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유대인<1>
# 미 부통령 ‘딕 체니(Dick Cheney)’
현 국내외 정세가 예사롭지 않다. 저 멀리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과 대립이 상시적인 가운데, 이스라엘의 대 레바논 전격 침공은 국제사회의 생생한 공분을 일으켰다. 또한 미국이 장악한 이라크 내에서는 연일 테러 정국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북핵 파문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의 혈맹관계에 급속한 균열이 가해지고 있는 형국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국제정세 진단 시각은 동서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자라는 인식하에 반미 중심축이 팽배해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 하나가 있으니 옥상옥 즉 미국 위에 군림할 뿐 아니라 세계 전반에 걸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다국적 초국적 지배세력에 대한 통찰 부재가 지구촌 흐름을 조망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분야에서 막강 위력을 과시하면서 독보적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소수민족 유대인에 대한 면밀한 미시적 조망이라 할 것이다. 이에 일요서울에서는 기획특집으로 ‘세계 속의 유대인’ 시리즈를 기획했다. 독자 제현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세상에 ‘부(副)’자가 앞에 붙는 자리는 통념적으로 ‘빛 좋은 개살구로’ 불린다. 분명 제2인자의 서열이건만 권력 앞에선 상징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제2대 미국 대통령 존 애덤스가 조지 워싱턴 밑에서 美國 최초이자 세계 유일의 부통령으로 재직할 때 부통령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가장 하찮은 직책”이라고 푸념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이 없는 만큼, 이 통설에서 단 하나의 예외적 인물이 있다. 과연 누구일까. 바로 그 영예의 주인공은 현 부시 행정부의 ‘딕 체니 부통령’이다.
“딕 체니는 미국 대통령제가 시작된 이래 최강의 부통령으로 사실상 공동 대통령에 가깝다”는 표현처럼 질시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현재 부시 대통령의 부친 되는 전 부시 대통령 때부터 최측근으로 보좌해온 인물인 체니 부통령은 정치 제1번지 ‘워싱턴 정가’의 대부로 불린다.
“파티나 좋아하고 퇴근 시간에만 조바심 내는 사람들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하는 지독한 일벌레인 체니! 34세의 최연소 대통령비서실장, 6선 하원 의원, 국방장관 등의 다채롭고 화려한 경력이 말해주듯 국정 장악 능력은 이미 입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할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부시는 간판이고 실제 일은 체니가 다한다”면서 “체니야말로 모든 의사결정에 관여한다고 말한다.
헌정 사상 어떤 부통령도 맡은 적이 없는 연방예산 검토위원회를 이끌며 대통령에 대한 보고 없이 각 부처 예산을 조정하는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 체니는 또한 독자적인 안보정책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요 각료들에게 가는 모든 안보 브리핑 내용을 입수해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9·11 사태 이후 미국 내 대테러 전담 부서로서 ‘국토안보부’의 신설 또한 그의 작품이다.
외교안보정책에 적극 관여하는 부통령도 체니가 초유의 사례이다. 현재 민감한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핵 문제는 물론 중국과 대만, 이라크 관련 중요 정책에 대한 모든 결정에 현 국무장관이자 이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앤드루 카드 백악관 수석 보좌관과 함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부친은 ‘하급공무원 출신 유대인’
딕 체니는 1942년 미국의 중서부 네브래스카 주의 링컨시에서 하급 공무원을 지낸 가난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던 체니는 인근 주인 와이오밍 캐스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했던 체니는 고교 시절 축구부 주장과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리더십 자질을 일찍부터 연마했다 할 것이다.
고고 졸업 후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 중 최고인 예일대학에 진학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예일대 학풍은 개인의 출중한 능력보다는 인적 배경을 중시하며 소그룹 단위의 귀족적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고, 차별 또한 심했다. 이에 무력과 염증을 느낀 체니는 대학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귀향했다.
체니는 와이오밍 대에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과정 중에 1968년 워싱턴DC의 공화당 한 하원의원의 사무실에서 연구직을 시발로 워싱턴 정가에 뛰어들었다. 여기서부터 그의 경력은 승승장구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고속승진의 연속이었다.
