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재계 총수들 눈치작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재계 총수들 눈치작전
  • 강필성 기자
  • 입력 2009-06-02 08:59
  • 승인 2009.06.02 08:59
  • 호수 788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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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서자니 밉보일 거 같고…”
지난 5월 26일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찾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삼성그룹 사장단이 조문을 마치고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정관계 인사들의 애도까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독 재계는 애매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민사회 등은 발빠른 조의 표명에 바쁠 때, 재계에서는 조문 일정을 두고 고심에 바빴던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 조문에 현 정권 눈치를 보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랐을 정도. 실제 재계 총수들의 조문은 노 대통령 서거 3일 이후에나 시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소식에 조문행렬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난 5월 29일까지 분향소를 방문한 사람들의 수는 약 430만명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정작 재계의 조문은 정·관계 인사와 비교해도 확연히 더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계 총수들이 봉하마을을 직접 내려가리라는 당초의 예상과 달리 재벌 총수들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차려진 분향소에 짧게 조문을 한 것이다. 이마저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3일이 지난 5월 26일에 이르러서야 이뤄져, 23일부터 발빠르게 움직인 정·관계와 큰 차이를 보였다.


재벌 그룹 MB 눈치 봤나

하지만 원래 재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부터 재계 인사들의 방문이 시작됐다. 당시 재벌 그룹이 일제히 조화를 보냈던 점도 차이점이다. 노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가 화환을 사절하기로 방침을 정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일하게 조화를 보낸 곳은 삼성, LG 등 몇 곳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일각에서 “재벌그룹이 행여나 현 정부에 밉 보일까봐 눈치 보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뒷말이 나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유독 재계 반응이 더딘 것은 튀는 돌이 정 맞는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친노 기업으로 불리던 곳 치고 검찰 수사 받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니 눈치를 안볼 수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실제 재계 주요 그룹들은 노 대통령 서거를 놓고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들은 총수의 조문 시점을 두고 회의가 벌어졌을 정도다. 결국 대부분의 그룹사들은 “전경련 등 재계 단체들의 방침에 협조하겠다”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26일에 조문이 시작된 것도 같은 날 오전에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장과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방문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경제단체 방문 전 조문한 재벌그룹 총수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유일했다.

이날 오후가 되서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신성장 동력 박람회’에서 기조강연을 마친 뒤 곧바로 분향소를 찾았다. 허창수 GS 회장과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도 오후 3시쯤 분향소를 찾았고 4시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조문했다.

이런 재계의 행렬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27일에는 본격적인 방문이 이뤄졌다. 8시 10분 분향소를 찾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계열사 부회장 8명을 필두로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박인구 두산 부회장 및 박용현 두산 회장이 참석했다.

오전 10시 경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10여명의 임원과 함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이날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의 넋을 기렸다. 삼성그룹에서는 오전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밤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가 방문했다.


바쁜 일정에 그만…

하지만 재계에서 잇따르는 분향 행렬이 모든 재벌 그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신세계 그룹에서는 노 전 대통령 조문을 하지 않았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해외출장을 이유로 조문 행렬에서 빠졌고, 동부그룹 역시 “원래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고 있다”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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