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백 달러 시대’는 기어코 오고 말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들의 ‘설’로 끝날 것인가?
한 동안 안정세를 찾는 듯 하던 국제유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06년 5월 골드만삭스는 국제 유가 배럴당 1백 달러 전망을 내놓았다. 골드만삭스는 허리케인이 2005년의 카트리나처럼 미국 정유시설을 강타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백 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고 한 바 있다.
이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1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 유가는 1백 달러가 되지 않았다. 카트리나 폐해가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그 때 국내에서도 1백 달러 얘기가 나왔다. 심상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원유 생산 능력이 부족한 데다 중동 등 지정학적인 불안 요인이 겹쳐 유가가 오르고 있다. 이런 불안 요인이 현실화되면 1백 달러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한 것으로 한·일 양국 신문이 보도했다. 그 때 중동산 두바이유 값은 배럴당 71.96달러였다.
LG경제연구원도 지난해 국제유가 1백 달러 시대를 우려했다. LG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 현황이 너무 복잡해 경제학자들도 고유가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며 투자은행 등 금융계에서 유가 1백 달러 시대를 거론하고 있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허리케인에, 에너지경제연구원이나 LG경제연구원은 원유의 수급과 산유국의 정치·경제적 변화 등에서 국제유가 1백 달러의 배경을 찾으려 했다. 모두의 주장이 실현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설’로 그치지 않을 현상
지난해 하반기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올 들어 꾸준히 올라 우리나라가 많이 들여오는 두바이유를 비롯, 미국의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런던의 북해산 브랜트유 모두가 배럴당 60~7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국내 원유 수입의 6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2005년 49.4달러에서 2006년 58.9달러로 오르더니 올 5월에는 66달러를 넘어섰다. 3년간 1년에 7~8달러씩 계속 오르는 추세다.
이렇게 가면 연말에는 70달러를, 2~3년 뒤엔 90달러를 넘는다는 계산이다. 여기에다 이상 기후나 산유국의 정치·경제적 변수가 있다면 1백 달러는 그냥 넘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북해산 브랜트유의 경우도 지난 1월 53.6달러에서 5월 중순 70.3달러로 크게 올랐다. 배럴당 16.7달러나 오른 것이다. 지난주에는 6월 인도분 값이 전주보다 1달러 10센트가 오른 70달러 52센트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최고가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7월 인도분 WTI 중질유는 전주보다 26% 상승한 배럴당 65.77달러를 기록했다. 22일엔 지난 주말보다 1달러 33센트가 오른 66달러 27센트로 마감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세계적으로 원유값이 뛰는 것은 중동지역의 위기감 고조, 올 허리케인 시즌에 최대 10개의 허리케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브랜트유 값
굿모닝신한증권의 이광훈 연구위원은 미국의 휘발유 재고가 바닥으로 떨어진데다 9월까지 휴가철로 석유 소비가 증가, 원유공급 차질이 우려된다며 고점인 77달러대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감산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석유소비 증가가 국제 유가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국제 유가가 올해부터 2010년까지 배럴당 65~70달러 수준에서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배럴당 1백 달러는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에너지 수요가 꾸준히 늘 경우 2010년을 전후해 국제유가가 자연스럽게 1백 달러에 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리 속담에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 여기저기서 1백 달러 시대를 거론한다면 단지 시간이 문제일 뿐 국제유가가 곧 1백 달러까지 오른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
#국제 유가에 영향 미치는 요인은?
국제 기름 값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가장 큰 것은 석유 수요다. 수요가 많으면 값이 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가 반영되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기름 값이 오르는데 이것은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 경기 활성화로 공장이 잘 돌아가면 에너지 수요가 많고, 그렇게 되면 기름 값도 당연히 오른다.
CNN머니는 최근 미국의 경우 자동차 증가로 휘발유 수요는 해마다 느는데 비해 원유 정제시설 및 생산력은 30년 전 그대로라고 보도하면서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 늘 공급이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CNN머니는 이어 휘발유 값은 정유 업자들에 따라 결정되며 이익은 그들이 갖는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석유 생산량 감소는 당장 기름 값에 영향을 미친다. OPEC장관들이 모여 생산량을 줄인다면 원유 값이 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유 업체들이 생산시설 보수 등을 이유로 생산력의 90%쯤만 가동하는 것도 유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다음은 석유 생산국의 정치·사회적 안정이다. 석유생산국의 정정이 불안하면 기름 값은 바로 오른다. 나이지리아, 이라크, 이란 등의 안정 여부에 따라 원유 값은 달라진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원유가 상승이었다.