1971년 불과 29세의 나이로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백악관 보좌관을 거쳐 1975년에는 34세라는 역대 행정부 사상 최연소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낙점됐다. 1978년 딕 체니는 자신의 본거지이자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인 와이오밍 주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무려 6선이라는 대기염을 토하면서 폭넓은 인맥 계층을 용의주도하게 구축해나갔다. 88년에는 공화당 원내총무를 맡기도 했다. 1989년 국방장관으로 입각한 체니는 1993년 조지 H. 부시 전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미국의 안보정책을 쥐락펴락해왔다.
1994년 대선 출마 의사를 접고 정계를 잠시 떠났던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이 밥 돌 상원의원을 지지하면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는 설이 있으나 딕 체니는 당시 뒷이야기를 일체 함구하고 있다.
1995∼2000년 사이에는 세계 최대의 석유 시추 관련 기업인 핼리버튼의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겨 기업가로서의 남다른 자질을 발휘하는 등 그의 역량과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체니는 네오콘의 대부이자 맏형
네오콘은 “야만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자연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주장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스트라우스(Leo Strauss, 1899년 독일계 유대인으로 태어난 실존주의 철학자, 훗날 미국에 귀화)를 사상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네오 콘서버티브(neo-conservatives)의 줄임말로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자들 또는 그러한 세력을 통틀어 일컫는다.
이들은 힘이 곧 정의라고 믿고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로지 힘을 바탕으로 불량국가에 대한 선제공격 등을 감행함으로써 미국이 훨씬 적극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니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에는 악의 무리가 있으며 미국의 사명은 그들과 대결하고 응징하는 것”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국제관계를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보는 철저히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정조준된 세계관인 것이다. 레즈비언 딸을 두고서 ‘동성 결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것이 그의 유일한 진보성이란 말이 있을 정도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Whose war)?”(패트릭 뷰캐넌) 이 말은 암호처럼 해독할 필요성을 느끼질 못한다. 직역하자면 ‘네오콘(neocon)’이라 일컬어지는 신보수주의자 특히 유대인 네오콘들이 그들의 태생적 모국인 이스라엘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 이라크전쟁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를 주무르는 유대인 네오콘들이 미·이스라엘의 혈맹관계를 이용, 미국을 이라크전쟁으로 몰아넣었다”며 분노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서 체니 부통령을 위시 월포위츠 전국방부 부장관, 럼스펠드 전국방의 최측근 리처드 펄, 백악관 중동정책 책임자로 국가안보위원회(NSC) 동남아시아·근동(Near East)·북아프리카 지역 담당 국장인 엘리엇 에이브럼스, 전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 등이 바로 부시의 중동정책에 영향을 끼쳐온 핵심 유대인들이다.
네오콘에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유대인 네오콘에게 공중납치(hijacking)당했다고 간주한다. 부시는 무대 뒤에서 그를 조종하는 강력한 유대인 네오콘들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누가 억지라고 할 수 있을까.
‘대북 초강경파’ 한반도정책 좌우
얼마 전 우발적으로 노출된 미국 사설 정보지 ‘넬슨 리포트’의 특별보고서는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한반도 정책의 실질적 권한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적시한바 있다.
부시 행정부의 북과 직접대화 거부는 근본적으로 북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출발한다. 대북정책에서 ‘빌 클린턴 전임 행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모두 배제한다’는 기조를 내세웠던 부시 행정부는 2000년 취임하자마자 기존 대북정책을 전면 백지화하다시피 했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이뤄졌던 북-미 기본 합의와 공동성명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연신 딴죽을 걸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칭했다.
이에 덧붙여 부시와 체니는 석유사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부시는 텍사스에 석유시추회사를 운영했다. 반면에 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체니가 최고경영자로 있었던 핼리버튼은 석유회사와 주요 석유생산국에 기술과 장비를 제공하는 회사다. 그렇다면 체니가 최고경영자로 몸담았던 핼리버튼은 한국과 어떤 인연을 구축하여 왔는지 사뭇 궁금증이 더해온다. 바로 그것은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라 할 수 있다.
