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재단 출범 임박 기업인 전전긍긍 내막

현직 대통령이 평생 모은 재산을 출연해 만든 청계재단이 이번 달에 출범한다. 331억원의 적잖은 돈이지만 부동산이라는 점에서 실제 지급되는 장학금은 월 임대료 수입인 9천만원선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장학재단이지만 수익사업이나 부동산을 매각을 안한다는 점에서 기금 운영에 한계를 지닐 전망이다. 특히 기업인들의 경우 전전긍긍이다. 출범을 앞두고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기부금을 한푼도 안내는 게 맞는 지 아니면 공식적으로 기부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자칫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거금을 내거나 수수방관할 경우 곤혹스런 처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기업 관계자들은 청와대 의중뿐만아니라 상대 기업인들의 행보에 예의주시하며 치열한 눈치전에 들어간 양상이다.
“지정계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인설립을 해야 하는 것이냐?”
지난주 국회 출입하는 H그룹 대외협력팀소속 한 인사의 고민이다. 지난달 6일 대통령의 재산을 출연해 만든 ‘청계재단’ 출범이 이번달 중순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옛날 같으면 지정계좌를 주고 입금하라고 하면 편하게 했는데 지금은 어떠한 언질도 없고 기업인들 사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며 “장학재단이 없는 기업은 법인을 설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과거 일해재단의 예를 들며 “현직 대통령이 재산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었는데 기업인들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다른 기업인들이 어떻게 대응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귀띔 했다. 실제로 김동길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재산 출연을 발표한 이후 “지난번 공직자 재산공개 때 보니 대통령 주변에 대단한 부자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기억된다”며 “이번 기회에 청계재단에 기부좀해서 장학사업을 넘어 사회사업을 위한 재단 기금이 300억이 아니라 3천억원이 되게 하라”고 제안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330억원대 운영기금 월 9천만원 이자보다 적어
실제로 청계재단에 출연한 돈은 3백억원대이지만 월 9천만원 연간 11억원 한도내에서 장학금이 지급돼야 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출연한 기금으로서는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청계재단측에서는 전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자금, 교복, 급식비, 기성회비 등을 지급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전망이다. 대통령이 직접 출연한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훈장’이 될 수 있고 향후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송정호 장학재단 위원장 또한 자금운영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여타 기업인이나 제3자로부터 한푼의 기부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본지와 지난달 30일 통화에서 “기업체나 독지가로부터 후원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며 “자칫하면 전두환 시절 일해재단처럼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해재단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1983년 10월9일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들의 유족에 대한 지원과 장학사업을 목표로 그해 12월 출범했다. 그러나 당시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따 일해재단으로 개칭되면서 일해재단이 제5공화국 비리의 하나로 지목돼 세종연구소로 재차 개칭됐다. 당시 청와대 장세동 비서실장의 지휘아래 최순달 전 체신부장관, 정수창 대한상공회의소 의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등 국내 정상급 재벌 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었다.
문제는 일해연구소로 정식 개소하면서 전 전 대통령의 측근세력들이 대통령 퇴임을 대비해 기업인들에게 강제적으로 기금조성을 하면서 폐해가 심화됐고 국정감사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청계재단 역시 추진위원회를 보면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을 위원장으로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초기 개입했고 이후 이사진에는 류우익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 이 대통령 맏사위인 이상주 변호사 등이 포함돼 있다.
송 위원장은 ‘돈이 부족하다’는 점은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는 “청계재단에 기부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며 “월 9천만원이 330억원의 예금 이자보다 적은 돈이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기금 운영에 있어 부족한 돈일 수 있지만 330억원대는 우리나라 장학 재단중 20위권 내외에 있다”며 “너무 욕심내서 하면 안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특히 기업인이나 독지가로부터 ‘기부하겠다’는 문의관련 송 위원장은 “아직까지 문의하는 사람은 없다”며 “앞으로 있을 수는 있겠지만 출범과 함께 기부를 받지 않을 것을 공표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측(이하 전경련)에선 청계재단의 출범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경련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청계재단의 출범에 전혀 관심도 없고 기부관련 문의를 한 적도 논의를 한 적도 없다”며 “한다면 그룹별로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경련측, “청계재단 관련 고민한 적 없다”
또한 그는 “아직까지 청계재단에 기부할 방법도 없고 요청을 받지 않았다”며 “순수하게 대통령이 출연한 장학재단인 만큼 전경련은 그 뜻을 존중할 것”이라고 재차 무관함을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만약 전경련이 장학재단을 만든 대통령의 뜻을 이해한다면 기업성장이나 일자리 창출 등 고용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정경유착의 나쁜 이미지를 끊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미 삼성 재단이나 LG 연암 재단이 존재하는 만큼 추가적으로 전경련 차원에서 따로 법인을 만들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청계재단 설립이후 청와대나 재단측으로부터 기부관련 어떠한 압박도 받은 바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또한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지난달 30일 ‘2009제주하계포럼’에 참석해 비정규직법 철폐를 주장하며 ‘사회적 책임’을 운운한 것은 청계재단 출범과 상관없는 원론적인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조 회장은 이날 “삼성, 현대, LG 등 대그룹은 우리나라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며 “재계도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니 기업에게도 용기를 북돋아주고 칭찬도 자주 해달라”고 정치권에 당부했다. 특히 그는 “기업인이 전부 옳은 일만 한 것은 아니다”며 “많은 실수도 했고 안할 일도 많이 했지만 오늘날은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경유착은 없을 것임을 피력했다.
이와 관련 전경련측은 “‘사회적 책임 운운은 청계재단과 관계없는 원론적인 얘기”라며 재차 전경련 차원에서 청계재단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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