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달러가 하늘을 찌른다
오일 달러가 하늘을 찌른다
  • 정우택 편집위원 
  • 입력 2007-09-04 09:15
  • 승인 2007.09.04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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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달러, 금융기관·건물·기업 등 인수 위력 과시

‘땅속의 석유가 마르지 않는 한 오일 달러(Oil Dollar)도 마르지 않는다.’
최근 들어 오일 달러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위력이 ‘커진다’는 말보다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다. 석유를 팔아 생긴 막대한 돈으로 미국 등 세계에 투자되고 있는 오일 달러. 건물이든 기업이든 사들일 수 있는 것은 다 사들이고, 투자대상이 있으면 달러를 쏟아 넣는다. 그런가 하면 중동 국가들이 막대한 오일 달러를 이용해 도시개발과 경제건설,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랜드마크(Landmark)’ 빌딩을 정신없이 짓고 있다. 오일 달러를 운용하는 중동 국가는 돈에 관한한 걱정이 없다. 땅속에 묻혀 있는 기름이 모두 달러이기 때문이다.


못사는 나라의 대명사로 불리던 중동 국가들이 이젠 글로벌 투자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등 서방 자본의 원조를 기대했던 중동 국가들은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의 핵심 산업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있다. 말하자면 국제시장에서 M&A(기업합병)와 투자의 큰 손으로 떠오른 것이다. 아무도 오일 달러를 당해낼 장사가 없다.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특집기사를 통해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시리아 등 중동 국가들이 산업다각화와 외국인 투자유치, 과감한 해외투자 등을 통해 글로벌투자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투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직접 나가 무차별적으로 투자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7년 치 예산 벌어

신문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중동 국가들이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돈은 1조5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500조 원에 이른다.

1500조 원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는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지 우리나라의 한해 예산이 2백조 원이라고 생각하면 7년 치 예산과 맞먹는다.

최근 3년간 중동 국가들은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줄잡아 5% 이상의 연간 성장률을 과시했다. 이는 1998년~2002년 중동 국가들의 평균 성장률 3.7%보다 높은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가 11%의 고도성장을 나타냈다. 바레인이 9%, 걸프협력회의(GCC)가 7.8% 성장했다.

중동 국가들이 운용중인 국부펀드 규모만 봐도 오일 달러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아랍 에미리트는 투자회사를 통해 8천7백50억 달러를 굴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다양한 형태로 3천억 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쿠웨이트가 2천5백억 달러, 브루나이가 3백억 달러의 자금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 자금은 거의 모두 오일 달러에 재원의 바탕을 두고 있다. 기름이 없다면
마련할 수 없는 큰돈이다.

중동 투자자들은 세계 경제의 요람인 미국 맨해튼의 호텔은 말할 것 없고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아르헨티나, 영국의 부동산까지 사들일 만큼 세계를 움직이는 ‘큰 손’이 됐다.

지난 3월엔 카타르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쿠웨이트 국영 이동통신사 주식 지분을 51% 인수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몰려드는 두바이는 금융허브로 도약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멤버가 됐다.


두바이 평균 성장률 16%

이 뿐이 아니다. 이집트, 요르단, 리비아, 시리아, 모로코 등도 다국적 기업 출신의 젊은 인력을 각료로 기용해 글로벌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다.

공공부문의 민영화도 강도 높게 추진 중이다. 지금처럼 보호주의 중심으로 나라를 이끌어서는 국민들의 부와 복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동 국가에 대한 외국인들의 직접투자(FDI)는 1백90억 달러나 된다. 이 지역에 대한 FDI는 △2001년 40억 달러 △2003년의 80억 달러 △2005년의 1백35억 달러로 매년 급격히 늘고 있다. 터키가 유치한 FDI까지 합치면 지난해 중동 국가들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금액은 4백억 달러에 가깝다.

중동지역에 외국인 투자가 쏠리면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시티그룹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들도 덩달아 중동 쪽 영업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땅속의 석유가 마르지 않는 한 달러도 마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석유가 마르지 않으면 돈도 마르지 않는다’

오일 달러는 중동 국가들로 하여금 인재육성에도 적극 나서게 한다.

전국 종합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카타르는 미국 내 상위 5개 대학의 분교를 자국에 끌어들이는 교육 특구 건설에 나서고 있을 정도다.

사우디아리비아는 31억 달러가 들어가는 교육발전계획안을 만들었다. 압둘라국왕이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오일 달러는 세계의 기업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최근에는 미국의 도박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두바이의 국부펀드인 두바이월드가 MGM미라지 지분 9.5%를 인수했다. MGM미라지는 호텔 및 카지노 운영업체.

