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층 결집, 대선승리 의식한 정치적 발언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목전에 두고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 주)이 FTA를 연기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힐러리는 최근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 ·미 FTA를 포함한 새로운 FTA 체결을 늦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힐러리 복병을 만난 것이다.
힐러리가 FTA 연기를 주장한 근거는 이렇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혜택은 부유층에 돌아갔고 노동자들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다”는 것.
힐러리는 그러면서 “NAFTA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FTA 체결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됐다. 새 FTA는 한·미 FTA가 포함된다.
힐러리가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5년에도 반대 전력
2008년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인 포석이 깔려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FTA로 미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 차있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그가 FTA를 반대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5년 미·중자유무역협정(CAFTA)도 그는 반대했다.
힐러리는 또 지난 6월 미국의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 노동자 관계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한·미 FTA는 본질적으로 불공정하기 때문에 비준에 반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째든 힐러리가 FTA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힐러리는 이날 인터뷰에서 20세기의 무역은 미국과 미국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었지만 글로벌경제시대에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며 21세기 무역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질 때까지 새 FTA 체결을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지난 4월 타결됐다. 한국은 비준 안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제출돼있는 상태고 미국은 내년 봄 표결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힐러리 발언으로 비준이 예정대로 될지 두고 봐야 한다. 힐러리가 관심을 끌기 위해 단순하게 한번 한 말이라면 비준에 별 문제가 없겠지만 FTA를 정치에 이용하려 할 경우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혀야 한다.
힐러리 발언이 관심을 끄는 것은 한·미 FTA의 수정이나 보완이 아니라 FTA 전반에 걸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힐러리가 대선주자가 되고, 민주당이 FTA 재검토를 당론으로 정하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경우 어렵게 타결된 한·미 FTA 비준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자칫 원점으로 되돌아갈 우려도 없지 않다.
FTA 연기 당론으로 정하면 골치
실제로 미 공화당원의 60% 가량이 자유무역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는 여론조사가 있었던 차에 이번엔 민주당의 힐러리가 공개적으로 FTA 재평가와 연기를 요구한 것은 FTA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이다.
특히 힐러리가 FTA 연기를 공약으로 내걸기라도 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힐러리와 민주당의 입김이 작용해 연기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일 비준이 연기된다면 그것은 연기로 끝나지 않는다. 단순한 연기의 단계를 넘어 이미 타결된 내용을 ‘뒤집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미 의원들은 자동차와 쇠고기협상이 미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시장을 완전 열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한국은 바위로 계란치기 식의 싸움에서 미국 보다 유리하게 FTA 협상을 마무리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를 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한·미 FTA가 타결된 지 6개월이 되었는데도 미 의회에서는 소관 상임위원회를 제외한 많은 의원들이 FTA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내용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반대 하고 있다는 게 워싱턴 주재 한국 경제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FTA 체결내용은 반드시 의회 비준을 거쳐야 하는데 막강한 이익단체이면서 로비단체인 자동차 산업계나 축산업자는 의원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로비를 하고 정치자금을 대면서 의원들을 움직이고 정부 정책을 바꾸기도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페루 파나마 컬럼비아 등 4개국과 FTA 협상을 마무리하고 의회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페루와 파나마와의 FTA는 연내 비준될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컬럼비아는 연내 비준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힐러리는 누구?
미국최초 여성대통령 꿈꾸는 퍼스트레이디
올해 나이 50살로 미국의 첫 번째 여성대통령을 꿈꾸는 여걸이다. 1965년 웨슬리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1973년 예일대법학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75년 클린턴과 결혼했다. 1991년엔 미국의 가장 ‘힘 있는 변호사’ 100인에 선정됐다.
1972년 조지 맥거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0년 11월 민주당 뉴욕 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는 퍼스트레이디로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1984년 미 아칸소 주의 ‘올해의 여성’, ‘올해의 어머니 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남편 클린턴 대통령과 여비서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잘 이겨냈다. 여자로서 가장 참기 힘든 일을 지혜와 슬기로 극복하고 이제 대권을 꿈꾸고 있다.
