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에 파묻힌 아시아…
달러에 파묻힌 아시아…
  • 정우택 편집위원 
  • 입력 2007-06-11 15:41
  • 승인 2007.06.11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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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왜 이렇게 쌓이는 거야?”

아시아가 달러에 파묻혔다. 너무 많아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자고나면 중앙은행 금고에 쌓이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의 달러 보유 현황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2006년 말 아시아 각국의 외환보유고는 중국이 1조663억 달러로 단연 수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은 8954억 달러로 2위, 러시아 3038억 달러, 대만 2660억 달러, 한국 2390억 달러, 인도 1791억 달러, 싱가포르가 1368억 달러였다. 올 1.4분기를 기준으로 한 가장 최근의 통계는 중국이 1조2020억 달러,
러시아가 4022억 달러, 우리나라가 2428억 달러인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수십억 달러씩 불었다.


세계의 준비통화인 달러는 부족하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고통을 겪게 되지만 너무 많아도 처치 곤란이다.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달러의 ‘원 소유주’인 미국으로부터 환율인상 압박에도 시달린다.

미국은 최근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달러보유액이 지나치게 많다며 비판했다. 미 재무부 산하 레셀 그린과 톰 토거슨 국제담당 경제전문가는 ‘이머징마켓의 높은 외환보유고는 축복인가 부담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을 비롯해 대만, 한국, 러시아, 인도, 말레이시아 등 7개국이 지나친 외환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이들 국가가 미국 달러와 환율이 밀접하게 연결된 국가들이며 환율 유연성을 통제하려는 생각으로 외환보유를 늘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외환보유가 정말 심각하다. 이 나라의 회환보유고는 ▲1995년 935억 달러에 그쳤으나 ▲1997년 1398억 달러 ▲2000년 1655억 달러 ▲2002년 2864억 달
러 ▲2003년 4032억 달러 ▲2004년 6099억 달러 ▲2005년에는 8188억 달러로 급격히 늘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1조 달러를 넘은 것은 2006년으로 1조663억 달러나 됐다. 올해 1.4분기 외환보유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36% 늘었다. 1조2020억 달러로 증가한 것이다. 국민 1인당 보유액이 900달러나 된다.

외환보유고가 이처럼 느는 것은 연평균 600억 달러를 넘는 외국인 직접투자, 1000억 달러를 웃도는 무역흑자, 부동산 붐을 타고 흘러드는 핫 머니 등에서 비롯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 증시에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자본이 외환을 쌓이게 하는 주요인이다.

중국이 갖고 있는 1조2000억 달러는 2005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한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의 1년 GDP를 넘는 엄청난 액수다. 이는 중국의 6개월 치 GDP와도 맞먹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달러보유액이 매년 2000억 달러 이상 늘고 있어 3년 뒤인 2010년엔 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이 많은 달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외환보유고가 너무 늘자 중국은 마침내 투기자본인 미국 헤지펀드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주요 헤지펀드 중 하나인 ‘블랙스톤’에 3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가 투기자본에 투자하는 것은 이례적 일이다. 중국의 경우 달러가 너무 많은 데다 미국압력까지 겹쳐 궁여지책으로 헤지펀드에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외환보유고도 줄이면서 미국의 환율 절상 압력을 피해보자는 뜻에서다.

헤지펀드는 고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반대로 투자금을 몽땅 날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정부가 이런 투자방식을 택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엔 중국 안에서조차 외환보유고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있어야지만 외환보유고는 신기록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상황은 우리나라나 일본,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외환보유고는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외환보유 다변화 하라
달러화 비중 65%선 점점 낮아져, 유로화 등에도 관심둬야


최근 ‘외환보유액 다변화’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중앙은행에 쌓아둔 외국돈을 다변화하라는 뜻이다. 달러만 사들이지 말고 유로화나 엔화, 파운드화 등 세계 각국의 돈으로 고루 비치하는 것이다.

외환다변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지난해 말.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1조 달러를 넘으면서부터다.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를 전후해 러시아, 스위스, 태국, 뉴질랜드 등도 외환보유액 다변화를 시사했다. 특히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이 달러 비중 하락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다변화 얘기가 확 퍼졌다.

세계적으로 달러화 비중은 2001년 71%에서 2003년엔 66%로 떨어졌다. 2006년엔 달러화 비중이 65.4%였다. 달러화 비중은 65%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유로화는 25.4%이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4.2%, 일본 엔화가 3.3%였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선진국들은 대부분 달러를 좋아한다. 선진국의 달러 비율은 1999년 73.5%에서 2006년 72.8%로 큰 변화가 없다. 유로화는 16.1%에서 19.9%로 늘었다. 하지만 엔화는 6.7%에서 3.6%로 반 토막 났다.

