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 회고록 출간 화제
이만섭 전 국회의장 회고록 출간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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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8-18 09:53
  • 승인 2009.08.18 09:53
  • 호수 799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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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6의 진실…그 속에 숨은 내막은?
8선 의원을 지내고 국회의장을 지냈던 이만섭 국회의장이 최근 회고록을 출간해 화제다. 이번에 출간된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나남출판사)’ 에서 이 전 의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이 전 의장은 “10. 26의 교훈을 현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의 평가와 다시는 이러한 역사적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당시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기록에 남겨야 한다”며 회고록의 집필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일요서울>은 이 전 의장의 회고록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숨은 내막을 들여다봤다.

이 전 의장은 5. 16혁명이 일어나던 당시 정치부 기자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혈 입성한 혁명군은 최고회의를 구성하고 의장에 박정희 소장을 임명하게 된다. 이후 최고회의에 출입하게 된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과 1962년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이 전 의장은 “하루는 데스크에서 박 의장과의 단독회견을 원했다. 당시만 해도 박 의장과의 단독회견은 생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마침 박 의장이 울릉도 시찰을 떠난다는 얘기를 듣고 몰래 군함에 탔다. 군함이 출발함과 동시에 선장실로 찾아가 박 의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박 전 대통령은 신문기자에 대한 편견이 상당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에서 선동을 한다고 생각한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의장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고.

이에 굽히지 않은 이 전 의장은 혼자 열심히 언론을 옹호했다고 한다.

다음날 이 전 의장을 박 전 대통령이 찾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좋지 않던 감정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전 의장은 “박 의장이 나를 찾아 함께 자리에 앉으면서 자신이 조금 심했던 것 같다며 먼저 사과의 말을 거넸다. 이런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면서 박 의장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누그러졌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뜻하지 않은 날씨였다. 귀로를 앞둔 울릉도의 날씨가 무척이나 사나웠던 것. 결국 박 전 대통령 일행은 섬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걸어가게 됐다. 이때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의장은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 전 의장은 “박 의장은 어민들의 애환이나 피폐한 농촌의 실정 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뚝뚝한 박 의장이 그토록 격의 없이 따뜻하게 이야기를 해 놀랐다”고 회상했다.

이후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지고 진정 국민을 위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과 가까워졌고 결국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정치인생을 걷게 된다.


박정희와 김재규의 기구한 인연

이 전 의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인연도 회고록을 통해 자세히 서술돼 있다. 김 부장은 이 전 의장의 스승이었다. 김 부장이 대륜중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할 때 이 전 의장은 학생이었던 것이다.

이 전 의장은 “김 부장은 나와 각별했다. 당시 인정이 많았던 김 부장은 제자들을 모두 친동생처럼 사랑했다. 제자들 또한 김 부장을 친형님처럼 따랐다.”고 기록했다.

김 부장은 박 전 대통령과도 특별한 관계였다. 이 전 의장에 따르면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의 고향 후배일뿐 아니라 육사 동기생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항상 김 부장을 챙겼다. 박 대통령이 준장으로 5사단장에 근무할 당시 김 부장은 대령으로 36연대장에 임명했다. 당시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만들어 공관에서 막걸리를 곁들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김 부장에 대한 배려가 깊었다. 김 부장은 군의 요직인 6사단장과 보안사령관에 임명됐다. 김 부장은 예편 후에는 건설부장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됐다.

이 전 의장은 “김 부장도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 재직시에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오면 앉아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차려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고 알려졌다”며 김 부장과 박 전 대통령의 인연을 상세히 기술했다.


박 전 대통령의 뛰어난 용인술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의 뛰어난 용인술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63년 제 5대 대통령에 취임한 박 전 대통령은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국무총리로 발탁한 최두선씨는 대통령 선거 당시 <동아일보> 사장으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이 전 의장은 “당시 동아일보는 윤보선 후보에 긍정적인 언론사였다. 그런 사람을 과감히 국무총리 자리에 앉혔다는 건 그만 큼 대범하고 인재 등용의 폭이 넓었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5.16 혁명 당시 1군 사령관으로 박 대통령의 혁명군을 진압하려던 이한림 장군을 건설부장관에 발탁한 것도 박 전 대통령의 용인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을 맡았던 전두환 당시 중령의 일화도 소개했다.

이 전 의장은 “우연한 기회에 경복궁에 주둔하던 30대대장 전 중령이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며 박격포대와 조명탄 발사기를 설치해 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뒤뜰까지 총을 난사하며 침투하자 전 중령은 박격포와 조명탄을 터뜨려 청와대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췄다고 한다. 이 일로 전두환 중령은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게 됐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인연을 소개했다.

이 전 의장은 10. 26의 직접적인 이유로 박 전 대통령과 김 정보부장, 그리고 차지철 경호실장의 간의 미묘한 신경전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운명과 같은 10. 26

이 전 의장은 “차 실장은 막강한 권력을 쥐고 2인자처럼 행세했다. 사설정보조직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사사건건 직접 보고를 하기까지 했다. 차 실장은 이런 방법으로 대통령으로부터 김 부장보다 더 신임을 얻게 됐다. 심지어 차 실장 앞에서 김 부장에게 면박을 주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5. 16 혁명 당시 차 실장은 육군 대위였다. 반면 김 부장은 준장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김 부장은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분석했다. 특히 가장 안타까운 일로 이 전 의장은 10. 26이 있기 일주일 전 김 부장을 만나지 못한 일이었다. 이 전 의장은 “10. 26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김 부장이 나를 찾았다. 당시 대구에 내려가고 없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나는 다시 연락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일주일 후에 온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비극의 소식이었다. 일주일 전에 내가 그를 만났다면 박 대통령의 시해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끝으로 이 전 의장은 10. 26을 통해 정치인들이 얻어야 할 충고의 말을 남겼다.

“정당이나 정권이건 강경파가 득세하면 망하기 마련이다. 이를 정치인들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보수와 진보가 이제는 화합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이분법식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마지막으로 정치인은 깨끗해야 한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나라 모든 정치인은 돈보다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부정한 돈을 받을 때의 쾌감은 ‘불안한 쾌감’이지만 부정한 돈을 뿌리칠 때의 쾌감은 ‘행복한 쾌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인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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