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자산 무려 1조5천억 달러
헤지펀드(Hedge Fund : 국제 증권 및 외환시장에 투자해 단기이익을 누리는 민간투자기금), 말만 들어도 금융시장을 교란시키고 막대한 수익만 챙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헤지펀드는 늘 경계 대상이다. 경영권 싸움을 벌이고 있거나 대주주의 지분이 약한 기업, 수익이 나면서도 운영이 엉성한 기업은 늘 헤지펀드 공격 대상이 된다.
실제로 헤지펀드는 엄청난 자금력과 운용노하우를 동원, 기업을 긴장시킨다. 때론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기까지 한다.
구미가 당기는 기업이 있으면 가차 없이 주식지분을 사들여 경영참여를 요구하기도 하고 고율의 배당을 챙긴다. 활동 중인 헤지펀드의 최고수는 미국의 조지 소로스.
헤지펀드 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세계적으로 헤지펀드 수는 9000여 개. 운용자산은 1조 5000억 달러로 우리 돈으로 따져 1500조 원에 이른다. 10년 전인 1995년보다 각각 3.2배, 15.5배가 는 것이다.
헤지펀드는 세력을 급속히 확장,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연평균 15% 이상 늘어 2009년이 되면 자산이 2조 달러(우리 돈 2000조 원)으로, 2013년엔 4조 달러(4000조 원)로 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헤지펀드가 커지는 것은 2000년 이후 세계적인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전통적인 금융상품 수익이 줄면서 위험성이 있기는 하나 수익이 높은 헤지펀드가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규모는 2005년 말 44조7000억 달러, 세계 채권시장 규모는 2004년 말 현재 44조5000억 달러, 뮤추얼펀드는 2003년 말을 기준으로 8조9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KIEP가 밝혔다.
2013년엔 4천조원 예상
헤지펀드는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보다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규모보다 영향력이 너무 큰 것이다.
투기성 헤지펀드가 들어오면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피해도 막대하다.
아시아시장의 헤지펀드 유입은 2003년부터 급격히 늘었다. 2006년 말 현재 아시아에서 활동 중인 헤지펀드의 수는 1122개, 운
용자산은 1335억 달러나 된다.
세계 헤지펀드시장에서 아시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에 비해 펀드 수로는 2.8배, 자산은 3.3배 늘어났다.
헤지펀드가 아시아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지금까지의 주요 투자처인 미국과 유럽에서 경쟁이 치열해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국, 인도 등 아시아 나라들은 높은 수익과 안정성이 확보 된다. 또 헤지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뀌고 있는 점도 국제헤지펀드자금이 아시아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다.
2007년 4월 현재 아시아 헤지펀드 운용자산 중 한국의 비중은 0.2%로 매우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SK가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고통을 받은 경험이 있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헤지펀드 순기능과 역기능
헤지펀드엔 무슨 기능이 있을까.
골치 덩어리 같지만 분명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순기능은 헤지펀드가 시장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유동성 공급자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또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인수나 투자를 통해 신용경색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헤지펀드는 기업의 구조조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수를 통해 군살을 뺀 뒤 다시 시장에 내놓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와 관련, 헤지펀드의 유동성 공급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헤지펀드는 금융기법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역할도 한다. 수익률을 높이고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상품과 앞서가는 투자기법을 개발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금융시장 발전에 큰 도움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헤지펀드가 순기능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명성이 떨어지고 법률적 규제를 받지 않아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행태가 많다.
그러다보니 금융시스템의 안전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을 방해한다는 얘기다.
한 예로 1997년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왔을 때 헤지펀드의 급격한 자본 이탈로 한국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올해 초 태국 주식시장에선 대규모 자금이탈이 있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헤지펀드의 짓으로 여겨진다.
헤지펀드는 단기투자를 통한 이익극대화를 위해 무리한 구조조정과 고율배당, 유상증자 등으로 기업성장에 장해가 될 때가 많다.
최근엔 인수 합병(M&A) 위협을 통해 안정적인 기업운영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는 속성상 기대수익률이 큰 시장에 투자를 늘린다.
그 과정에서 많은 헤지펀드가 신흥시장이나 원자재 등 같은 시장에 일시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크다.
이 경우 헤지펀드의 시장이탈이 동시다발로 생기면 유동성에 큰 위기를 불러오기도 한다.
