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MB에 뿔난 이유?
DJ, MB에 뿔난 이유?
  • 인상준 기자
  • 입력 2009-06-23 10:01
  • 승인 2009.06.23 10:01
  • 호수 791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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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노무현이 DJ를 투사로 만들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권에 파장을 몰고 왔다. 6.15남북공동성명 9주년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켜 ‘독재자’라고 말한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을 향해 연일 비난의 각을 세웠다. 특히 장광근 사무총장은 당내 문제에 신경 쓸 틈도 없이 최근까지 DJ 발언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에 할 말을 했다며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DJ의 이번 발언은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며 이를 통해 진보진영의 결집을 촉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진보 진영의 연합을 강조했던 DJ가 최근 뿔뿔이 흩어진 진보진영의 결집을 이루기 위한 승부수로 현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11일 DJ는 기념식장에서 “우리 국민들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이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민주주의를 회복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하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즉각적인 반격을 시도했다. 평당원에서부터 대표, 정부 관료들까지 연일 DJ 발언을 비난했다. 이는 수세정국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DJ의 발언으로 진보진영의 결집을 우려한 때문도 있다.

DJ는 당시 기념식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 없이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DJ가 준비하지 않고 즉흥연설을 하다 보니 너무 앞서간 경향이 있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DJ는 정치 9단이다. 아무리 즉흥연설이라도 이런 파장을 예상하지 못하는 초짜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DJ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번 ‘독재자’ 발언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를 모두 지칭한 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재자’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 전 대표와 MB를 모두 지칭해서 진보진영의 결집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전 대표는 현재 차기 대권 주자 1순위이기 때문에 이를 견제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DJ의 발언이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담겨 있다는 것이다.

지난 조문 정국에서 DJ는 “내 반쪽을 잃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영결식장에서는 미망인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며 슬퍼하는 모습이 전국적으로 생중계됐다.

지난 16일에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 등 야권 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진보진영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날 DJ는 “민주당이 맏형 역할을 해야 한다.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 국민이 협력하고 단결하는데 민주당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DJ는 이날 역시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민주주의 후퇴, 서민경제, 남북문제 등 3대 위기를 막기 위해 노 전 대통령과 많은 생각을 공유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서거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들은 현 시국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진영의 범 연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민주당과 친노 인사들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구민주계와 친노 인사들의 껄끄러운 관계를 복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친노인사들과 구민주계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탄핵을 주도하는 세력들 중에는 구민주계가 있다. 또한 열린우리당을 없애고 구민주계와 합당한 것이 현재의 민주당인 만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과 선을 그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사실이다. 친노 인사들 중에는 이에 불만을 토로하며 탈당한 인사들도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DJ는 진보진영의 연대를 위해 친노계와 구민주계의 화해가 절실하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DJ가 호남맹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난 보궐선거에서 보듯이 상당부분 힘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사분오열된 진보진영을 자신의 손으로 결집시키는게 DJ의 바램”이라고 말했다. 이런 DJ의 노력에 우선 친노측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행보보다는 노 전 대통령을 떠난 보낸 슬픔이 더욱 크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친노, “정치행보 시기상조”

친노측 관계자는 “49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상중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정치적 행보보다는 이를 어떻게 잘 마무리하느냐가 더 큰 문제라는 시각이 대부분의 친노인사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선 49재가 끝나면 노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어떻게 계승할지에 대한 논의부터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든 일들이 마무리된 이후에나 정치행보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부 친노인사들의 경우 어차피 민주당이 맏상주 역할을 한 이상 서로 화해를 통해 진보진영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민주당의 입장에선 친노 인사들의 참여야말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나는 격이다. 여기에 이제껏 당 밖에서 정치와 담을 쌓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 김근태 전 의장 등 거물급 정치인들도 함께 받아들여 ‘반MB전선’을 구축하는 진보진영 대연합을 형성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여기에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라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뿔뿔이 흩어졌던 진보인사들이 민주당으로 복귀하면서 야권과의 연대를 추진할 원동력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특히 친노인사들의 복당은 진보진영 결집에 커다란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과 친노의 결집은 더 나아가 범야권의 결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권 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의 결집을 이룰 원동력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반MB전선’연대가 실현되면 그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MB정부의 국정운영에는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DJ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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