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오르는 주식은 지구상에 없다. 이제 파티를 끝내라!’
세계 증시가 언제 곤두박질 칠지에 온통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증시가 얼마나 더 오를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언제, 얼마나 떨어질지가 더 큰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검은 월요일이 될지, 검은 목요일이 될지, 아니면 검은 금요일이 될지에 투자자는 물론 정부 관계자와 증시 관계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만큼 세계증시 돌아가는 모습이 위험하다는 얘기다.
주가 대폭락이 가장 우려되는 나라는 중국. 중국 안에서 과열론이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나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로드리고 라토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번 버냉키 현 FRB 의장 등도 거들고 나섰다.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세계 주가 폭락 경고는 그냥 듣고 흘릴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큰 위험이 온다는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어야 한다.
우리 속담에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들 말을 빌리면 세계 ‘증시 파티’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언제까지 증시가 좋을 수만은 없다. 반드시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자칫 파티장이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를 보자.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위험 불감증’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증시 거품이 ‘심각한 충격’으로 돌아 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는 큰 이익을 낼 수 있지만 많은 투자자들은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익만 생각하고 투자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위험에 노출된다는 얘기다. 이익추구도 중요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FRB의 전 현직 의장
국제 금융시장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번 버냉키 현 FRB의장은 사모 펀드들의 파이낸싱에 심각한 리스크가 있다고 비판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최근 “항상 오르는 주식시장은 지구상에 없다”는 말로 중국 증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말 한 마디로 뉴욕 등 대부분의 세계 증시는 하락을 면치 못했다. 그린스펀은 20여년 가까이 FRB 의장으로 미국의 금융정책과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린스펀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위성컨퍼런스에서 “중국 증시가 위험하다”며 어느 시점에 반드시 ‘큰 폭락’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
했다.
그는 또 멕시코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글로벌 경제성장과 유동성이 정점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OECD(국제협력개발기구)
국제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중국 증시는 수출이나 기업의 이익감소로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의 이익 상승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데도 중국 증시는 지나치게 올라 큰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은행에서 대출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중국 경제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
지난 5월 중국 증권감독위원회가 모든 증권사와 펀드회사에 대해 주식을 사는 투자자들에게 위험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리도록 지시했다. 중국 당국이 얼마나 문제가 다급했으면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중국 당국은 또 모든 펀드에 대해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저우 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는 “중국 증시에 거품이 끼어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당국 책임자가 증시 상황을 공개적으로 우려한 것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피터 우플리 스위스 UBS 최고 경영자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은행들이 점점 리스크가 큰 대출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러다간 자칫 1990년 말 증시 버블 때와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말은 최근 사모펀드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고 있는 대형 투자은행을 겨냥해서 한 말로 보인다.
투자은행들이 펀드에 돈을 빌려주고 이익을 챙기다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음을 암시한 내용인 셈이다.
마크 파버 투자자
마크 파버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위험을 알리는 글을 실었다. 연초부터 거품 가능성을 주장해온 파버는 주식과 원부자재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며 자산 가격이 무턱대고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산 가격에 거품이 끼어있어 금리 상승 등의 계기가 있으면 이들 자산 가격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3~6개월 안에 신흥 시장의 주식을 팔고 미국이 단기 국채로 갈아타는 게 현명한 투자라고 충고했다.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 국채는 빛을 보지 못한다. 투자 이익이 주식보다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특히 낙폭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
1987년 미국의 블랙 먼데이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언, 닥터 둠(Dr. Doom)으로 통하는 파버는 마크파버라는 투자운용회사를 통해 3억 달러를 굴리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자산 버블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어 지금은 자산을 팔 때라고 주장, 관심을 끌었다.
앤서니 볼튼 펀드 매니저
30년 가까이 일했던 투자업계를 떠나면서 증시 폭락을 우려 했다. 그는 한 만찬에서 이제 값싼 주식을 찾기 어렵고, 리스크가 큰 주식과 작은 주식이 동시에 올라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주식에서 재미를 보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중국 증시 냉각기 맞나?