따라서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헤지펀드의 투자행태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손해를 덜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헤지펀드 현황
사모펀드 유형 1개에 불과
우리나라는 헤지펀드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은 헤지펀드 진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됐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간접투자자산운용법(간투법)이 허용하고 있는 사모펀드 유형은 사모주식펀드(PEF) 1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간투법 3조엔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르지 않고는 간접투자를 업으로 해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제도권 외 사적합의에 따른 펀드설립을 금하고 있다. 또 펀드는 반드시 등록된 자산운용사가 운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권오규 부총리가 2007년 5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 뒤 헤지펀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헤지펀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권 부총리는 헤지펀드를 허용하면 헤지펀드의 투기적 성격으로 금융시장 불안을 불어올 우려가 있지만 투자자에게 새 투자기회를 주고 금융기법 발전을 촉진하는 등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KIEP는 금융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자산운용의 선진화가 꼭 필요하다고 밝히고 이를 위해 각종 선진금융기법이 사용되는 헤지펀드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금융허브전략에서 우리보다 앞선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헤지펀드 유치에 나서고 헤지펀드설립에 관한 진입장벽을 없앤 점을 들어 우리도 헤지펀드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각국 헤지펀드 적극 규제
부유층서 중산층 이동, 피해 확산
헤지펀드는 각국으로부터 규제 대상으로 낙인 찍혔다.
자산규모가 1995년 970억 달러에서 2006년 1조5000억 달러로 급성장하는 것도 스스로 규제를 불렀다고 할 수 있다. 헤지펀드가 너무 커질 경우 정상적인 경제운용에 지장을 준다는 게 규제 이유이다.
1988년 롱텀캐피탈(Long Term Capital Management) 스캔들도 헤지펀드 규제를 불러온 이유 중 하나이다.
LTCM스캔들은 지나친 레버리지투자로 큰 손해가 생겨 금융시스템 안정에 치명상을 입힌 것을 말한다.
헤지펀드는 전통적으로 부유층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중산층으로 저변이 확대되면서 위험투자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일반투자자들이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아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헤지펀드의 단기성 투자가 금융시장 규모가 작은 신흥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점도 규제를 부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문제점으로 미국 FRB는 헤지펀드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헤지펀드 거래금융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를 가장 강력하게 하고 있다. 새로 바뀐 투자자문법에 따라 헤지펀드매니저들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USEC)에 등록해야 한다.
영국은 2005년 개인의 헤지펀드를 허용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고 자국의 펀드산업을 육성해 더블린, 룩셈부르크 등 다른 금융허브와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나라는 2006년 7월 현재의 헤지펀드 규제에 만족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시장조작, 자산평가 조작, 투자자 처우 차별화 등 헤지펀드의 불법행위를 계속 조사하겠다고 밝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헤지펀드의 단기투자행태에 제한을 두고 있다. 프랑스 상법엔 기업이 정관을 통해 주주들에게 차등의결권을 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각 기업들은 정관에 따라 2~4년 이상 주식을 가진 장기주주들에게만 보유주식에 대해 1주 2의결권을 주고 있다.
독일연방은행은 2006년 시장참가자들이 스스로 헤지펀드의 위험특성을 등급화하는 등 자체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독일기업에 대한 헤지펀드 영향력 확대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자 2006년 4월 대주주 지분율이 3%를 넘는 경우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 유럽연합(EU)의 5% 보다 훨씬 강화된 기준이다.
일본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펀드취급업자들에게 의무적으로 등록토록 했다. 최근엔 은행을 통한 간접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
헤지펀드에 대한 금융기관의 자금제공 내용도 감시, 간접적으로 헤지펀드 실태를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펀드에 대해선 규제를 오히려 완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달리 헤지펀드를 활성화 시키는 나라도 있다. 홍콩은 2002년 헤지펀드의 소매판매를 허용했다.
자국의 헤지펀드산업이 싱가포르보다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보고 최근 적극적인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연구원측은 밝혔다.
싱가포르증권거래소는 2006년 7월 20개의 헤지펀드를 상장시키고 헤지펀드운용사를 더 많이 끌어들여 관련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더블린’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각오다.
케이맨통화청(CIMA)은 지난해 8월 헤지펀드에 대한 보다 좋은 정보 획득을 위해 헤지펀드가 제공하는 전자공시사항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케이맨은 쿠바 남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조세피난처로 유명하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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