천문학적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미군기지 이전 사업을 실무적으로 진행할 사업관리자는 당연히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는데, 문제는 미국 측 입장에서 미군의 엄격한 건설ㆍ감독 기준을 충족시킬 능력 있는 한국 업체는 없다 할 것이기에 여기서 유력한 미국 업체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헬리버튼이다.
한미 양국이 2005년 7월에 합의한 용산기지 이전사업 기술양해각서에서 ‘사업시행주체’를 한미 양국의 공동 컨소시엄에 우선 순위를 매긴 만큼, 헬리버튼은 자회사인 KBR로 하여금 한국지사를 설립하여 한국과 컨소시엄을 맺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귀신이 곡할 노릇은 그 시점은 2005년 5월로 한미 양국이 기술양해각서를 체결하기 두 달 전이었다는 점이다. 결정이 나기도 전에 그 내용이 누설된 것이다. 주범으로는 2005년 4월 30일 전역하자마자 그 다음날 즉시 KBR 한국지사 사장으로 임명된 용산기지 이전 협상의 실무자인 이 모 대령이 지목되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체니는 지금까지 인생 역정에 있어 본인에게 거침이 될 만한 것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재력, 비범한 능력까지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소유한 딕 체니가 가장 두려워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올해 65세의 체니 부통령은 지난 78년과 84년, 88년에 경미한 심장발작을 일으켰다. 특히 88년에는 4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으며 2001년에는 심실제세동기로 충격요법 치료를 받은바 있다. 오직 권력과 황금의 쟁취의 먼 길에 전력 질주해 온 체니도 이제 인생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반추하기 시작한 것일까.
체니는 올 3월 8일 지난 30여년간 자신의 지병인 심장병을 치료해 온 조지워싱턴대학병원에 심장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270만달러를 기부하는 온정을 베풀었다.
작가이자 잡지 ‘워싱토니언’의 편집장을 지내고 대학 강단에도 선 다양한 경력을 갖춘 부인 린 체니는 남편 못지않게 널리 알려진 저명한 여성계 인물이다. 이들은 슬하에 엘리자베스와 메어리 등 두 딸을 두었다.
◆ 딕 체니 美國 부통령 프로필
1941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시 출생
1971년(30세) 백악관 보좌관(닉슨행정부)
1975년(34세) 대통령비서실장(포드행정부)
1977년(36세) 와이오밍에서 하원의원 당선(6선)
1981∼1987년 공화당 정책위원회 위원장
1989∼1993년 국방장관(부시행정부)
1995∼2000년 에너지건설업체 핼리버튼 CEO
2001년∼현재 부통령(조지 W 부시행정부 부통령)
<저자소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소정현 기자는 국내외 핵심 이슈들에 대해 전문적 식견과 통찰을 가지고 여러 매체에 메인 관심사들을 생동감 있는 필치로 반영시켜 왔다. 최근엔 브레이크뉴스 편집위원이자 기자로 매진하면서 ‘정치·환경’ 칼럼니스트로의 활동 또한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전방위적인 그의 논제는 늘 시의적절하면서도 논제의 포인트를 어김없이 꿰뚫는다. 소정현기자는 21세기의 국내외적 복잡다단한 다원 변수의 이질성과 공통성을 스피드 있게 해부하면서 도래할 시대의 패러다임을 단순 명료하게 조합하고 배열하는데 탁월한 역량의 소유자이다. ◇ 프로필 및 주요 저서, 현 브레이크뉴스 편집위원 / 전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 전주일보 기자 역임 / 굿바이 DJ / 클린 에어 / 격동의 이스라엘 50년 / 노아방주 미스터리 / 초록별 대붕괴 시나리오 / Y2K 디지털노아대홍수(1-2) 외 다수.
소정현 국제전문 oilga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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