개발도상국은 유로화를 많이 쌓아두고 있다. 개도국의 달러화 비율은 1999년 68.2%에서 2006년엔 59.8%로, 처음으로 60% 밑으로 떨어졌다. 이와 달리 유로화는 19.9%에서 29.6%로 껑충 뛰었다. 유럽연합(EU)시장이 커지면서 EU의 공식통화인 유로화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외환다변화는 달러와의 비중을 낮추고 유로화나 엔화, 파운드화 비중을 높이는 것으로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EU의 경제력이 튼실하기 때문이다.


준비통화는 언제부터 쓰였나?

지금은 달러가 세계의 화폐로, 준비통화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달러 이전에는 어느 통화가 준비통화로 사용되었을까. 골드만삭스 자료를 통해 알아보자.

최초의 준비통화는 BC(기원전) 5세기께 사용된 그리스 Darchman화였다. 이 통화는 그리스와 주변국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다. BC 5세기, 2500백년 전에도 지금의 달러와 같이 영향력 있는 돈이 국제적으로 쓰였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로마제국의 금화인 Aureus와 은화인 Denarius가 로마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사용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로마였기에 그들의 화폐가 많은 나라에서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AD 4세기부터는 700년 간 비잔틴제국의 Solidus화가 준비통화 역할을 했다. 그처럼 오래 준비통화로 쓰였다는 것은 비잔틴제국의 위세가 어땠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탈리아의 Genoin화, Fiorino화, Ducato화 등은 13~15세기 준비통화로 사용되었다. 이때는 이탈리아가 국제상업 중심이 되면서 이 나라 돈이 당연히 준비통화로 쓰였다. 이어 17세기엔 네덜란드가 세계교역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Guilder가 준비통화였다.

영국의 Pound화도 오랫동안 준비통화 역할을 했다. 1694년 영란은행이 설립되고 1700년대 들어 영국의 힘이 강해지면서 Pound화는 당연히 세계통화가 되었다. 영국은 1880년대 후반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 자리를 미국에 내주었으나 국제무역 결제와 상품 값 표시가 계속 Pound로 이뤄지면서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준비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의 달러는 1944년의 브레튼 우드협정 이후 오늘까지 준비통화로 쓰이고 있다. 달러가 언제까지 준비통화로 사용될 지는 미국의 힘에 달렸다. 미국의 정치·경제적 파워가 앞으로 수 백년 간다면 달러 입지도 그 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최대 적은 중국이다. 중국이 지금처럼 경제성장을 이어간다면 세계는 미국이 아닌 중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준비통화도 당연히 중국 위안화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시기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오지 않기를, 중국은 하루라도 빨리 오길 고대할 것이다.


아시아판 IMF 생긴다
한·중·일 등 10개국 유동성지원 공동선언문 채택

아시아에 달러가 넘치자 이를 활용한 가칭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이 구체화되고 있다. 세계를 상대로 한 IMF를 본 뜬 것이다. 한ㆍ중ㆍ일 3개국과 아세안 10개국은 최근 일본 교토에서 재무장관 모임을 갖고 AMF설립을 뼈대로 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 내용은 아세안+3개국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날 경우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선다는 것. 외환위기를 경험한 한국이나 외환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에는 피부에 와 닿는 기구가 아닐 수 없다. IMF의 쓰라린 고통을 기억하는 나라는 AMF가 필요함을 실감할 것이다.

AMF창설엔 약 800억 달러의 돈이 들어간다. AMF재원은 억지로 쥐어짜서 만드는 게 아니다. 이들 국가 중앙은행 금고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달러를 이용하는 게 특징이다. 넘쳐나는 달러의 사용처를 찾다보니 AMF가 떠오른 것이다.

세계 어느 지역, 어떤 기금도 이처럼 넘쳐나는 달러를 활용해서 만들지는 않는다. 우선 기금의 규모를 정하고 각 나라가 경제력 크기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따라 할당된 돈을 낸다. 이 경우 참여국들이 기금출연을 꺼리고 금액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시아 각국의 외환보유액은 지금의 반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은행금고에 달러를 쌓아놓고 있는 것보다 아시아 단일펀드를 만들어 어려운 나라도 지원하고 채권에 투자해 돈도 벌어보자는 생각이다.

AMF창설에도 걸림돌은 있다. 바로 돈이다.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일본이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중국은 1조2000억 달러, 일본도 9000여억 달러의 어마어마한 외환을 갖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AMF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경제에서 차지할 역할과 위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두 나라는 아무리 많은 달러를 출연해도 걱정 없는 나라다. 어떻게든 국내에 있는 달러를 밖으로 내보내고 써야하기 때문이다. 달러를 쓰는 게 국가를 돕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아시아에 엄청난 달러가 쌓이고 있고 이 달러를 주축으로 만든 AMF를 주도한다는 것은 곧 아시아 경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볼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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