힐러리는 자녀교육 등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교육지침서인 <집밖에서 더 잘 크는 아이들>,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 세트>(2권) 등의 저서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힐러리가 집권하면 어떻게 되나?
2010년까지 늦춰질 가능성 있다
한ㆍ미 FTA는 2010년까지 비준이 늦추어질 가능성이 크다. 힐러리가 선거공약으로 FTA 연기를 내걸고 당선된다면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 비준을 미룬다고 해서 미국이 크게 손해나는 것도 없다는 점도 이유라면 이유다.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시장과 쇠고기시장, 각종 서비스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지금도 상당부분 개방돼 있는 게 사실이다. 단지 어느 정도 개방돼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힐러리가 정권을 잡는다면 3가지의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아예 한ㆍ미 FTA를 백지화 시키는 것이다. 힐러리는 타결된 내용이 “기본적으로 불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둘째는 비준을 몇 년간 미루는 것이다. 이는 의회 분위기와 미국 내 각종 이권단체를 생각해서다.
세 번째는 다시 협상을 해서 미국에 더 유리하게 결판을 내는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가 우리나라에 가장 불리하고 미국엔 가장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어느 게 채택될지는 민주당의 전반적 분위기, 힐러리의 집권 여부 등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한ㆍ미 FTA에 대한 의회분위기는 더 느슨해지고, 자동차 업계와 양축업자 등의 로비는 더 강렬해 질 것이다. 모두가 우리나라에겐 불리한 것들이다.
만일 한ㆍ미 FTA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지루한 싸움을 다시 해야 한다.
그럴 경우 협상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정부와 의회, 각종 이권단체와 압력단체가 미 행정부와 의회를 총 공격할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와 중국, 아세안 등 다른 나라와 FTA를 맺어야 하는데 이런 FTA 일정이 모두 뒤틀릴 우려가 있다. 이들이 미국과 같은 조치를 요구할 게 뻔한 까닭이다.
정부도 협상준비를 다시 해야 하므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지금 수준은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FTA 반대론자들의 비난이 엄청날 것이다.
이런 우려가 있긴 하나 힐러리가 막상 대통령이 되면 지금이 껄끄러운 한·미 관계를 재정립하는 차원에서 FTA 내용을 수정, 비준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국가 간 합의 내용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에선 힐러리가 소신 있는 정치인이지만 무대포로 일을 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통령의 아내로, 어머니로, 변호사로, 약자를 돕는 사람으로, 정치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뛰어난 분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ㆍ미 FTA의 주요 내용
쌀시장 개방은 아직도‘뜨거운 감자’
지난 4월 타결된 한ㆍ미 FTA는 돌맹이로 바위를 깬 싸움이었다. 약자와 강자 싸움이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섬유분야에서 이득을 챙겼고 미국은 쇠고기와 농산물, 서비스 등에서 우세한 협상을 했다.
우리 정부가 가장 신경을 썼던 쌀 문제는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빠른 시일 안에 쌀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이다. 한ㆍ미 FTA가 깔끔하게 마무리 되려면 쌀시장 개방문제가 매듭지어져야 한다.
자동차분야에서 미국은 한국산자동차와 자동차관련 부품에 물리는 관세 2.5%를 당장 없애고 우리나라는 수입차에 따라다니는 자동차세 8%를 폐지하며 자동차 보유세를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섬유분야에선 평균 13%에 달하는 미국 관세가 5년 내 폐지되도록 했다. 금융은 세이프가드(Safe Guard)를 도입, 외환위기 등 긴급한 상황이 있을 때 자금의 해외유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도록 했다.
개성공단에서 만드는 제품도 한국산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수입쇠고기에 대해 부과되는 관세 15%를 15년 내 없애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늘게 된다. 농산물시장은 미국 요구가 많이 관철됐다.
의약품은 저작권보호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난다. 법률시장은 협정발효 뒤 1단계로 미국 로펌의 국내 사무소개설이 허용되도록 돼있다.
정우택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