중국 증시는 지난주 떨어졌다. 상하이종합지수가 전날보다 3.77% 떨어진 4071.67에 마감했다고 이데일리가 보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거래하는 상하
이 B지수의 낙폭은 더 컸다. 상하이 B지수는 6.96% 내린 272.86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IMF와 FRB, OECD 등으로부터 주가 폭락의 위험성을 경고 받은 중국 당국이 증시를 냉각시키기 위해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긴축 일변도에서 벗어나 공급을 강화, 증시를 안정시킨다는 정책의 약발이 먹히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상하이증시에는 중국 최대 에너지기업인 페트로 차이나와 중국 내 자산 규모 2위인 중국건설은행 등 대형 업체들이 상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데일리는 전했다. 주식을 더 공급해 분위기를 식혀보자는 생각에서다.
이 매체에 따르면 우연인지 몰라도 해외투자 규제가 완화돼 중국 투자자들은 2007년 해외주식과 채권에 1백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고 JP모간이 밝혔다.
증시과열 긴급진단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나라도 증시과열을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국은행은 물론 증권사들도 마찬가지다. 너나 할 것 없이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는 국내 증시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4700억 원에 불과하던 신용융자금은 6월 26일 현재 6조 5000억 원에 이른다. 쉽게 말하면 증시에 들어와 있는 돈 가운데 6조원이 남의 돈인 셈이다.
이자도 내야하고 원금도 갚아야 할 돈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당장 큰일 나는 돈이다.
대우증권의 경우 자기자본이 2조 1200억 원인데 신용융자액이 1조 3000억 원을 넘는다.
돈을 많이 빌려줘서 이자도 많이 받고 주식 거래에 따른 수수료 수입도 올리겠지만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악재가 터져 주가가 폭락하면 돈을 빌린 투자자는 당연히 쪽박을 차게 된다. 게다가 돈을 빌려준 증권사들도 엄청난 손해를 봐야 한다.
이처럼 상황이 위험하게 돌아가자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은 상장기업 실적이나 경기회복 속도보다 증시가 짧은 시간에 가파르게 오른 면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최근의 증시 상승은 시중 뭉칫돈이 증시로 흘러든데 따른 것”이라며 부실이 생길 경우에 대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면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를 단계적으로 없앨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증시 상황이 부동산만큼이나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골치 덩어리가 부동산 시장을 잡는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분양가 상한제인데 이를 단계적으로 없앨 수 있다고 한 것은 아주 중요한 얘기다. 그냥 간단히 듣고 넘길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총액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3·4분기 중소기업에 대한 총액대출 한도를 2·4분기(8조원)보다 1조 5000억 원이 줄어든 6조 5000억 원으로 묶는다고 밝혔다. 어떻게든 시중의 돈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증권사도 이제 정신이 돌아왔다. 돈을 빌려주느라 정신없었으나 정부와 한은 등이 유동성 돈을 줄이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1조 3000억 원이나 빌려준 대우증권, 키움증권은 신용융자를 전면 중단했다. 대신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도 대출심사를 엄격히 할 움직임이다.
증권사의 신용융자에 대해 비판적인 한 전문가는 증권사들도 돈을 빌려주고 수입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되지 말고 증시를 건전하게 키우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신용거래 급등으로 단기간에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단지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 그 시기가 언제일지가 문제다.
국부펀드도 조심해라
미국은 신흥시장의 국부펀드에 대한 위험성도 경고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신흥경제국들이 넘치는 외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운영하는 ‘국부펀드’가 투명성 결여로 국제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음을 경고했다.
국부펀드는 1970년대 노르웨이, 러시아 등 산유국들이 오일머니를 효율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동과 아시아 등 신흥경제국들이 이 제도를 도입, 국제금융시장에서 큰손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 신문은 ‘클레이 로어리 국제담당 채무차관 직무대행이 미국 워싱턴에서 연설하며 이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특히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인 중국이 2천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운영할 방침인 것과 관련, 미국이 이들 펀드의 부작용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의 한 관리는 1년 전만 해도 국부펀드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한 것으로 신문은 보도했다.
존 테일러 전 국제담당 재무차관도 국부펀드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국부펀드는 이 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비전문가가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투명성도 떨어져 선진 금융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에서 볼 때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언제, 어떤 주식이, 어떻게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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