##국제 유가 1백 달러 시대 되면?
국제유가 1백 달러는 끔찍한 일이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지금 같은 추세로 간다면 몇 년 안에 필연적으로 맞게 될 ‘악몽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개인, 국가 모두 큰 고통을 치러야 한다.
먼저 정부는 국가 경제 운용계획을 완전히 다시 짜야한다. 경제성장 4%니 5%니 하는 ‘꿈같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마이너스 성장을 각오해야 한다. 국가 경제가 파탄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크다. 개인은 살림을 꾸려가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유가 1백달러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 도대체 뭐했느냐’며 책임론을 들고 나올 것이다. 반대로 정부는 국민들에 대해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전깃불도 무조건 끄라’고 협박 아닌 협박으로 정신이 없을 것이다.
국제 유가가 1백 달러면 국내 휘발유나 경유의 소비자 값도 지금보다 두 배쯤 오른다고 봐야 한다. 휘발유는 ℓ당 3000원 안팎, 경유도 2000원을 훨씬 넘는다. 이렇게 되면 제일 먼저 자동차가 고철로 변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50만~1백만원, 2백만원에 달하는 기름 값을 감당할 수가 없다.
버스, 택시를 제외한 차량은 ‘무조건’ 홀짝 수로 운행되든지, 아예 개인 자가용 자동차의 경우 운행이 금지될 수도 있다. 남는 기름을 공장 가동이나 전력 생산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엘리베이터 운행 제한, 전기 사용 억제 등을 통해 에너지 절약에 나서지만 1백 달러 시대의 파고를 넘기엔 고통일 것이다.
산업계 피해는 말이 아니다. 먼저 자동차 산업이 망가진다. 물류비 및 생산비 증가로 공장의 정상 가동이 힘들어 진다. 자칫 전기도 배급해야 할 상황이 온다. 산업활동 전체가 마비된다고 보면 된다.
기름 값이 1백 달러에 달한다면 ‘에너지 전쟁’이 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처음엔 기름을 팔아 돈을 벌겠지만 나중엔 에너지 전쟁터로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동 말고도 세계 곳곳에서 석유를 개발하기 위한 시굴이 이뤄지고 여기저기서 기름이 나오겠지만 이것도 몇 년 가지 못한다. 에너지 수요가 원래 많아 웬만한 물량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땅속에 기름이나 석탄을 많이 가진 나라는 국제무대에서 엄청난 힘을 과시할 게 분명하다. 이때가 되면 군사력보다 에너지를 많이 가진 나라가 강대국이 된다.
에너지 시장에 ‘중국 주의보’
국제 에너지 시장에 ‘중국 주의보’가 내려졌다. 중국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 주변국은 물론 세계가 가볍게 콧물을 흘릴 수 있고, 감기 몸살로 쓰러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후진타오, 원자바오, 리오자싱 등 중국 지도자들의 외교는 원유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정도다. 중국은 CNPC, CNOOC, SINOPEC 등 석유회사를 중심으로 해외 원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은 아프리카에 2백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해 미국 등 선진국을 놀라게 했고, 중동 국가엔 큰 ‘감동’을 주었다. 중국의 생각은 중동 산유국이 미국 등 서유럽 국가의 손에 놀아나게 그냥 둘 수 없다는 것.
5월 초엔 텐진 앞바다 보하이 만에서 10억 2천만t의 초대형 유전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국가 수뇌부가 총 동원돼 행사를 거창하게 치렀다. 초대형 유전의 발견 그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도 쓸 만큼의 기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CNPC는 베네수엘라, 카자흐스탄, 수단, 알제리, 이라크 이란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 석유채굴권을 갖고 있다. SINOPEC는 이란으로부터 30년간 2.5억t의 LNG를 공급받기로 했다. 또 1.5억 달러를 투자, 캐나다 시넨코 에너지와 오일샌드 개발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CNOOC는 2002년 인도네시아 렙솔사가 갖고 있는 유전권을 인수, 인도네시아에서 최대의 외국계 회사로 떠올랐다. 중국은 얼마 전엔 캐나다 앨버타주 샌드오일(모래에 포함된 기름)에서 원유 채굴권을 사들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은 지하에 많은 석유를 갖고 있음에도 세계 곳곳에서 기름 확보에 나서고 있는데 몇 년 안에 세계 에너지 시장을 쥐락펴락 할 게 분명하다. 달러, 원자재에 이어 원유까지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참고로 중국의 지난 4월 석유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증가한 1480만t이다. 하루 333만 배럴을 수
입한 셈이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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