 문제 처음 사과 "
미야자와 일본총리는 1992년 1월 29일 참의원 연설에서 과거 2차대전중 한국여성들로 하여금 일본군인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한 일본군의 역할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미야자와총리는 이날 참의원 본회의에서 한 사회당의원의 질문에 이와같이 말하고 우리는 과거 일본군이 이 문제에 관여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미야자와총리가 완곡한 표현으로 “정신대”라고 알려진 한국여성들의 성적 노예화에 대해 의회에서 사과를 한 것이 처음이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 독일 수상 취임
히틀러(Adolf Hitler)는 독일의 정치가이고, 나치스의 당수이며, 제3제국의 총통이었던 인물이다.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의 세관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히틀러는 1919년 독일 노동당(나치스의 전신)에 입당하고(SS555), 1921년 당수에 취임, 당 지도의 전권을 잡는 등 정치활동을 벌였으며 이후 1933년 1월 30일 당시 대통령인 힌덴부르크에 의해 수상에 임명되었다. 이어 의회정치를 배제, 정당, 노동조합의 해산을 강행했다. 즉 나치스에 의한 일당 지배를 확립했다. 그 해 8월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는 총통이며 독일수상으로 그리고 당수, 정부수반, 국가원수의 지위를 겸하고, 또 국방군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군대로 부터의 충성선서도 받았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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