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법’ 핫바지 처리 항의

세종시법이 또 다시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난항을 겪고 있다. 세종시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어지럽게 얽혀 있어 더욱 전망은 어둡다. 이런 가운데 최근 행안위 처리를 연기시켰던 것으로 알려진 정우택 충북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월 23일 충북 청원군이 세종시에 편입되는 안이 통과되기 직전, 정 지사가 직접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국회 통과 연기를 주장하면서 결국 행안위 전체회의가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던 것.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의 합의로 통과를 목전에 둔 세종시법이 돌연 연기된 사연을 들여다봤다.
지난 7월 23일 아침 10시로 예정된 행안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한 무리의 인사들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찾았다. 이들은 멀리 충청북도에서 올라온 지방자치단체장들이었다. 이미 충북지역에서 올라온 세종시법 반대 지지자들이 국회 주변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정우택 충북도지사는 올라오자마자 박희태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찾았다. 원래 계획안에는 없던 충북 청원군의 두 개 면이 세종시법에 포함되면서 서울로 급박하게 상경한 것이다. 정 지사는 박희태 대표를 만나 세종시법에 포함된 두 개의 면에 대한 주민투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나라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 지사가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나 여론 조사 없이 충북 청원군의 두 개 면을 세종시에 포함시키는 것은 해당 주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를 전해들은 안 원내대표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한나라당 조진형 행안위원장에게 처리를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세종시법에 포함된 충북지역 두 개의 면은 부용면과 강내면 일부다. 이 지역 한나라당원들은 한나라당이 주민 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강행 처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미 200여명이 탈당계까지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지역 두 개의 면이 편입되는 것에 정 지사로서 당연한 주장을 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도지사로선 지역 민심을 거스르는 세종시법 통과를 손 놓고 볼 수 만은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 지사는 내년 지방선거에 나올 뜻이 있는 만큼 지역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세종시법이 통과가 되도 그렇게 많은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자칫 충남에 땅만 떼어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 지사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에서는 청원군이 포함돼야 도내 건설업체가 참여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찬성하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현 상황으로 볼 때는 정부부처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어 자칫 충북 땅이 충남으로 영원히 편입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반대를 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지사의 서울 상경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이반이 일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더욱 강경했다. 어찌됐든 정 지사의 적극적인 반발로 인해 세종시법은 행안위 법안소위를 무기한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은 모두 제각각 셈법을 달리 하고 있어 세종시법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각 정당마다 세종시법 주판알 튕기기
한나라당으로선 현재의 구도에서 세종시법이 통과가 되면 자신들의 공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세종시법을 지금 처리해주는 것 보단 내년 초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처리해야만 충청권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속내가 저변에 깔려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는 충청권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당 대표를 필두로 한 지역 민생탐방에 나섰다. 충청권 민심을 어르고 달래 내년까지 세종시법을 미루고 지방선거 이전에 통과시키려는 움직임이란 주장이다.
자유선진당으로선 한나라당에게 배신당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 통과와 세종시법 통과를 전략적으로 통과 시키겠다는 약속을 한 마당에 갑자기 한나라당이 세종시법 통과를 또 다시 미뤘다는 것이다.
자유선진당 관계자는 “우리의 입장은 한결 같다. 하루 빨리 미디어법이 통과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차일피일 미루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우리 밖에 없다”며 세종시법 통과에 사활을 걸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유선진당도 세종시법이 지금 통과되는 것 보단 내년 지방선거에 영향이 있을 때 쯤 통과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물론 지금 바로 세종시법이 통과 되면 좋겠지만 당 차원에서는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 과연 지금 통과가 되면 내년 지방선거에 얼마나 영향이 있겠는가. 차라리 내년 초 쯤 통과를 시켜 지역 민심을 얻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세종시법을 두고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그 결과물을 서로 따려는 복잡한 속내가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은 지난 7월 27일 대전광역시당 간담회에서 “지금도 늦었다고 생각한다. 충청도민들에게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부러 늦출 수 있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일각의 주장에 대해 부인했다.
한편 민주당도 충청권 민심을 얻기 위해 세종시법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충남과 대전이 자유선진당의 전통적 텃밭이라면 충북은 민주당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충북 8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6곳을 석권했다. 나머지 두 곳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충북의 민심은 충남과 대전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세종시법을 통해 충북 민심을 잡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충북 청원군 일부 지역이 세종시법에 포함되는 것을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지만 충남으로 편입되는 순간 충북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의 공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도 민주당의 반발을 샀던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충청권에 기반이 적은 한나라당과 충남을 기반으로 세종시법을 통과시키려면 집권여당의 힘이 꼭 필요한 자유선진당, 여기에 충북을 선점하고 있는 민주당 등 각 정당이 세종시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얽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시법은 각 정당의 이해득실에 따라 눈치 보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종시법이란 달콤한 과실을 누가 얻을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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