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황영조, 마라톤 제패하다
1992년 황영조, 마라톤 제패하다
  • 공문룡 칼럼니스트
  • 입력 2004-08-12 09:00
  • 승인 2004.08.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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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8·3 비상 조치)"

1972년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 15호, 8·3조치가 행해졌다. 주요 내용은 기업보유사채 지불 유예 및 금융기관 금리의 대폭 인하 등을 담고 있다.긴급명령 이전, 한국은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연 20대%의 고금리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기업은 고금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며 정부에 애로사항을 전달했다.박 대통령은 이에 8월 3일에 긴급조치를 내려 기업의 부채 중 사채를 나라에서 갚아주기로 했다. 이를 사채정리사업이라고 한다.

1993년 8월 7일 "93 대전 엑스포 개최"

1993년 이날부터 11월 7일까지 대전시 대덕연구단지 내에서 국제박람회(대전 엑스포)가 개최됐다. 대전엑스포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처음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공인의 전문박람회였다. 주제는 ‘새로운 도약의 길’,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었고, 공식 마스코트는 ‘꿈돌이’였다. 박람회 개최의 이유는 우리나라가 이룩한 발전성과를 돌아봄으로써 국민의 역량을 모아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또 그 동안 매우 빠르게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어, 이를 극복하고 다가오는 21세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대전엑스포에서는 당시 자기부상열차·태양열자동차 등의 첨단기술이 소개되었고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을 비롯하여 약 200개의 중소 기업이 참가하였으며, 미국 일본 등 108개국가가 참가하였으며 관람자 수는 약 1,400만 명에 이르렀다. 행사 폐막 후에 그 자리를 첨단기술과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을 높이는 교육의 장으로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과학을 주제로 하여 국내 유일의 테마파크(Theme park)로 조성했다.

1933년 8월 7일 "여류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인 박경원씨가 33년 이날 추락사했다.대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학교를 졸업했다. 1922년 대구 자혜의원 간호사가 되었고, 1925년 일본 도쿄 가마타 자동차학교를 거쳐 1926년 가마타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3등 비행사가 됐다. 1928년 도쿄 비행 경기대회에서 3등을 하여, 2등 비행사자격증을 받았다. 일본 우전공항을 이륙하여 모국인 한국으로 비행중 일본 현악산에서 추락사했다.

1975년 8월 7일 "장준하, 등산중 의문의 추락사"

75년 8월 7일 장준하 선생이 등산중 의문의 추락사 했다.평북 의주 출신인 장 선생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후인 1953년 종합교양지 ‘사상계’를 창간하여 사장이 되었으며, 1967년 정계에 들어가 그해 제7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고 ‘사상계’사장으로 복귀하였으며, 1973년 민주통일당최고위원이 되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을 통하여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섰고, 범민주세력의 통합에 힘썼으나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1962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으며, 대표저서로는 <돌베개>가 있다.

1992년 8월 9일 "황영조,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

92년 제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가 우승했다. 황영조는 손기정옹의 마라톤 우승 이후 56년 만에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몬주익 경기장에 골인, 일제치하에서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줬다. 특히 올림픽 마라톤사에서 아시아권 선수로서는 손기정과 황영조 둘만이 우승을 차지해 그 가치가 더했다. 그의 기록은 2시간 13분 23초. 황씨는 경기 후 “경기 도중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낄 때면 달리는 자동차에라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고향 삼척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내 안정을 찾고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공문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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