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가 핫바지냐”

세종시법이 또다시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친이직계를 중심으로 세종시 특별법에 대한 성격과 기능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이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세종시를 변경하려고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한 과학비즈니스 벨트 건설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불쾌감을 표시했다. 최근 회의석상에서 노골적으로 “여당과 정부의 행태에 치를 떤다. 만에 하나 원안처리를 주장했던 이 대통령이 이를 어긴다면 충청권을 핫바지로 보는 것 밖에 안된다”고 말해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민주당과의 공조작업도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종시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엇갈린 이해관계가 다시금 정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근 들어 불거지고 있는 세종시특별법의 성격 변경론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부처 대신 기업의 본사와 대학교를 유치하는 쪽으로 변경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부 부처 이전은 모두 백지화 하면서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탈바꿈 시켜 전 정권에서의 기존 방안을 모두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애초에 지난 정권의 공적인 세종시특별법에 그리 많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공적으로 남는 것도 아닌데 애써 이를 통과시키겠는가. 차라리 자신의 공약이었던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바꾸겠다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과학비즈니스 도시를 지난 5월 발표하려고 했지만 조문정국 등 정치권의 사정 때문에 보류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9부2처2청의 기존 행정기관 이전으로는 5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이전에 관한 고시변경을 미루는 이유도 현재의 세종시특별법을 아예 바꿔놔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지난 해 부터 축소 움직임은 감지됐었다. 정부 주도하에 KAIST를 통해 ‘자생력 확보를 위한 과학비즈니스 벨트와의 연계방안 마련’이라는 연구를 진행했었다.
당시 KAIST에 연구 용역을 의뢰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용역 이유에 대해 “이미 수립돼 있는 건설계획을 변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국정과제와 연계해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결국 KAIST의 연구 용역 결과에 따라 지난 해 11월 연구 결과 내용을 발표했다. 행복청은 세종시가 조기에 자족적인 성장거점이 될 수 있도록 자족기능 유치계획 수립 등 체계적인 유치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내용을 보면 행복청은 세종시의 자족기능을 확립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대기업 등 기업과 연구소의 유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행복청은 “수도권 소재 기업 약 2000여개를 대상으로 한 입지수요조사 결과 선도 대기업 및 첨단 중소기업 등 약 81개 기업이 입지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이나 입지를 희망하는 연구소를 위해 금융 및 세제지원, 물류 인프라 구축, 교육, 문화, 복지시설의 확충 등 일정한 인센티브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미 지난 해부터 세종시의 성격과 기능을 변경하는 정부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서 전 정부와의 차별화된 국정철학이 이미 수조원의 자금이 들어간 세종시를 뒤 엎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여기저기서 목격되고 있다. 이에 따른 충청권의 민심이 향후 정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치권의 논란에 대해 행복청은 “확정된 개발계획의 수정이나 보완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이 미흡한 자족기능 유치방안을 보다 구체화 한 것”이라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일축했다.
이 총재, 특단의 조치 선택?
이 같은 분위기에 자유선진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총재는 최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요즘 정부와 여당 안팎에서 세종시 성격 변경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정권을 위해 이 같은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세종시는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함께 작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통령 자신도 지난 대선과 최근 회동에서도 원래의 성격대로 추진하겠다고 한 마당에 이제 와서 이를 번복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충청도를 ‘핫바지’로 만드는 일”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재에게는 세종시특별법이 충청권 민심을 좌우하는 만큼 원안대로의 통과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를 정부와 여당의 뜻대로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바꾼다면 이에 따르는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정부와 여당의 세종시 축소론에 대해 더 이상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자유선진당의 입장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이회창 총재의 ‘핫바지’, ‘사기정권’ 발언으로 강경노선을 택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선진당 안팎에서도 더 이상 성명이나 논평만을 내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진당의 한 관계자는 “이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아직 어떤 식으로 대응 할지 논의를 하고 있는 단계지만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상당부분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유선진당이 지난 미디어법 통과와 함께 세종시법을 연계하려다 팽 당한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에 대해 이 관계자는 “우리는 한나라당과 어떠한 공조도 한 게 없다. 미디어법의 경우 우리의 제안이 90%이상 반영되면서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공조를 하려면 여당과의 접촉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결국 한나라당에게 이용만 당한 꼴이 됐다”며 분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총재의 결단이다. 충청연대론, 충청권 총리설 등 무성한 소문들로 인해 여당과 정부에 끌려 다니다시피 했던 모습에서 탈피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hanmail.net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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