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DJ노믹스 명암
‘국민의 정부’ DJ노믹스 명암
  • 강필성 기자
  • 입력 2009-08-25 09:31
  • 승인 2009.08.25 09:31
  • 호수 800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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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경제 위기를 경제강국으로…
외환위기 당시 헐값 매각 논란을 빚은 SC제일은행. 그 뒤로 현대, 대우 LG그룹. 이들은 ‘빅딜’로 인해 일부 사업을 잃거나 공중분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의 경제정책을 가리켜 ‘DJ노믹스’라고 말한다. 그는 IMF외환위기 상황에서 대령령에 당선된 뒤 자신의 경제이론인 'DJ노믹스'를 풀어 놓은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이 해체되거나 분리되는 최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벤처를 일으켜 세운다. 이것이 기틀이 되어 대한민국이 통신강국이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만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재계 대수술을 짚어봤다.

재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별한 인물이다. 그가 1997년 취임할 당시 국내 경제는 외환위기로 인해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취임 초기부터 과제가 산적한 김 전 대통령을 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재벌그룹의 병폐라고 불린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대기업들의 문어발 확장 등을 어떻게 ‘수술’하느냐가 그의 정책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과 긴축재정정책을 요구받는 상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재계와 깊은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기부터 강력한 구조조정

김 전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대수술을 집행한 곳은 금융권이었다.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기 전날인 98년 12월 2일에 9개 종금사에 대한 영업정지명령이 내려졌다. 2000년 4월엔 부실덩어리 투신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고 12월엔 예보를 통해 5개 부실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와 동시에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한 것은 바로 해외 투자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수많은 외국 자본이 들어왔는데 이는 김 전 대통령 미국 망명시절을 통해 알게 된 인맥을 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거대 투기자본의 이익을 보장해야 했고 그 결과 일부 은행과 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희생도 감수해야 했다. 국부유출 논쟁도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대표적으로 8조4000억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은 외국계 펀드 뉴 브릿지캐피탈에 5000억원이라는 헐값으로 매각됐다. 이 사건은 나아가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헐값 매각 의혹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현재 제일은행은 SC그룹으로 재매각 돼 지금의 SC제일은행이 됐다. 한미은행은 경기은행을 흡수한 뒤 외국계 씨티은행으로 매각돼, 오늘의 한국씨티은행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금융권의 대수술은 대형 은행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은행은 M&A를 거듭했다. 1999년 1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등기 됐으며 평화은행이 2001년 4월 한빛은행과 합병해 우리금융지주가 탄생했다. 이때 광주은행과 경남은행은 공적자금이 투입돼 우리금융지주 계열사로 편입이 됐다.

또 1999년 7월에 조흥은행과 강원은행, 충북은행이 합병됐으며 후일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이 됐다. 지금의 하나은행은 충청은행과 보람은행, 후일 서울은행과 뭉쳐졌다. 국민은행은 1998년 6월 대동은행을, 1999년 1월에는 장기신용은행을 편입시켰다. 주택은행은 동남은행을 합병한 뒤 다시 국민은행과 합병돼 오늘의 국민은행이 됐다.

재벌그룹의 구조조정도 뒤따랐다. 김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재벌그룹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빅딜정책부터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1월 13일 5대 재벌 총수와 만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원칙에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재벌그룹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재벌의 구조조정은 과잉투자 해소, 기업지배구조 개혁, 재벌기업의 국민경제 지배체제 개혁의 세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른바 ‘5대 그룹 빅딜’과 워크아웃, 부채비율 축소 등을 요구 등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LG그룹은 현대그룹과 신경전 끝에 LG전자 반도체 부분을 내놨다. 하지만 이를 인수한 현대전자는 결국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다 현대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단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오늘날 하이닉스반도채로 탈바꿈 했지만 여전히 주인은 찾지 못한 상태이다. 이를 두고 LG그룹 측에서는 아직도 ‘빅딜’에 편치 못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후문이다.

각각 보유하고 있던 전자와 자동차를 한 쪽에 몰아주는 것을 골자로 했던 삼성과 대우간 빅딜도 실패했다.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 신청을 거쳐 결국 프랑스 르노로 넘어갔고 대우는 이듬해 결국 그룹이 통째로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GM에 인수됐다. 결국 빅딜에 참여했던 그룹이 줄줄이 계열사를 잃거나 부도나게 되면서 논란만 가중됐다.

당시 사라진 재벌그룹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1998년 당시 30대 그룹 절반 가까운 재벌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우그룹을 비롯해 쌍용, 동아, 고합, 아남, 진로, 해태, 신호, 뉴코아 등의 그룹이 계열사 매각이나 정리되면서 공중분해 됐다.


외환위기 극복과 경제성장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 때문일까. 2001년 IMF에서 빌린 195억달러 전액을 조기 상환함으로써 4년만에 IMF 관리체계를 졸업했다.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도 기업분할과 인수합병 고용조정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여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폐쇄적인 황제경영과 문어발 확장에 대해 상당부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것.

외환위기의 간접적인 원인이었던 과도한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지면서 기업체질이 단단해졌다. 오늘날의 경제성장은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상당부분 비롯됐다는 평가다.

한 경제전문가는 “저성장 기조 탈피 등 미완의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국가적인 재앙인 외환위기를 극복한 점만으로도 김대중 정권이 경제 측면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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