두바이월드는 MGM미라지가 라스베이거스에 추진 중인 시티센터 주식 지분 절반을 5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해 화제가 되었다.

시티센터 프로젝트는 호텔과 콘도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두바이월드는 직원 5만 명의 거대 해외투자 회사. 세계 1백 개 도시에서 투자활동을 하고 있다.

오일 달러의 힘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는 국영회사를 통해 뉴욕 등 6개 항만의 운영권 인수를 시도했다. 미국은 외국인 투자 검토위원회를 열어 이를 중단시킨 일이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8천7백5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오일 달러를 활용, 외국 기업들을 무차별 사들이려는 계획에 제동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뉴욕 항만 운영권이 중동 국가로 넘어갈 경우 자존심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지만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 미국, 유럽연합(EU) 등에서 국부펀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바이의 경우 2002~2005년 국내 총생산(GDP) 평균 성장률은 13%였다. 2005~2006년은 16%였다.

두바이에는 2006년 말을 기준으로 306개의 호텔에 3만1508개의 객실이 있다. 객실 점유율이 84.8%나 된다. 2001년의 60.9%, 2004년의 81.0%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오일 달러에 힘입어 관광개발과 각종 인프라 구축사업을 벌이자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중동 국가들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인구 문제를 고려한 포석이 함께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중동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3억 명이 20세 이하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본격 일자리를 갖기 시작하는 2020년쯤이면 적어도 8000만~1억 명이 일할 새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이들이 실업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중동 국가들은 한해 6~7%의 경제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오일 달러를 들고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오일달러
무더기 돈 1조 7천억원 증시 유입


중동 국가들의 오일 달러가 우리나라 증권시장에도 대거 흘러 들어오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말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3국에서 들어온 뭉치 돈은 1조7천9백84억 원에 이른다. 이 돈은 주식시장에 투자됐다.

이들 3개 국가는 2005년 5천6백43억 원을 투자했다. 2006년에는 투자금액이 1조1백46억 원으로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올 들어서는 7월을 기준으로 1조8천억 원에 가깝다. 중동 국가가 오일 달러를 이용한 돈벌이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증거다.

이들이 사들이는 주식 종목은 주로 중동 내수 업종과 IT, 조선, 에너지 등에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국가들의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투자도 물꼬가 트였다. 경기도는 아랍에미리트의 Interg lobe General Trading LLC로부터 5억 달러를 투자키로 하는 양해각서를 주고받았다. LLC사는 경기지역의 호텔, 리조트, 골프장 등 관광시설에 투자할 예정이다.

충청남도도 아랍에미리트의 IPIC사로부터 22억 달러의 투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 투자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IPIC사는 세계 각국에 1백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충남도는 또 스페인 제2의 석유그룹인 CEPSA사로부터 11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오일 달러가 국내에 들어와 증권이나 부동산개발 등에 직접 투자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기업들이 중동 국가들에 대한 수출과 건설수주 활동을 통해 오일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는 더 많다.

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수주는 사상 최대인 1백65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는 2백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해외건설이 활기를 띠는 것은 고유가로 중동지역의 플랜트 발주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은 플랜트와 같은 고부가가치 우량공사가 많아 오일 달러 벌이에 큰 도움이 된다.

이라크에서는 최근 현대건설, 경남기업, 성원건설 등 10여 개 국내 건설업체가 23조원 규모의 아르빌 재건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참여 한다면 석유의 보고인 이라크와 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오일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

배럴당 7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로 국내 기업들이 고통 받고 있지만 중동 국가에 진출해 있는 우리 건설업체에게는 고유가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중동 국가를 대상으로 수출활동을 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GS건설은 올해 초 12억 달러의 오만 아로마틱스 플랜트를 수주했다. 대림산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억 달러의 폴리카보네이트 공장 건설공사를 따냈다.

이와 함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신도시 개발 물량이 늘고 있어 이 지역 오일 달러도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림건설의 경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30억 달러 규모의 복합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현대건설도 이 지역 석유개발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카자흐스탄은 1997년부터 추진된 아스타나 행정수도 건설 사업에만 3백억 달러(28조원)가 투자됐다.

또 경제 수도인 알마티 부근에는 고려인 기업이 5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대규모 사업도 결국은 오일 달러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만일 기름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같은 계획은 물거품에 불과할 것이다.

오일 달러는 중동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프리카도 우리 기업들의 손길이 크게 미치고 있다. 대우건설은 나이지리아에서만 33억 달러를 수주, 공사를 펼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최근 나이지리아에서 공사비 1백억 달러 규모의 철도건설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오일 달러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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