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 미국행 청와대 진노 탓

‘박연차 리스트’냐 ‘청장 유임’이냐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 이후 칼날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로비 의혹사건으로 겨눴다. 한 전 청장은 지난해 7월부터 실시된 박 회장 소유의 회사관련 특별 세무조사를 전면에서 진두지휘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무마로비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한 전 총장은 미국에 공부를 한다며 출국한 상황이지만 사실상 기획출국 시켰다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한 전 청장의 도피 뒤에는 청와대와 ‘박연차 리스트’ 원본을 쥔 한 전 총장이 청장 연임을 위한 ‘빅딜’을 시도해 청와대가 진노한 것이 한 몫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4개월 동안 국세청장 후임이 결정되지 않아 차기 청장직을 두고 ‘복마전’ 양상까지 겹치면서 검찰 수사는 집권 여당과 국세청을 바짝 긴장시키게 만들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과 관련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 및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작년 하반기 태광실업과 정산개발 세무조사를 담당했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장실과 3과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박 회장 관련 세무조사.금융자료를 등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 검찰은 여권 실세와 전현직 검찰 인사들과 관련된 ‘박연차 리스트’ 원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박연차 리스트는 ‘여비서 리스트’, ‘국세청 리스트’, ‘청와대 리스트’, ‘검찰 리스트’ 등 변종 세트가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
그러나 국세청이 박 회장 세무조사 과정에서 얻게 된 박연차 리스트 원본은 여권 핵심 실세뿐만 아니라 전현직 검사, 자치단체장, 고위 경찰 간부 등이 수십명이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어 공개될 경우 그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연차 세무조사 총괄 조국장 ‘박연차 원본’ 발견?
박 회장의 경우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대통령 복심인 천신일 세중나모회장에게 거액의 금액을 건넨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고 사돈인 김정복 전 국가보훈처장이 한 전 청장의 국세청 선배라는 인연을 활용해 도움을 요청하는 등 다방면으로 로비를 벌였다.
특히 박연차 리스트 원본이 발견되면서 여권 핵심 실세들이 전방위로 국세청을 압박해 보고서를 누락시켰다는 의혹까지 국세청은 받고 있다. 검찰이 이번에 국세청에게 통상 협조를 구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압수수색을 한 배경이기도 하다. 검찰은 세무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조사4국장(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사무실에서 박연차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주변에서는 그동안 박연차 리스트 원본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조 국장이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특히 한 전 청장은 지난해 11월 12일 ‘박연차 리스트’를 포함한 보고서를 가지고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한 전 청장은 박연차 리스트에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담겨 있다는 점을 활용해 ‘그림 로비 의혹’을 수사 하지 말아 달라며 ‘연임 의사’를 타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이 대통령은 한 전 청장의 ‘빅딜’ 시도에 진노했고 이후 청와대는 국세청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을 극비리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한 전 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에다 현 여권 핵심 실세들에게 골프 접대 의혹까지 겹치면서 1월 17일 자진사퇴했고 이상득, 정두언 의원 등에게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한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검찰에 체포되기 직전인 3월 15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한 전 청장은 공부를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다고 주장했지만 야권에서는 세무조사 로비 의혹을 은폐하고 ‘박연차 리스트’ 연루된 여권 핵심 실세 등을 보호하기 위한 기획 도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동아 5월호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명을 받은 총리실 사정팀에서 직접 문제 있는 국세청 간부를 조사해 업체로부터 룸살롱 대접을 받은 L 국세청 간부를 포착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또한 박 회장 세무조사에 총괄을 담당한 조홍희 국장 역시 중요한 로비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국장은 세무조사 무마 및 박연차 리스트 관련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루된 여권내 핵심 인사들은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을 통해 조 국장에게 ‘구명 로비’를 시도했을 수 있다는 소문부터 조 국장이 ‘박연차 리스트’를 통해 직접 핵심 인사들과 ‘딜’을 했다는 추측까지 무성했다.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조 국장은 세무조사 이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장에서 본청 법인세국장으로 ‘영전’을 했다.
검찰이 조 국장 전현 사무실을 급습해 압수수색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검찰은 세무조사 전후로 서울지방국세청 간부들이 박 회장의 부탁을 받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에게서 로비를 받은 단서를 이미 확보했으며 이를 확인하기위해 압수 수색을 실시한 셈이다.
한편 국세청 한 간부는 차기 국세청장직을 두고 복마전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한 전 청장이 자신 사퇴한 이후 공석인 청장직을 두고 ‘파워게임’까지 겹쳐 있다는 분석이다.
靑 지시 총리실 국세청 감찰 ‘여권 핵심실세 보호용’
현재 차기 국세청장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인물은 서너 명 정도다. 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허병익 차장 승진이 한때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다시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 허용석 관세청장 등과 ‘동급’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허병익 국세청 차장은 강릉 출신으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국세청에서 잔뼈가 굵다.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정통 TK(대구·경북). 서울청 조사3국장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 그리기 작업에 참여했다.
외부 인사로는 충남 출신인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서울 출신인 허용석 관세청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러나 국세청 주변에서는 내부 승진이 유력하다는 분위기다. 이에 차기 청장직을 노리는 인사들이 박연차 리스트에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사건을 빌미로 이명박 정권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위해 분주하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현 정권 실세들과 연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권모술수’와 ‘알력 다툼’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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